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부마항쟁! 37년 만의 무죄'

부마항쟁 주도 정광민 씨, 재심 청구 끝에 무죄 선고

부마민주항쟁의 발단이 된 부산대 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법원으로부터 면소 판결을 받았던 정광민(58) 씨가 재심을 청구, 끝내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마항쟁 관련 시위로 구속돼 고초를 겪은 인사가 무죄를 확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1979년 부산대학교 운동장에 집결한 부마 항쟁 시위단들의 모습이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부산지법 형사6부(유창훈 부장판사)는 22일 정 씨가 지난 2013년 7월 제기한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등 혐의의 면소 판결에 대한 재심 청구소송에서 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은 적용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가 당초부터 위헌·무효여서 범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정 씨는 37년 만에 전과자 굴레에서 벗어났다.

정 씨는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이던 1979년 10월 16일 학내 시위를 주도해 경찰에 수배됐다.

부마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날 부산대 시위에는 학생 1000여 명이 참가해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정 씨는 곧바로 수사당국에 수배됐고 1979년 10월 19일 경찰에 자수했지만, 시위 주동자라는 이유로 유치장에서 형사들에게 고문을 당했다.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던 정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해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되면서 같은 해 12월 27일 부산지법에서 면소(법령이 사라짐에 따라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음) 판결을 받고 석방돼 학교로 돌아왔다.

하지만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예비검속 대상으로 체포돼 고문 받은 뒤 같은 해 8월 8일 군법회의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부산대도 정 씨를 출학 처분했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그는 2001년에서야 부마민주항쟁 피해자로 인정됐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지난해 정 씨는 부산지법에 재심을 신청했고, 해당 재판부는 지난 2월 15일 해당 판결의 재심을 결정하고 이날 무죄를 선고했다.

정 씨의 변호인은 "시대가 이렇게 변하는 동안 37년 전과자 신분으로 살아온 정 씨에게 늦게나마 무죄가 선고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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