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에서 다섯 번째로 긴 강인 리오그란데강의 모습이다. 물길이 사라진 300킬로미터 남짓의 구간엔 '잊혀진 강'이라는 슬픈 이름이 붙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내해인 아랄해는 이곳으로 흘러드는 두 강이 말라버려 점차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강은 댐 건설 이후 유량이 점차 줄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가뭄이 500년 간 이어지자, 이 물을 필요로 하는 여러 주(州)는 저마다 변호사를 고용해 자신의 몫을 배분받으려 아귀다툼을 벌였다. 요르단강은 이스라엘이 파이프로 엄청난 양의 강물을 끌어들이면서 요르단에 이르기도 전에 말라버렸다.
모두 강물을 빨아들이는 '인간 스펀지'에 의해 변해버린 강의 모습이다. 흐르는 강을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가둬 '사유화'하려는 욕심, 강의 물길을 바꾸고 좁은 수로에 가둬두는 '통제 욕망'은 결국 인간 자신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프레드 피어스의 <강의 죽음>(김정은 옮김, 이상훈 감수, 브렌즈 펴냄)은 인간의 탐욕에 의해 바닥을 드러내며 죽어가는 세계의 강에 대한 기록이다. 환경 기자 출신인 저자는 10년 동안 6개 대륙 64개 국가의 강을 돌아보고 이 책을 썼다.
흐르는 강과 콘크리트 댐의 '전쟁'…"결국 인간은 지고 만다"
'강은 흘러 바다로 간다'는 상식과 달리, 세계의 많은 강들은 바다에 이르기도 전에 말라붙는 신세가 됐다. 이집트의 나일강, 중국의 황허강, 파키스탄의 인더스강, 미국의 콜로라도강과 리오그란데강, 오스트리아의 머리강 등, 세계의 주요 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 책은 그러한 '강의 죽음'이 왜 발생했으며, 그로 인해 어떤 재앙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풀어냈다.
▲ <강의 죽음>((프레드 피어스 지음, 김정은 옮김, 이상훈 감수, 브렌즈 펴냄). ⓒ프레시안 |
그러나 저자는 "댐을 건설해서 얻는 이익보다 손실이 훨씬 크다"고 지적한다. 이는 20세기 말, 92개국의 대형 댐 건설에 약 750억 달러를 지원했던 세계은행이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세계은행이 2000년 말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용수 확보·홍수 예방·수력 발전 등, 댐 건설의 목적으로 내세운 것들은 결국 전부 목표에 미달했다. 홍수는 더 자주 일어나거나 규모가 커졌으며, 습지가 사라지고 생태계가 파괴됐다. 단기적으로 이익이 됐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된 셈이다.
실제 독일은 라인강의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 200년에 걸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런 노력의 결과 오히려 더 많은 홍수가 발생했다. 미국 역시 미시시피강의 둑 붕괴를 막기 위해 물줄기를 바꾸고 보를 쌓는 등,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토목 공사 결과 미시시피강의 홍수 발생 횟수는 줄었지만, 규모는 훨씬 커져 인근 주민에게 재앙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21세기 최대 토목 공사'로 불리는 중국의 샨샤댐과 수많은 수중보를 건설한 양쯔강 역시 애초 목표와는 달리, 수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런 뼈저린 경험으로, 쌓았던 제방과 댐을 다시 허물어 자연 상태로 강을 되돌리는 움직임이 세계 각지에서 일고 있다. 독일은 강 정비 이후에도 홍수가 계속되자, 강 하류 1300킬로미터에 이르는 범람원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계획을 세웠다. 30여 년 전 간척된 범람원은 거대한 경작지로 쓰이고 있지만, 이런 이익을 버리고 자연 상태로 복원하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강을 길들이겠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한다. 홍수를 예방한다며 제방을 쌓고 댐을 건설해도, "흐르는 물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돈을 따라' 올라가는 '사유화'된 강
인간의 과도한 '수자원 착취'도 강을 말려 죽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강물이 마르면 멀리서도 물을 끌어오고, 그래도 안 되면 지하수를 파서 쓰는 일이 전 세계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그 결과, 예측하지 못했던 비극도 발생한다.
