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의 주인은 반도체 칩인가?"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끝> "오직 반도체만을 위한 '클린 공정'"

1년이 지났습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백혈병'이라는 같은 병으로 죽거나,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벌써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어린 딸을 잃었던 황유미 씨의 아버지가 작은 몸뚱이로 거대한 삼성과 세상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이후 하나 둘씩 피해자는 늘어갔습니다. 그럼에도 삼성은 여전히 '직업상 재해가 아니다'는 입장만 되풀이합니다. 고 황유미 씨의 유족이 신청한 산업재해 인정 요구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가 조만간 나올 예정입니다.

과연 백혈병과 삼성반도체 공정 사이의 인과관계가 드러날까요? 역학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과 <프레시안>은 다섯 번에 걸쳐 '삼성 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도 여전히 삼성반도체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가진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 죽음과 맞닿은 이야기에는 그들을 사랑하고 아꼈던 그래서 지금도 가슴에 무덤을 쌓고 살고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런 이들의 아픔이 있습니다. 고 황민웅 씨와 정애정 씨의 모습. ⓒ프레시안
애정 씨를 처음 만난 날이었습니다. 민웅 씨를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어려움 없이 살았던 고운 사람. 그녀를 처음 만난 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녀의 말이었습니다.

"핏덩어리 둘째가 태어나고 바로 그 사람이 떠났습니다. 그런데 장례식 내내 울지도 못했습니다. 친정 어머니가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손가락질 한다, 울지 마라… 그러셨거든요."

스치듯 지나치는 많은 이야기들 너머에는 그런 사람들의 사연이 있습니다. 특히 죽음과 맞닿은 이야기에는 그들을 사랑하고 아꼈던 그래서 지금도 가슴에 무덤을 쌓고 살고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런 이들의 아픔이 있습니다.

어느날 눈망울이 선한 어른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죽은 딸의 그림자, 딸을 잃고 아픈 아내, 그 때문에 속앓이도 제대로 못해서 고통스러운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는 한 가닥 끈이라도 잡고 싶었나 봅니다. 때늦은 유행가밖에 흘러나오지 않는 커피숍에서 가느다랗게 떨리는 손으로 커피잔을 쥐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유미가요, 삼성에 노조만 있었어도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껍니다."

투병중인 지연 씨 이야기를 건네며,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 활동을 함께하는 공유정옥은 "지연 씨가 나았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다 나아서 우리를 떠나고 외면하더라도 지연 씨가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했다.

봄이면 꽃구경, 여름이면 바닷가로 애인과 친구와 여행을 다녀야할 젊디젊은 지연 씨, 여느 또래 아가씨들처럼 긴 생머리에 새침한 표정으로 셀카 사진을 찍었던 유미 씨, 떠나기 직전 아픈 몸을 이끌고 막 태어난 아이의 출생 신고를 직접 했다는 아빠 민웅 씨. 거리를 스치는 보통 사람들이 이름 모를 약품 때문에 아프고, 그리고 떠나고 있습니다.

티끌하나 없이 깨끗한 공장, 환경 업체로 선정되기까지 하는 전자 산업 반도체 공장. 그러나 '깨끗한' 작업장은 반도체 칩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도체 칩이 만들어지는 "클린 룸(clean room)"에서, 노동자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덮을 수 있는 보호옷(통칭 토끼옷)을 입는다. 그러나 이 옷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칩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된 옷이다. 클린룸에서 공기도 일정하게 순환되지만 필터는 먼지만 제거하고 화학 가스는 제거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동안 발암물질 혹은 발암물질로 의심받는 수십종의 화학약품에 노출되고 그것을 호흡한다. 이들 약품중에서는 톨루엔(toluene), 카드늄(cadmium), 아신(arsenic), 벤젠(benzene) 그리고 트리클로로에칠렌(trichloroethylene)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물질들 뿐아니라 여러 화학약품들의 혼합으로 생성되는 화합물 역시 피할 수 없다. 역시 이런 화합물들은 사람에게 미치는지 영향이 한번도 실험된 적 없는 물질들이다.

