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MLB 대표 '흑마구' 투수는?

[베이스볼 Lab.] 메이저리그 느린 공 투수 Top 5

지난 글에서 강속구 투수에 팬들이 열광한다고 쓰긴 했지만, 공이 빠르다고 해서 반드시 효과적인 피칭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레전드 투수 워런 스판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타격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다.” 2015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느린 구속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흑마구 투수’는 누가 있을까? 그렇게 느린 공을 갖고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2015 MLB '스피드 킹'은 누구?>에 이어 이번엔 느린 공을 던지는 투수들의 차례다.

R.A. 디키 (2014 패스트볼 평균구속 81.5mph)

ⓒKeith Allison

여기서 너클볼 투수를 언급하는 것은 반칙일지도 모르겠다. 디키의 지난 시즌 너클볼 평균구속은 시속 76.3마일로 너클볼 투수 중에서는 ‘강속구’를 던지는 편이다. 디키 이전의 유명한 너클볼러였던 팀 웨이크필드의 너클볼 구속이 60마일 중반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디키의 너클볼은 놀라운 구속을 자랑한다. 반면 디키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81.5mph로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 가운데 가장 느렸다. 물론 너클볼러의 특성상 패스트볼이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많이 던지지도 않지만(디키의 지난 시즌 패스트볼 구사 비율은 15.5%), 이번 시즌에도 디키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느린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로 이름을 올릴 게 확실하다.

마크 벌리 (2014 패스트볼 평균구속 83.9mph)

통산 200승에 단 1승만을 남겨두고 있는 베테랑 벌리의 경기를 보면 도대체 왜 저런 느린 공을 치지 못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느린 공 투수는 타자의 약점을 잘 파악해 영리하게 타자를 농락할 거로 생각하기 쉽지만, 벌리는 그렇지도 않다. 벌리는 자신 혹은 다른 투수들의 피칭 영상을 다시 보지도 않으며, 상대 타자에 대한 스카우팅 리포트를 읽지도 않는다. 벌리는 자기가 던지는 80마일 초 중반대의 패스트볼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갖고 자신 있게 공을 던진다.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면서도 자신감이 부족해 타자를 피해 다니기 바쁜 투수들이 보고 배워야 한다.

크리스 영 (2014 패스트볼 평균구속 85.2mph)

크리스 영도 평균 90마일대의 패스트볼을 뿌리던 시절이 있었다. 단지 세월의 풍화작용과, 2009년 2010년 연달아 입은 어깨 부상으로 그나마 던지던 80마일 후반대의 패스트볼도 사라졌을 뿐이다. 그러나 영은 리그 평균 구속에도 미치지 못하는 느린 공을 가지고 지난 시즌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재기 선수상’을 수상할 만큼 호투를 펼쳤다. 비결은 바로 패스트볼의 수직 무브먼트. 투수가 던지는 공은 마운드에서 타자에게 오는 동안 아래로 ‘떨어지게’ 마련인데, 수직 무브먼트가 적으면 타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공이 ‘떠오르는’ 것 같이 느껴진다(실제로는 공이 예상보다 ‘덜 떨어지는’ 쪽에 가깝다. 크리스 영은 지난 시즌 패스트볼의 수직 무브먼트 부분에서 전체 1위에 올랐다.

조쉬 콜멘터 (2014 패스트볼 평균구속 86.4mph)

느린 공으로도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는 투수들은 대부분 좌완 투수들이다. 우완투수가 매우 느린 공을 던진다면 나이 많은 베테랑 투수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앞서 언급한 투수들도 디키는 나이 많은 ‘너클볼러’, 벌리는 좌완 투수, 크리스 영은 젊은 시절 던지던 빠른 볼을 잃어버린 ‘노장’이다. 반면 콜멘터는 정말 찾기 힘든 ‘나이 어린 우완 흑마술사’에 해당한다. 흑마술 계의 유망주(?)인 셈. 그런데 사실 콜멘터는 일반적인 투수들의 주무기인 포심 패스트볼을 거의 던지지 않는 투수다. 지난 시즌 콜멘터의 투구추적시스템(Pitch f/x)상 포심 패스트볼 비중은 2.3%에 그쳤다. 그 대신 변형 패스트볼인 커터를 60% 넘게 구사한다.

제러드 위버 (2014 패스트볼 평균구속 86.8mph)

콜멘터가 ‘가짜 우완 흑마술사’였다면 진짜 ‘우완 흑마술사’는 바로 여기 있다. “제러드 위버가 90마일을 넘기는 곳은 마운드 위가 아니라 고속도로일 확률이 높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그러나 위버는 그 느린 공을 가지고도 아메리칸 리그 탈삼진 타이틀을 따낸 바 있다. 느린 ‘똥볼’을 던지는 위버는 어떻게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가 되었을까? 그 비결은 바로 ‘디셉션’, 공을 잘 숨겨 나오면서 타자들이 타이밍을 잡기 어렵게 만드는 능력에 있다. 이 방면에서 위버는 메이저리그 ‘최고’ 반열에 올라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투수들을 통해 우리는 투수에게 강속구와 구속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불같이 빠른 볼은 없지만, 이 투수들은 각자 나름대로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비기’를 보유하고 있다. 강속구를 뿌리는 ‘정파’ 투수들 사이에서, 흑마구를 구사하면서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는 ‘사파’ 투수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메이저리그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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