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KBO 최고의 강속구 투수는?

[베이스볼 Lab.] 스피드를 높여가는 국내파 '영건'들

스피드는 인간의 본능이다. 사람들은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바이크와 총알처럼 질주하는 스포츠카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짜릿한 쾌감을 맛본다. 야구에서도 다르지 않다. 투수가 던지는 불같은 강속구와 스피드건에 찍히는 놀라운 숫자는 야구팬을 열광하게 하고,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게 하며, 무쇠 같은 어깨를 지닌 투수를 영원히 사랑하게 만든다. 강속구 투수에 대한 사랑은, 야구팬의 본능이다.

그렇다면 ‘강속구 투수’를 가르는 기준선은 어느 정도일까. 초창기 프로야구(KBO리그)에서는 140km/h가 기준으로 거론됐다. 1990년대 초에 스포츠지에 실린 한 칼럼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요즘 신문에서 유행처럼 나오는 말이 ‘시속 140km대’다. 유망주다 하면 너나없이 140km를 넘나드는 직구스피드를 가졌다는 얘기다. 그게 사실이라면 국내야구의 수준이 그만큼 향상됐다는 뜻일 텐데 실제 경기에서 140km를 넘는 스피드를 자랑하는 선수는 몇이나 되던가”(스포츠서울 이종남의 야구산책 中).

실제 당시 스포츠지에서는 신인급 투수가 ‘140km/h’대 구속을 기록하면 1면에 대서특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140km/h대 투수가 많지 않았고, 강속구 투수가 귀하신 몸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외국인 투수가 등장하고 선수들의 체격 조건과 피칭 메커닉이 크게 향상된 2000년대 이후에는, 140km/h 정도로는 고교야구에서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어렵다. 이제는 140km/h를 가볍게 뛰어넘어, 150km/h대 광속구를 뿌리는 투수를 각 팀마다 서너명은 보유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시즌 KBO리그에서 전광판에 150km/h 이상의 구속을 한 번 이상 기록한 투수들의 명단이다.

2015년 등록선수들만을 대상으로 집계했으며, 자체 집계한 자료인 관계로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자료제공: www.baseball-lab.com)


KBO리그를 떠난 밴덴헐크(전 삼성)와 레이예스(전 SK), 리오단(전 LG), 어센시오(전 KIA), 군 입대한 이용찬(두산)까지 포함하면 총 31명의 투수가 150km/h 이상을 기록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국내 투수들의 약진이다. 31명 중 외국인 투수는 7명이고, 나머지 22명이 국내 투수들이다. 또 이 22명 중 17명이 아직 20대 나이의 ‘영건’이라는 점은 KBO리그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2015 시즌에도 150km/h 이상 강속구 투수들의 행렬은 계속될 전망이다. 소사와 자웅을 겨루던 밴덴헐크는 일본으로 떠났지만, 대신 새로운 외국인 투수들과 신인급 선수들이 대거 리그에 합류했기 때문. 개막 한 달을 앞둔 2015시즌에는 어떤 투수가 놀라운 스피드로 우리를 열광하게 하고, 사랑에 빠지게 할까. 2015 KBO리그 ‘스피드 킹’에 도전할 주요 선수 10인을 꼽아봤다.

헨리 소사 (LG 트윈스, 최고 157km/h)

ⓒ연합뉴스

소사는 2014시즌 KBO리그에서 밴덴헐크와 함께 최고의 강속구를 던진 투수다. 스피드건에 찍은 최고구속은 157km/h. 여기에 빠른 볼 평균구속도 148.9km/h를 기록하며 웬만한 강속구 투수들의 최고구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다. 소사는 패스트볼 뿐만 아니라 모든 게 다 빠른 투수다. 싱커도 150km/h대, 체인지업은 140km/h대를 줄곧 찍었다. 2015시즌에는 목동 홈런공장을 벗어나 잠실야구장에서 던지게 되는데, 그렇다면 조금 더 빠른 볼 비율을 높이면서 공격적인 승부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2014시즌 LG의 팀 범타처리율(DER, 인플레이 타구를 아웃으로 잡아낸 비율)이0.670으로 소사의 전 소속팀 넥센(0.651)보다 훨씬 좋았다는 것도 성적 향상이 기대되는 요인이다. 2015시즌 가장 유력한 스피드킹 후보다.