미국 서부에는 '물은 돈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수자원을 빼앗기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콜로라도강은 댐 건설로 유량이 줄자 수량을 확보하기 위한 '물 전쟁'이 벌어졌다. 국제구호단체들은 인도의 강물이 마르자 90만 개 이상의 우물을 파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했는데, 그 바람에 지하 암반에 들어있던 비소까지 끌려 올라와 인도인들은 중금속 중독에 시달려야 했다.
저자는 과도한 물 사용으로 곤경에 빠진 세계의 사례를 조목조목 언급하며 "강을 조절하려는 대규모 공사는 늘 골칫거리만 안겨주었다. 당국에서 무슨 약속을 하든, 이들이 물을 손에 넣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체로 가난한 농민들은 물을 잃는 처지에 놓였다. 물은 정해진 장소에 갇혀 사유화되어 돈을 따라 더 높은 곳으로 흘러갔다"고 비판한다.
4대강 사업에 울리는 경종…"누구도 강을 복종시킬 수 없다"
이 책은 전 세계 강의 죽음을 기록하는 '참담한 여정'이면서, 동시에 저자의 표현대로 '희망을 찾는 여정'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물이란 결국 재생 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책은 물이 모자란다고 대규모 토목 공사를 할 게 아니라, 빗물을 모아쓰고 물이 덜 드는 농법을 개발하는 등, 수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강조한다. 예컨대 인도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빗물받이 운동'이 대수층 회복을 위한 공공 사업이 됐고, 미국 로스엔젤리스는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에 머물 수 있도록 도시의 아스팔트를 걷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 4대강 사업이 진행 중인 낙동강 상주보 건설 현장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
수량 확보와 홍수 예방을 한다며 국토 전역을 파헤치는 한국의 4대강 사업과 정 반대의 모습이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는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는 눈 여겨 볼만 하다.
그는 "한국의 모든 기술자들이 매달리고, 정부에서 가능한 모든 재정을 총동원한다 해도 한국의 주요 강들을 다스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라며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강 살리기'와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지금도 자국의 강물을 콘크리트 수로 속에 가두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저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천 복원을 두고서도 "혹사당하다 사라진 도시의 강을 재창조한 이력"이라고 평가하지만, 동시에 청계천은 "여전히 콘크리트를 바른 제방으로 둘러싸인 일직선 수로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런 구조물들이 도시 생활에 쾌적함을 더할지는 모르지만, 하천은 되도록 자유롭게 흘러야 하기 때문"에서다.
그는 "4대강 사업으로 더 정돈된 강이 만들어질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강에 운하를 만들고 제방을 쌓아 범람원을 차단하면 수백 곳의 자연 습지가 사라질 것이며, 준설 작업 역시 여울을 파괴하고 독성 퇴적물을 휘저어 놓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실 이는 강을 더 파괴하는 것이지 살리는 것이 아니다"고 일침을 놓는다.
저자는 이처럼 4대강 사업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수백 년 전 강을 정비했다가 오히려 후유증을 겪고 원상 회복에 나선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사례를 소개한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수문학자와 공학자들은 강과 관련된 수많은 계획들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결론을 내렸다. 흐르는 강물의 위력과 콘크리트가 정면으로 대치하면 언제나 콘크리트가 패배한다고 믿게 되었다. 한 곳에서 홍수를 막으면, 다른 곳에서 더 자주 홍수가 일어난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가고 있다. 공학자들이 강을 다스리려는 시도는 자연과 함께할 때, 자연의 요구에 순응할 때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흐르는 강의 혈관을 막지 말라'는 것, 2010년 한국이 기억해야 할 한 마디다. 100여 년 전, 미국이 미시시피강을 정비했을 당시 소설가 마크 트웨인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그 누구도 거침없이 흐르는 강을 길들일 수는 없다. 이리로 흘러라, 저리로 흘러라하며 복종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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