-"깨끗한(?) 첨단산업의 더러운 비밀", "클린 룸의 더러운 비밀" 중에서

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어른의 말처럼 삼성에 노조만 있었더래도 자기가 만지는 약품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자신의 혈액에 어떤 무서운 병을 만들고 있는지 알 지 못하는 채, 노동자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가족들을 두고 먼저 떠나는 일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노동조합 때문에 경제가 휘청인다고 한탄하는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노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사람들은 당하면서 깨닫습니다.

그 공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두 침묵하는 지금, 노동자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정말 사람의 생명, 건강하게 일할 권리보다 이윤이, 기업 경쟁력이 더 중요한 일입니까? 한해 생산액이 20조원을 넘고, 지난 5년간 연 14%의 성장을 하고 있는 국가의 효자이기 때문에, 같은 라인 같은 공정, 같은 베이에서 2인 1조로 일하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일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수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세계적으로도 연간 10만 명당 2~3명이 발생한다는 드문 질환이라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젊은 나이에 더욱 희귀하다는 질병이 같은 공정의 젊은 작업자 두 명에게 동시에 발생해 생명을 빼앗았는데도, 회사는 기흥공장의 백혈병 유병률이 한국 전체 유병률보다 낮다고 주장하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측이 주장하는 '낮은 유병률'은 유가족과 대책위가 제시하는 추가 제보자가 나타나면 그만큼 추가로 인정되어왔습니다. 도대체 회사측이 주장하는 '낮은 유병률'이 어떤 방식으로 도출되고 있는지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진실을 감추려는 회사의 태도는 다른 나라의 예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IBM 제조공장에서 27년간 근무한 짐 무어와 14년간 일했던 알리샤 헤르난데스는 림프종과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IBM을 고소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에 자라난 암세포의 진상을 밝히는 도중, IBM을 퇴직한 250여 명의 노동자들이 그와 비슷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소송의 와중에 IBM이 1969년부터 미국 전역의 직원들을 거의 포괄하는 총 3만 여 건에 이르는 사망 기록을 보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그 기록은 지금까지 비밀입니다. 왜냐면 IBM은 이 자료들이 증거로 제출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송도중 증인으로 출석한 IBM 출신의 간호사와 의료진들은 환자들에게 독성 화학물질 때문에 병이 생겼다는 것을 절대로 얘기하지 말도록 회사 관리자들로부터 명령받았으며, "산재보상 청구를 피하기 위해, 근로자들이 호소하는 건강 문제의 원인이 화학물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그 대신 근로자의 알레르기 증상이나 음주, 고지방 식품 등이 원인이라고 돌리는 것이 불문율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 참고자료)

