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타저 시대, ‘미스터 에버리지’를 찾아서

[베이스볼 Lab.] 있을 곳이 아닌 자리에 오른 헤이워드

야구는 상대적이다. 투수가 득세하면 타자들이 숨을 죽이고, 타자들의 기가 살면 투수들은 기가 죽는다. 흔히 ‘1루수라면 30홈런은 기본으로 쳐야지’라든가 ‘에이스라면 2점대 평균자책은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이런 기준선은 시대와 리그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진다. ‘스테로이드 시대’로 분류되는 1999년이라면 메이저리그 1루수의 30홈런이 당연했을지 모르나(총 11명), 투수들이 지배한 2014년에는 30홈런 1루수는 귀하신 몸이다(총 4명). 반대로 1999년에 단 4명뿐이던 2점대 평균자책 투수는 지난 시즌 총 22명으로 흔하디흔한 존재가 됐다.

이처럼 시대가 바뀌면 잘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를 가르는 기준선인 ‘리그 평균’의 기대치도 바뀐다. 역사적인 타고투저 시대를 지나 극심한 투수들의 시대가 찾아온 지금, 과거와는 다른 ‘리그 평균’의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베이스볼 Lab.>은 2014년 메이저리그의 각 포지션별 평균 타격 성적을 바탕으로 가장 리그 평균 수준에 가까운 선수들을 선정했다. 조금 멋을 부려 이 선수들을 ‘미스터 에버리지’라 부르기로 하자. 이 명단에 오른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오늘날 메이저리그에서 각 포지션별 선수에게 기대하는 성적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2014 시즌 타격 성적만을 기준으로 선정했으며, 수비 및 구장효과는 고려하지 않았다.

포수: 웰링턴 카스티요 (시카고 컵스)

메이저리그 평균: .245/.309/.380 OPS .689
미스터 에버리지: .237/.296/.389 OPS .686

2014 시즌 정확히 리그 평균 수준의 타격에 괜찮은 수비를 바탕으로 시카고 컵스 주전 포수로 활약한 카스티요. 하지만 돌아오는 시즌 중에는 다른 팀 유니폼을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시카고 컵스가 오프시즌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트레이드로 미겔 몬테로를 영입했기 때문. 통산 장타율 .421에 달하는 몬테로는 카스티요보다 타격에서 앞서는 것은 물론, 포수 수비에서 뛰어난 프레이밍 능력(미트질)으로 상대적 우위에 있다. 스탯코너닷컴에 따르면 몬테로는 지난 시즌 경기당 1.48개의 볼을 스트라이크로 둔갑하게 만드는 능력을 발휘한 반면, 카스티요는 경기당 1.80개의 스트라이크를 볼로 뒤바꾸며 투수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여기에 시카고 컵스는 백업 포수로 지난해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활약한 백전노장 데이비드 로스를 영입한 상황. 로스 역시 지난 시즌 경기당 1.66개의 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들어 낸 미트질 잘하는 포수이며, 포수 수비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세이버메트릭스를 팀 운영에 많이 활용하는 테오 엡스타인 사장은 이처럼 프레이밍 능력을 강점으로 갖춘 포수들을 영입해 이번 시즌 팀 성적을 끌어올리려는 계획이다. 컵스에서 카스티요의 입지가 굉장히 좁아졌다.

1루수: 브랜든 벨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메이저리그 평균: .255/.331/.426 OPS .757
미스터 에버리지: .243/.306/.449 OPS .755

1루수는 전통적으로 강타자들의 포지션. 타고투저가 극에 달했던 2000년 메이저리그 1루수들의 평균 성적은 .286/.377/.503에 OPS .880에 달할 정도였다. 그런데 만일 응원하는 팀의 1루수가 OPS 7할 중반대의 타격을 선보인다면? 팬들로서는 꽤나 답답함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극도의 투고타저를 경험한 2014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규정타석을 채우고 OPS .880을 넘긴 1루수는 단 4명(호세 어브레이유, 앤서니 리조, 에드윈 엔카나시온, 미겔 카브레라)에 불과했다. 더 이상 1루수에게 7할대 OPS는 부끄러운 숫자가 아니다.

