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백혈병과 관계없다…특정암 발병률은 5배 높아"

반도체-백혈병 연관성 부인했지만 "추가 관찰 필요" 애매한 결론

'삼성반도체 백혈병' 논란과 관련해 "반도체 작업 공정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는 림프조혈기계 암 가운데 하나인 비호지킨림프종의 발생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5배 높았으나 백혈병은 통계학적으로 의미 있는 증가를 찾을 수 없었다"는 공식 조사 결과가 29일 나왔다.

이날 이런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한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태도는 어정쩡했다. 삼성반도체 공정과 백혈병 사이의 업무 관련성을 통계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충분한 위험 요인 정보를 파악해 앞으로 장기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며 완전히 관련성을 부인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는 "국내 유일한 전문 기관이 확실히 아닌 것도 맞는 것도 아니라는 애매한 발표를 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삼성 자본이 갖는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이런 발표 내용을 놓고 강하게 반발했다.

"비호지킨림프종, 일반인에 비해 반도체 공정 여성 노동자가 5.16배 발병률 ↑"

이번 조사는 열아홉 살에 삼성전자에 들어가 2년 동안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다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지난 2007년 숨진 고(故) 황유미 씨의 유족들이 신청한 산재 승인 여부와 관련된 역학조사였다.

가장 큰 쟁점이 됐던 백혈병과 반도체 공정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연구원은 "일반 인구 집단과 비교해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증가는 없었다"고 밝혔다. 발표 내용을 보면, 여성의 경우 사망 비율은 일반인에 비해 1.48배, 암 발생 비율은 1.31배 높았으나 통계적 의미가 없고, 남성의 경우 오히려 일반인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림프조혈기계 암 가운데 하나인 비호지킨림프종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2.67배 높았다. 특히 반도체 조립공정의 생산직 여성은 무려 5.16배나 비호지킨림프종의 발생율이 높았다.

비호지킨림프종이란?

림프조혈기계의 암 중 하나로 신체의 림프계 세포에서 발생하는 암 질환이다. 림프종에는 호지킨림프종과 비호지킨림프종이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우리나라 국민의 경우 비호지킨림프종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백혈병과 반도체 공정 관련성 확인 못 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백혈병과 반도체 공정 사이의 관련성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스스로 조사의 한계를 인정했다.

직업병연구센터 박정선 소장은 "이번 역학조사는 발생률이 매우 낮은 질환인 림프조혈기계암의 위험도를 평가하기에는 추적 기간이 짧았고, 조사 대상자들의 과거 직업력이나 흡연 등 비직업적인 위험요인에 대한 정보가 없어 한계가 있었다"며 "암 발생의 원인 규명을 위한 역학연구는 충분한 위험요인 정보를 파악해 앞으로 장기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삼성전자 뿐 아니라 국내 반도체 웨이퍼제조업 6개사 9개 공장에서 10여 년 이상 일한 전·현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1995~2007년의 고용 보험 자료와 1998~2007년의 회사 측 인사 자료를 토대로, 통계청의 사망 원인 통계 자료, 국가 암 등록 자료, 건강보험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백혈병 등의 발병률과 사망위험이 일반 인구에 비해 높은지를 조사한 것이다.


▲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백혈병으로 사망하거나 현재 투병 중인 삼성반도체 노동자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홍구 집행위원장은 "역학조사 결과가 '확증할 수 없다'는 것이니 이제까지 관행 상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잘 모르겠다'가 진짜 결론이면서 왜 '낮다'고만 말하나?"

문제는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백혈병으로 사망하거나 현재 투병 중인 삼성반도체 노동자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는 데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홍구 집행위원장은 "역학조사 결과가 '확증할 수 없다'는 것이니 이제까지 관행 상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의 결론을 '백혈병과 반도체 공정 사이의 업무 관련성이 없다'로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공유정옥 소장(산업의학과 의사)은 "아픈 사람은 애초에 입사 자체가 불가능하고 삼성전자처럼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사람은 사회경제적 조건이 일반 인구보다 좋아 더 건강한 것이 정설인 만큼, 비슷한 조건의 대기업 노동자와 비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연구원 역시 인정하는 부분이다. 박두용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은 "유사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사람과 비교해야 하지만 그런 자료가 없어 일반 국민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또 공유정옥 소장은 "특히 희귀질병의 경우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찾기가 대단히 어렵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호지킨림프종이 5배나 높게 나온 것은 대단히 놀라운 결과이고 백혈병의 경우에도 한두 사람만 추가될 경우 확률이 확 올라갈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시민·사회단체들은 연구원이 이번 조사와 관련해 명확하게 "원인은 잘 모르겠다"고 밝히지 않은 것을 문제 삼고 있다. 공유정옥 소장은 "이 자료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판단 여부의 자료가 될 텐데 '백혈병 발병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고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는 것을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홍구 집행위원장도 "'잘 모르겠다'면 연관성을 일단 인정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하는 것이 국가 기관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산업안전공단이 사실상 책임을 방기하고 잇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이날 산업안전공단 이사장과 면담을 갖고 역학조사 보고서를 다시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의 역학조사 평가위원회 재심의 요구에 대해 연구원 측은 "일주일 안에 답을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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