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에서 전자발찌를 착용한 남성이 교제하던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일이 일어난 가운데, 여성계가 재발 방지를 위한 범정부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등은 17일 서울 종로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양주 가정폭력·스토킹 여성살해 사건은 국가의 '무능하고 안이한 대처'가 초래한 살인"이라고 규탄하며 이같이 밝혔다.
회견에 앞서 참가자들은 사망한 피해자를 위해 묵념했다. 지난 14일 경기 남양주에서 과거 사실혼 관계였던 40대 남성에게 흉기로 찔려 20대 여성이 사망했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피의자는 피해자 100미터 이내 접근과 휴대전화를 이용한 연락이 금지된 상태였다. 피해자는 사건 전부터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고 스마트워치도 지급받았지만 참사를 피할 수 없었다.
강화도 가정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녀 A 씨는 "이번 사건을 접하며 너무나 익숙한 분노와 절망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또 한 명의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현실에 깊은 무력감도 느꼈다"고 했다.
A 씨는 "내 어머니 역시 가정폭력으로 여러 번 경찰에 신고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처벌 불원, 진술 번복을 이유로 보호받지 못했다"며 "결국 엄마는 지금까지 3년째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있고, 우리 가족은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보호조치가 있었는데도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 보호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며 "피해자와 가족이 원하는 것은 사후 애도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작동하는 실질적 보호"라고 호소했다.
인천 스토킹 살해 사건 피해자의 가족 B 씨도 "동생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스토킹과 교제폭력으로 인한 살인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같은 장례식을 반복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B 씨는 "부디 이 죽음들이 헛되지 않도록 해 달라. 더 늦기 전에 스토킹과 교제폭력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법과 제도를 마련해 달라"며 "피해자를 실제로 지킬 수 있는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보호조치를 지금 당장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거창한 요구가 아니라 단지 누군가의 딸이, 누군가의 가족이 살아 있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청"이라며 "또 다른 죽음이 이어지지 않도록 이제는 정말로 국가가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 관계당국의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대책을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전날 이재명 대통령은 사건과 관련해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을 감찰한 뒤 엄하게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청은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책임자에 대한 문책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와 실효성을 담보하는 대책이 실천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대통령은 문책 말고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로운 대책을 찾을 게 아니라 지난 수십 년 간 피해자들이, 피해자의 유족들이,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들이 제안해 온 절박한 대책을 전부 검토해야 한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보여주기식, 편의대로 추진되는 정책들을 잡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송 대표는 "우리 사회는 여성폭력을 담당하는 경찰, 검찰, 판사, 부처 공무원에게 도대체 무엇을 훈련하고 있느냐"며 "갈등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고 위험의 징표를 파악하지 못하는 무능력함, 무신경함에 치가 떨린다. 이 무능력이 공무 전반을 잠식하고, 피해자의 목숨을 번번이 빼앗아 갈 때까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스스로를 '주권자의 충직하고 유능한 일꾼'이라고 말한다면 여성폭력을 담당하는 공무원들부터 그렇게 만들라"고 했다. 이어 "피해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알아듣고, 위험의 징표를 읽어내고, 가해자를 신속히 격리하고, 피해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기본이 지켜지는 국가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참가자들은 반복되는 교제폭력을 막기 위해 △체포·유치·구속 등 적극적 조치를 통해 피해자의 일상에서 가해자를 분리할 것 △가정폭력처벌법을 전면 개정해 교제폭력을 포함한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을 제대로 규율할 것 △여성폭력·여성살해 문제 해결을 위한 범정부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 등을 제언했다.
조윤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이 사건은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보호 요청을 모두 한 사건"이라며 "지금의 피해자 보호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점검하고 보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해 피해자는 최소 137명에 달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살인미수를 포함할 경우 하루 평균 1명의 여성이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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