'한 발은 타석에'…스피드업 룰 보완책이 필요하다

[베이스볼 Lab.] 흥행 잡으려다 경기 망칠 수도

"뭐야, 저게 왜 삼진이야?"

지난 7일 열린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시범경기. 3회 말 무사 1루 볼카운트 2-2 상황이었다. LG 투수 소사의 4구째 공을 골라낸 한화 김경언은 5구를 치기에 앞서 습관적으로 타석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이 순간, 주심은 곧바로 스트라이크 선언을 했다. 최소 한 발은 타석 안에 두어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소사가 공을 던지지 않았는데도 김경언은 삼진으로 물러났다.

처음 보는 해프닝으로 인해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2015시즌 KBO(한국야구위원회)가 개정한 '스피드업 규정' 때문이다. 특히 논란이 되는 규정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최소한 한 발을 타석 안에 둬야 한다'는 조항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두 발이 모두 타석에서 벗어나면 경고 없이 곧바로 스트라이크를 적용한다.

'스피드업 규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타자가 고의적으로 경기를 지연시키려고 했을 경우, 투수에게 투구를 명하여 모든 투구를 스트라이크로 선언하는 규정은 있었다. 다만 '타석에 들어서지 않으려고 하거나, 타격 자세를 취하지 않으려고 할 때'라고 명시함으로써, 심판의 재량에 맡겨진 상태였다. 이번 '스피드업 규정'은 그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한 것에 가깝다.

KBO측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규정은 이미 지난 시즌부터 시행됐다. 다만 1차는 심판의 구두경고, 2차 위반 때는 스트라이크를 줄 수 있다는 다소 느슨한 규정이었다. 경고로는 큰 실효가 없다는 판단 하에 경고 없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는 방식으로 규정이 강화된 것이다.

KBO가 규정을 강화한 이유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경기 시간 때문이다. 지난해 KBO 리그의 평균 경기 시간은 무려 3시간 27분. 타고투저로 공격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습관적으로 타석을 벗어나 장갑과 헬멧을 고쳐 쓰는 타자들이나 공을 던질 때마다 로진백을 만지고 모자를 고쳐 쓰는 투수들도 원인이었다.

이런 불필요한 동작들은 경기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리므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너무 길고 지루한 경기가 이어진다면, 새로운 팬층에 외면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게 KBO가 느끼는 위기감이다.

이런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KBO리그뿐만이 아니다. 2014년 메이저리그의 평균 경기 시간은 KBO리그보다 19분이 짧은 3시간 8분이었지만, 메이저리그 역시 경기촉진위원회를 구성해 경기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AFL(애리조나 가을 리그)에서 '타자는 타석에 들어선 순간부터 최소한 한 발을 타석 안에 둬야 한다'는 조항을 시범 운영했다. 그 결과 AFL의 평균 경기 시간은 전년 대비 10분이 단축됐다.

KBO 리그의 시범경기에서도 경기 시간 단축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지난 주말 열린 2015 시범경기 개막 2연전 10경기의 평균 경기 시간은 2시간 48분이었다.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약 15분이나 짧아진 셈이다. 비록 적은 표본이지만, 스피드업 규정의 강화가 가져올 경기 시간 단축 효과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경기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취지 역시 대부분의 야구 관계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kt의 조범현 감독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스피드업을 의식하고 경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경기가 늘어져서는 안 된다"며 취지 자체에는 공감했다.

문제는 스피드업을 위한 규정이 경기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거나 경기 자체를 변질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시리즈 7차전 9회 말 2아웃 만루 상황에서 긴장한 타자가 무의식적으로 타석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아웃을 당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흥행을 위한 스피드업 규정으로 인해 재앙이 찾아오게 될지도 모른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물론 선수들은 금방 적응할 것이므로, 그런 일은 일어날 일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그러나 지난해 이미 경고 규정이 있었으며 12월에 현행 규정을 발표했고, 캠프에서 심판들과 충분한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인 것을 생각한다면 마냥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12초 룰'에 적응한 투수들처럼 타자들도 적응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메이저리그는 같은 규정을 시행하고 있지만, KBO 리그처럼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는 방식이 아니라 최대 500달러의 벌금을 매기는 방식을 택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KBO처럼 타석 이탈을 할 경우 스트라이크를 선언하지만, 관중이 몰려드는 1군(MLB)에서는 오히려 흥행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고 보인다.

마이너리그에서는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는 이유가 뭘까.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연봉이 낮은 이유도 있겠지만, 주된 원인은 마이너리그가 유망주의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리그라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기 전에 확실하게 배우라는 식이다.

이를 한국야구에 적용한다면, KBO리그에서는 벌금을 매기고 퓨처스리그에서는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변경될 경우, 벌금의 구체적 액수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그 외에도 경고 1회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삼진이 아닌 벌금으로 하지는 의견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타석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최소한 한 발을 타석 안에 둬야 한다'는 조항 자체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인식 KBO 규칙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문제가 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시범경기 동안 지켜보고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KBO가 어떤 해결 방안을 내놓을지, 재논의를 거친 스피드업 규정이 경기 시간 단축과 흥행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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