알프레도 피가로 (삼성 라이온즈, 최고 156.4km/h)

밴덴헐크는 떠났지만, 대신 피가로가 왔다. 피가로는 강속구 괴물이 즐비한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파이어볼러였다. 2014시즌 전체 투수 중 패스트볼 평균구속 57위(95마일/h)에 올랐고 2013년에도 70이닝 이상 투수 중 12위(95.1마일/h)에 이름을 올렸다. 킬로미터 단위로 환산하면 최고구속은 156.4km/h, 평균구속은 152.8km/h 짜리 직구를 사정없이 뿌려댄 셈이다. 물론 KBO리그에서는 불펜이 아닌 선발투수로 뛰게 되는 만큼 전체적인 구속은 약간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소사의 독주를 견제할 가장 유력한 후보임은 틀림없다.

조상우 (넥센 히어로즈, 최고 155km/h)

ⓒ연합뉴스

넥센 조상우는 국내 투수 중 최고의 파이어볼러다. 2014시즌 최고 155km/h의 스피드를 기록해 관중들의 도파민을 자극했고, 평균 패스트볼 구속도 소사와 비슷한 148.3km/h에 달했다. 선발이 아닌 불펜투수라서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상우는 고교 시절에도 밥 먹듯 150km/h를 던지고 물 마시듯 완투하는 선수였다. 다만 조상우가 현재의 가공할 구속을 계속 유지하려면, 팀에서도 세심한 관리를 해줄 필요가 있다. 2014시즌 조상우는 부상으로 두 달가량을 건너뛰었는데도 48경기에서 69.1이닝을 던졌다. 올해는 한현희의 선발 전향으로 불펜에서 맡은 책임이 더욱 커졌다. 팬들은 조상우의 스피드 쇼를 오래도록 보고 싶다.

한승혁 (KIA 타이거즈, 최고 154km/h)

한승혁은 국내 투수 중 롯데 최대성과 함께 두 번째로 빠른 최고구속의 주인공. 배구선수 출신 아버지의 영향인지 빠르고 강한 팔 스윙으로 평균 145.8km/h의 패스트볼 스파이크를 날렸다. 삼진%도 19.49%로 수준급 탈삼진 능력을 보여줬다. 문제는 제구력. 한승혁의 2014년 BB%는 17.33%로 거의 타자 대여섯 명당 하나씩의 볼넷을 허용했다. 이는 KIA 투수 중에 가장 나쁜 비율이다. 한승혁이 올 시즌에는 만년 기대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투수’로 거듭날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암울해 보이는 KIA의 이번 시즌에도 희망은 있다.

조쉬 스틴슨 (KIA 타이거즈, 최고 153.2km/h)

KIA의 새 외국인 투수 스틴슨도 만만찮은 강속구 투수다. 스틴슨은 2014시즌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으로 최고구속 153.2km/h, 평균 148km/h에 달하는 패스트볼을 던졌다. 포심 패스트볼 외에도 투심과 커터도 150km/h대를 기록했고, 슬라이더조차 140km/h 중후반대로 빠르다. 특히 스틴슨의 강점은 패스트볼이 자연적으로 가라앉는 무브먼트를 형성한다는 점. 150km/h가 넘는 광속구가 타자 앞에서 빠르게 떨어지기까지 한다면, 좀처럼 정타를 쳐내기 쉽지 않다. 다만 탈삼진보다는 많은 땅볼을 유도하는 타입의 투수라서 KIA 수비진의 지원이 필요하다. 2014년 KIA의 범타처리율은 0.643으로 한화(0.633)에 이은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최영환 (한화 이글스, 최고 153km/h)