미스터 에버리지 1루수로 꼽힌 브랜든 벨트는 좌타자에게 극단적으로 불리한 구장인 AT&T 파크를 홈으로 사용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벨트는 오히려 평균보다 나은 타격을 보여준 1루수로 볼 수도 있다. 또 구장 효과가 아니라도 벨트는 원래 이보다는 훨씬 나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 그러나 지난 시즌 투구에 맞아 엄지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으로 61경기 출전에 그쳤고 나온 경기에서의 성적도 기대에 못 미쳤다. 부상을 털고 정상적인 활약을 펼친다면, 다음번 미스터 에버리지 명단에서 벨트의 이름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2루수: 콜튼 웡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메이저리그 평균: .256/.313/.373 OPS .687
미스터 에버리지: .249/.292/.388 OPS .680

센터라인(포수, 2루수, 유격수, 중견수) 선수들에게 기대하는 타격 수준이 원래 낮은 만큼, 6할대의 평균 OPS가 나온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참고로 스테로이드 시대라 불리는 2000년에는 2루수들의 평균 OPS가 .754에 이르렀는데, 이는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1루수들의 평균 OPS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게 바로 과거와는 다른 기준으로 선수들의 성적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2013년 월드시리즈에서 '끝내기 주루사'를 범하고 울먹이던 하와이 출신의 루키는 2년 차인 지난해 평균 수준의 공격력을 갖춘 2루수로 성장했다. 카디널스는 2014시즌에 앞서 前 월드시리즈 MVP였던 데이비드 프리즈를 트레이드하고 2루수 맷 카펜터를 3루수로 포지션 변경을 시키면서까지 웡의 앞길을 열어준 바 있다. 웡은 지난 시즌 보여준 모습으로, 팀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냈다.

3루수: 케이시 맥기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메이저리그 평균: .259/.318/.397 OPS .715
미스터 에버리지: .287/.355/.357 OPS .712

원래 3루수 자리는 거포들의 자리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3루수들의 생산력이 타 포지션에 비해 크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매년 3루수들의 생산력은 센터라인 포지션인 중견수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수준이었는데 2013년에는 근소한 우위(.735 > .730)였지만 2014년에는 근소하게 열세(.715 < .719)를 보였다.

미스터 에버리지 3루수로 꼽힌 맥기히는 2013년엔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고 2014년 다시 미국 무대로 컴백해 지난 시즌 마미애이 말린스에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선보였다. 돌아오는 시즌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을 맺고 보스턴으로 떠난 파블로 산도발의 빈자리를 메우게 됐다. 그러나 풀타임 데뷔 이래 최고의 BABIP(.335)와 함께했던 '운'이 내년에도 계속 지속될지는 미지수이다. 올 시즌 맥기히의 BABIP(페어지역 안에 떨어지는 타구의 안타 비율)이 평상시 수준인 0.297로 돌아온다면, 지난해 2할 8푼대를 기록한 맥기히의 타율도 다시 2할 중반으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크다.

유격수: 제드 라우리 (휴스턴 애스트로스)

메이저리그 평균: .255/.310/.368 OPS .678
미스터 에버리지: .249/.321/.355 OPS .676

거포 유격수들이 다른 포지션의 거포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투수를 제외하고 가장 타격 생산력이 떨어지는 포지션이 바로 유격수이기 때문이다. 하나 흥미로운 점은 2000년 유격수들의 평균 OPS는 무려 .737로, 지난 시즌 리그 평균 OPS인 .700보다 3푼 7리나 높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2000년 당시 리그 평균 유격수의 성적이 지금 시대엔 어떤 포지션에 가져다 놔도 리그 평균을 훨씬 웃도는 타격 성적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최근의 투고타저 현상이 극심한 수준이다.

2013년 2월 휴스턴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했던 라우리는 그 해 시즌 뒤 FA 자격을 취득, 3+1년 계약으로 다시 휴스턴으로 돌아왔다. 수비력이 아주 빼어난 편은 아니지만 유격수, 2루수, 3루수를 모두 커버할 수 있으며, 2014 시즌 다소 부진했지만 유격수로는 수준급의 공격력을 갖춘 선수로 평가되고 있다.