대책위를 찾아온 제보자 중에는 모든 진실을 털어 놓기로 한 당일, 미리 알아챈 삼성 측의 회유와 협박에 의해 발길을 돌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삼성은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지 않는 삼성으로 인해, 또다시 누가 그와 같은 질병으로 쓰러질지 알 수 없습니다. 어느 평범한 유미 씨와 지연 씨, 민웅 씨가 희귀한 질병으로 가족들의 아픔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유미 씨의 산재청구에 대해 근로복지 공단은 질병과 업무의 관련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산업안전공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한 상태입니다. 그 역학조사의 결과는 중요할 것입니다. 만약 산업안전공단이 유미 씨의 죽음과 업무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근로복지공단은 유미 씨의 산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가족들은 당사자들을 배제한 채, 회사 측이 제공한 자료에 의지해 역학조사 결과를 내밀려고 하는 산업안전공단의 판단에 대해 점점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바로가기)에는 언니와 동생이, 아버지가 백혈병으로 쓰러졌다는 제보가 올라옵니다. 언론에 관련 기사가 보도 되는 날은 제보 전화 또한 여러 통 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보는 삼성이라는 거대한 공룡 앞에 지레 겁을 먹고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삼성 관리자들도 유미 씨의 아버지에게 "아버님이 이 큰 회사를 상대로 이기려면 이겨보시오"라고 거만하게 말했나 봅니다. 삼성은 개인 질병이라고 인정하면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산업재해라고 주장하면 고개를 돌리는 비정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연 씨나 가족들은 마치 회사 측이 선물처럼 주는 병원비나 보상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회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역시 삼성반도체의 노동자였던 애정 씨는 지금도 현장을 지키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반도체 청정 라인의 주연은 웨이퍼이고, 조연은 현장 노동자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웨이퍼 작업사고가 나면 원인을 밝히기 위해 비상근무에 돌입하지만, 작업자가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은폐하기에 급급한 것이 저들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라인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독한 화학약품의 냄새도 잊고, 높은 압력 때문에 코피 나고 다리가 팅팅 붓고, 생리불순에 불임, 유산, 각종 피부질환, 심지어 백혈병 사망까지 개인질병으로 취급하는 회사에 복종하며 노동자의 인권이 뭔지, 노동자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는지가 뭔지도 모른채 열심히 묵묵히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여름 감전사고로 혈관이 다 터져 죽어도, 비 오는 날 족장에서 미끄러져 라면발 같은 뇌수가 산산이 흩어져 죽어도, 바다에 빠져 퉁퉁 불어 죽어도, 인명은 재천이라던데 그냥 못 본 척 못 들은 척 살걸 그랬습니다.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내일에 대한 희망도, 새끼들에 대한 미래 따위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며, 조선소 짬밥 20년에 100만원을 받아도, '회장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감지덕지 살걸 그랬습니다."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고 김주익 열사 추모사 중에서


오늘도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또는 산업재해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질병으로 쓰러지고 있습니다. 프레스기에 잘린 손가락이 하루에도 서너 가마니나 되었던 70년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름 모를 화학약품, 사람이 아닌 칩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옷을 입고 말입니다.

억울한 것은 그래서 생떼같은 목숨을 잃어가지만 그들이 공장에서 얻은 병의 진실은 첨단 산업의 안전을 위해, 기업경쟁력과 이윤을 위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반도체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진실이 가려진 것을,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사진을 보며 아빠라고 부르고 친구들이 말하는 아빠 소리에 "나도 아빠 있다" 떼를 쓰는 4살짜리 애정 씨와 민웅 씨의 아이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 아빠 생명은 반도체 산업을 위해 희생되었다는 잔인한 기억을 심어줄 생각입니까?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깟 돈 몇 푼보다, 세계일류 삼성보다, 반도체 칩보다,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고 황민웅 씨의 동영상은 새시대예술연합창작단 시선에서 만든 것으로 '반올림'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투병중인 박지연 씨는 지난 4월 말 골수이식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통원 치료 중에 있습니다. 골수이식수술 이후에 두차례의 응급상황이 발생했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넘기고 현재는 집과 병원을 오가며 통원 치료 중입니다. 거액의 치료비에 큰 보탬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대책위에서 모금함을 돌리거나 후원하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치료비에 보탬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지연 씨와 지연 씨 가족의 외로움을 덜어드리는데 힘이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삼성은 지연 씨가 산재 신청을 하지 않으면 치료비는 물론, 집까지 고쳐주겠다고 하더니 산재 신청을 하니까 "더 이상 지원은 없다, 법대로 하시라"고만 하고 있습니다.

백혈병은 하루 아침에 낫는 병이 아니라 앞으로 값비싼 치료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헌혈증을 가지고 계신분이나 후원을 통해 지연씨를 응원하실 분을 기다립니다. 이윤보다, 사람이 따뜻하다는 것을 지연씨에게,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 후원계좌 : 국민은행 489701-01-472635 예금주 김재천(삼성반도체대책위)
# 헌혈증 보내주실 곳 :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185-13 다산인권센터(031-213-2105)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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