2014시즌 삼미 슈퍼스타즈의 팀 평균자책점 기록을 갈아치운 한화 마운드지만, 젊은 투수 중에는 빠른 볼을 던지는 가능성 있는 투수들이 적지 않다. 대졸 1년 차 신인으로 시즌 50경기에 출전하며 많은 기회를 받은 최영환도 그중 하나. 개성고 시절부터 강속구 투수로 기대를 모았던 최영환은 팔꿈치 부상에서 돌아온 2013년 구속을 140km/h 중후반으로 끌어올리더니, 한화 입단 첫해인 지난해는 최고 153km/h를 찍으면서 이름값을 증명했다.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43.9km/h. 다만 삼진보다 많은 볼넷(42<43)을 내준 제구력 문제는 개선이 필요하다. 또 일부 전문가는 최영환의 독특한 투구폼이 ‘상대 타자에게 공이 훤히 잘 보이는’ 부작용을 낸다고 지적한다.

노성호 (NC 다이노스, 최고 151km/h)

ⓒ연합뉴스

좌완 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잡아와야 한다는 격언은 2014 KBO 150km/h 명단에서 좌완투수가 딱 4명뿐이라는 데서 다시 한 번 증명된다. NC 노성호는 2014시즌 최고 151km/h, 평균 146.8km/h의 살인적인 강속구를 뿌렸다. 여기에 BB%도 2013년 14.18%에서 13.21%로, 피OPS도 0.846에서 0.758로 끌어내려 더디게나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15년 NC는 외국인 투수 TO가 3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그만큼 국내 투수들 간의 선발투수진 진입 경쟁이 치열해졌다. 팀을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나 올 시즌에는 ‘Thrower’에서 ‘Pitcher’로 거듭나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안상빈 (kt 위즈, 최고 150km/h)

신생팀 kt 위즈의 비밀병기. 고교시절 사이드암 투수로는 흔치 않은 140km/h 후반대 강속구로 기대를 모았지만, 고질적인 제구 난조 탓에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을 받지 못했다. 퓨처스리그에서 뛴 지난해도 30.2이닝 동안 볼넷 32개, 몸에 맞는 볼 14개로 제구 불안은 여전한 모습. 하지만 호리호리한 체구에서 나오는 최고 150km/h 짜리 강속구는 야구 관계자와 팬들에게는 매력적이고, 상대하는 타자에게는 위협적이다. kt는 안상빈을 지명하면서 “미래의 임창용이 될 재목”이라 했다.

서진용 (SK 와이번스, 최고 150km/h)

지명 당시 SK의 ‘파격 선택’으로 화제가 된 투수. 그러나 입단 뒤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1라운드 지명권을 날렸다’는 팬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지금은 SK 마운드의 기대주로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서진용의 최대 무기는 싱싱한 어깨에서 나오는 140km/h 후반대 빠른 볼. 사실 상무 입대 이전에도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서진용이 퓨처스 경기에서 150km/h를 던졌다”는 도시전설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빠른 볼 투수들의 지병인 제구력 불안도 병세가 심하지 않은 편. 서진용은 2014년 상무에서 38.1이닝 동안 13볼넷/45탈삼진을 기록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서진용이 진짜 용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강률 (두산 베어스, 최고 150km/h)

입단 8년차 강속구 유망주. 퓨처스리그에서는 상대 타자들이 손도 대지 못할 만한 압도적인 공을 뿌렸다. 실제 퓨처스리그 경기 후반 김강률이 등장하면 두산은 물론 상대팀 타자들까지 “경기 끝났다”고 서로 이야기하는 광경을 종종 연출했다. 퓨처스에서의 좋은 투구를 발판으로 1군에서도 매년 꾸준히 기회를 얻었지만, 5시즌 동안 연평균 투구이닝이 19.1이닝에 불과할 만큼 좀처럼 1군 투수로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최고 150km/h, 평균 146.1km/h에 달하는 묵직한 빠른 볼은 8년이 아니라 태양 흑점이 폭발하는 순간까지도 결코 기대를 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이번 두산 스프링캠프에서도 벌써부터 스피드건 고장을 의심케 하는 공을 뿌려대며 화제를 몰고 다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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