좌익수: 카를로스 곤살레스 (콜로라도 로키스)

메이저리그 평균: .257/.322/.402 OPS .724
미스터 에버리지: .238/.292/.431 OPS .723

도대체 왜 카를로스 곤살레스가 '평균' 선수에 뽑힌 것이지? 라고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정상적인' 곤살레스라면 당연히 여기에 언급되는 안 되는 대형 타자다. 특히나 홈구장이 타자들의 천국인 쿠어스필드라는 점까지 더해 생각해보면 고작 리그 평균 좌익수 정도의 성적을 냈다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유는 부상. 곤살레스는 지난 시즌 내내 왼쪽 무릎, 오른쪽 발목 부상을 안고 뛰었고 결국 8월엔 부상으로 얼룩진 시즌을 일찌감치 마감했다. 트레이드 대상으로 꾸준히 거론되기도 했지만, 콜로라도의 제프 브리디치 단장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곤살레스의 트레이드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혔다. 2015년에는 과연 곤살레스가 부상을 떨쳐내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이 명단에서 곤살레스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견수: 라자이 데이비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메이저리그 평균: .265/.325/.394 OPS .719
미스터 에버리지: .282/.320/.401 OPS .721

타격 생산력 면에서는 포수 평균(OPS .689)보다 중견수가 훨씬 더 낫지만, 홈런 개수는 중견수가(393개) 포수(469개)에 비해 훨씬 적다. 이는 주로 우락부락한 근육보다는 날랜 몸을 가진 선수들이 중견수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중견수는 전 포지션 중 3루타(185), 도루(745)에선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발이 빠른 선수들이 많아 내야안타를 치기 유리해서인지 BABIP도 .320으로 전 포지션 중 가장 높다.

중견수보다는 좌익수로 훨씬 더 많이 나왔지만, 중견수 포지션에서 OPS .719 근처의 타격라인을 남긴 선수가 존재하지 않아 라자이 데이비스를 미스터 에버리지로 선정해야 했다. 데이비스는 내야안타 비중이 10%를 넘기고, 번트 타구가 페어지역으로 들어왔을 때 안타가 될 확률이 37.5%에 이르며, 6년 연속으로 30개 이상의 도루를 성공할 만큼 발 빠른 선수. 다만 타구 판단 등의 직감이 부족해 수비에서는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

우익수: 제이슨 헤이워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메이저리그 평균: .261/.324/.411 OPS .735
미스터 에버리지: .271/.351/.384 OPS .735

ⓒAviator157
메이저리그 최고의 우익수 수비를 자랑하는 헤이워드이기에 리그 평균 우익수로 거론할 만한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헤이워드에게 원래 바랐던 모습은 '수비형 우익수'가 아니라 '강한 공격력을 가진 우익수'였다. 타격 재능을 완전히 다 터뜨리지 못한 대표적인 선수로 꼽히지만, 아직 25살밖에 되지 않아 앞으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충분하다.

세인트루이스는 이번 오프시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헤이워드와 불펜투수 조던 월든을 데려오면서, 마찬가지로 재능만큼의 활약을 아직 보여주지 못한 투수 쉘비 밀러와 타이렐 젠킨스를 내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세인트루이스의 새로운 환경에서 헤이워드가 마침내 자신의 재능을 다 터뜨릴 수 있을까?

지명타자: C.J. 크론 (LA 에인절스)

메이저리그 평균: .247/.317/.419 OPS .736
미스터 에버리지: .256/.289/.450 OPS .739

최근 메이저리그는 지명타자 자리에만 나오는 '붙박이 지명타자'들의 비중이 크게 줄었다. 여기에 인터리그 경기가 늘어나면서 전문 지명타자 요원을 갖추지 못한 내셔널리그 팀들이 지명타자를 기용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명타자의 타격 생산력은 1루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그리고 그 지명타자 자리의 미스터 에버리지는 지난 시즌 데뷔한 루키 C.J. 크론이 차지했다. 79경기 253타석에 나와 11개의 홈런을 때린 크론은 풀타임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많은 홈런포를 기대할 수 있는 거포다. 그러나 볼넷이 매우 적어 출루율도 극도로 낮은데, 크론은 마이너리그에서도 많은 볼넷을 얻어내지 못하던 선수. 앞으로 메이저리그에서 경험이 쌓이더라도 높은 출루율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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