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에도 지명타자? 문제는 스트라이크존이야, 바보야!

[베이스볼 Lab.] 경기 시간 줄인다고 재밌어지나

새로운 커미셔너 롭 만프레드의 취임 이후, 메이저리그엔 변화의 바람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취임 이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야구 인기를 다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으며 이를 위해 경기 시간 단축, 투고타저 완화 방안을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특히 ‘수비 시프트 금지’ 발언 파문 이후 각종 매체와 전문가들은 투고타저를 해소할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이 중 <보스턴 글로브>의 칼럼니스트 닉 카파도가 제시한 방법은 내셔널리그에도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 1973년 아메리칸리그가 먼저 도입한 제도를 내셔널리그에서도 따라 도입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미국의 야구팬들은 - 특히 내셔널리그 팬들은 - 이를 크게 반대하고는 한다. 언뜻 생각하면 사실상 자동아웃이나 다름없는 투수들 대신 지명타자가 타석에 나오면서 더 많은 점수가 쏟아질 테니 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환영할 일 같은데, 실제로는 반대 의견이 찬성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그들은 왜 지명타자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것일까?

먼저 다양한 작전을 보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이유로 꼽아볼 수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점점 ‘스타 감독’이 사라져 가고 있는 추세다. 어차피 감독이 팀의 승패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젊고 언론에 친화적이며 선수들을 잘 관리하는 말 그대로 ‘매니저’의 역할에 충실한 감독들이 많이 선임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감독의 비중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고는 하더라도, 감독이 경기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셔널리그에서는 투수 타석을 앞둔 상황에서 대타 기용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혹은 아메리칸리그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더블 스위치를 고려해야 할지 등 감독들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간다. 적어도 지명타자 타석을 앞둔 상황보다는 감독이 머리 쓸 일이 훨씬 더 많다. 이 때문에 아메리칸리그에서만 오래 감독을 하거나, 초보 감독들의 경우 인터리그 경기 때 내셔널리그에서 잔뼈 굵은 감독들에게 지략 대결에서 밀리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지명타자 제도가 사라진다면, 이런 잔재미를 볼 기회가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타격 연습 중인 류현진. ⓒ연합뉴스

그리고 지명타자는 사실상 ‘반쪽 선수’를 운용하는 형태의 경기이다. 초창기의 야구는 그라운드 위에 있는 9명이 모두 공격과 수비에 참여하는 경기였다.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야구의 경우 지명타자는 야구의 나머지 절반인 수비에는 참여하지 않으며, 투수는 야구의 절반인 공격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 반쪽 선수를 기용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 라는 생각이 더 나아간다면 아예 공격조 수비조로 나눠 9명의 지명타자와, 9명의 전문 수비수를 기용하자는 말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종목인 미식축구는 공격조와 수비조가 따로 있는 경기이다.

지명타자 제도의 도입으로 점수를 더 많이 나게 만들어 팬들을 야구장으로 유인하자는 생각은 충분히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모든 지명타자가 데이비드 오티즈나, 에드거 마르티네스 같은 강타자는 아니다. 실제 2014 시즌 아메리칸리그 팀들의 평균 득점은 4.18점이고 내셔널리그 팀들의 평균 득점은 3.95점이다. 그 차이는 0.23점. 한 팀이 경기당 0.23점을 더 낸다고 해서 갑자기 야구가 획기적으로 재미있어질 리는 없다. 지명타자 제도의 도입은 투고타저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100년이 넘게 지속된 ‘전통’을 부순다면 팬들을 야구장으로 유인하려는 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스포츠 커뮤니티에서 종종 실시하는 ‘내셔널리그에도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에는 ‘No’라는 답변을 훨씬 많이 볼 수 있다. 팬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투고타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제대로 된 원인을 모르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당연히 잘 해결될 리가 없다. 진짜 원인을 찾아보자. 메이저리그에서 투고타저가 심해진 진짜 이유는 바로 ‘스트라이크 존의 확장’이다. <하드볼 타임즈>의 연구에 의하면 현재의 스트라이크 존은 5년 전에 비해 약 40 제곱인치가 커져 있는 상태다. 그로 인해 삼진의 비율은 나날이 메이저리그 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며, 인플레이가 되는 타구의 개수는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스트라이크 존이 커지니 득점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굳이 TV로 야구를 보지 않고 야구장을 찾는 팬들 중 야구장에 가는 이유를 “딱!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날아가는 타구를 보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플레이가 되는 빈도가 줄어든다면, 그만큼 ‘딱!’하는 타구음은 덜 들리기 마련이고, 시원하게 날아가는 타구의 빈도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문제는 현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투고타저 해소와 함께 ‘더 빠른 경기 진행’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스트라이크 존이 줄어든다면 그만큼 경기 시간은 늘어나게 마련. 이는 경기 속도를 단축하려는 MLB 사무국의 계획과 모순된다. MLB 새 사무국이 투고타저 해소를 위해 스트라이크 존을 줄이는 근본적인 해결방안 대신 이런저런 대증요법만 내세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러나 야구의 경기 시간이 정말로 심각한 문제일까? 2014년, 메이저리그 평균 경기 시간은 약 3시간 2분이었다. 미국인들이 미쳐있는 미식축구에 비해 훨씬 길어 야구가 지루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일까? 아니다. ESPN과 팬그래프에 글을 기고하는 마이크 페트리엘로의 조사에 따르면 2012~2013시즌 NFL의 평균 경기 시간은 오히려 메이저리그에 비해 8분이 더 길다. 내셔널리그에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는 실질적으로 별 효과도 없는 방법을 쓰기보단, 진짜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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