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실수요자'라는 말을 오염시키나

[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실수요자와 투기꾼의 구별법은?

'전세시장 풍선효과로 두 달새 전세 3억 올랐다'(중앙일보 2. 27.)는 뉴스와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 70%선 무너져...5년 3개월 만에 처음'(연합뉴스 2. 27.)이라는 뉴스가 동시에 나왔다. 두 가지 뉴스는 서로 상충되는 사실을 담고 있다.

전세 가격이 급격히 올랐다는 건 주거공간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이 매수 대신 전세를 선택한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매매가격은 정체되거나 하락하고, 전세 가격은 상승하므로 전세가율이 높아진다.

반면 전세가율 70%선이 무너졌다는 의미는, 매매가격은 급격히 상승하고, 상대적으로 전세가격 상승률이 낮은 경우에 나타난다. 상반되는 내용의 뉴스가 동시에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뉴스들이 전하고 싶은 행간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전세 가격 상승은 반대로 말하면, 매매 가격의 정체 내지 하락을 내포한다. 주택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매수를 선택하기보다는 전세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스는 이를 슬며시 부동산 규제의 풍선 효과라며, ‘공급이 부족하여 전세 가격이 오른다’는 논리로 바꿔치기 한다. 전세 가격 상승 현상은 최근 몇 년간 가격이 급등하였으나,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분양가격 안정이 예상되고, 분양 물량이 많은 서울 및 강남권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기억한다. 2009년 미국발 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은 극심한 침체기였다. 서울 강남을 비롯한 소위 버블세븐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고점 대비 40% 이상 하락하기도 했다. 이제 부동산은 끝났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미분양이 넘치고, 가격이 하락하였으나 사람들은 집을 사지 않았다. 반면 급격히 상승한 전세가격으로 고통을 겪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자 각종 부양책이 나오고, 세금 감면 혜택이 많았음에도 차라리 전세금을 올려줄지언정 집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팔리지도 않는 집을 끌어안고 있던 다주택자들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전세는 더 귀해지고, 전세 값은 천정부지 올랐다.

전세값이 거의 집값에 육박하거나, 심지어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더 높은 집도 있었다. 다주택자 집주인들은 집을 팔고 싶어도 잘 팔리지 않으니 앞 다투어 월세를 내놓았다. 월세 매물이 많아지자 전월세 전환율은 더 낮아졌다. 부동산 투자수익률은 점차 이자율에 가까워져갔으며, 전세는 곧 없어질 제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시기에 집을 사지 않고 전세를 찾았던 사람들은 실수요자일까? 이 당시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은 전세자금대출이었을까? 전세자금대출은 결국 갭투자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무주택자는 모두 투기꾼이 아니라 실수요자일까? 부동산 보유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이자율 정도 수준이고,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경우에는 어느 누구도 부동산을 투기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현실에서 실수요자와 투기꾼은 잘 구별되지 않는다. 무주택자라하더라도 부동산 수익률이 이자율보다 더 높이 상승할거라는 기대, 즉 투기 심리가 더해지지 않으면 부동산을 구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이 70% 밑으로 떨어져 7년 만에 최저 수준이라는 뉴스는 무슨 의미일까? 전세값 대비 집값이 더 크게 올랐다는 걸 보여준다. 이 기사는 전세 살지 말고 집을 사는 게 이익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하고 싶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들에겐 팔아 치워야하는 많은 분양 물량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불안과 욕망과 투기 심리를 자극하여 끌어 모은 티끌이 모여 눈덩이가 되면, 이들은 곧 제도와 권력을 이용하여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서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고 만들어내는 데에 이른다.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소수의 몇몇이 작은 동네, 특정 단지의 실거래가를 올려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건 지난 몇 년간 익히 보아온 풍경이다.

부동산 유튜버 리얼아이 박감사는 이를 '분양 완판의 공식'이라 설명한다. 1단계, '똘똘한 한 채', '공급 부족', '풍선 효과'와 같은 명제를 만든다. 2단계, 실거래가 대비 월등히 높은 수상한 실거래가가 한두 건 나타나고, 언론에서는 공급 부족이나 풍선 효과 등의 근거라며 지속적으로 보도한다. 3단계 수상한 실거래가와 비교하면서 로또 분양임을 알리는 광고가 계속된다. 4단계 고분양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분양 완판된다.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 장화신은 고양이

프랑스 동화 <장화 신은 고양이>는 속임수를 써서 가난뱅이 주인이 부자가 되도록 해준 고양이의 이야기다. 고양이는 주인이 귀족이라며 왕과 공주를 속이고, 다른 귀족의 영토를 속임수로 빼앗아 그의 영토를 차지해 주인으로 하여금 공주와 결혼하도록 이끈다. 힘없고 작은 동물 고양이와 가진 것 없는 가난뱅이 주인이 맨주먹으로 기지를 발휘하여 공주와 결혼하는 이야기는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평민들에게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해주었을 테지만, 현실에서 장화신은 고양이는 거대한 자본으로 제도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강력한 괴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괴물 고양이는 힘없는 사람들의 작은 탐욕과 불안을 부추겨, 점점 더 거대하고 강력해지는 중이다.

거짓말쟁이 괴물 고양이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허황된 욕망에 기생하고, 코로나바이러스19가 폐를 망가뜨리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화시키고, 인생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또한 우리 모두의 미래와 공동체를 붕괴 위험에 빠뜨린다.

진정한 실수요자란 누구일까? 가격이 오르기를 기대하고 집을 구입하거나 또는 가격이 내릴 것 같아서 집을 구입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실수요자에게 필요한 것은 가격이 오를 집을 구입하게 해주거나, 구입한 집의 가격이 계속 오르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 거주할 의사가 있는 한 큰 가격의 변동 없이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돕는 정보다. 기존 언론에서 실수요자라는 말은 종종 공급 확대의 근거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제 실수요자는 부동산 '매매'의 의미가 아니라 '안정적 거주'의 의미로 바뀌어야 한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편안히 쉴 곳이 필요하다. 모든 생명에게 변하지 않는 명제다.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하여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도록 격리하여 치료해야 하듯이, 남아있는 분양물량을 팔아치우기 위해 심어져있는 부동산 투기바이러스도 하루빨리 치료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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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흔

2004년부터 감정평가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부동산 현장과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부동산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은 현상이지만, 가격에는 적절한 자원의 배분과 사회의 가치의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나누고, 소통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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