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부동산 가격을 산정하겠다고?

[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부동산의 객관적인 가격은 과연 존재하는가?

'감정평가 가격은 주관적 가격이 아니라 관계 법령에 의하여 평가되는 객관적 가격입니다.' 감정평가사들이 현장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인간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망각해도 재산을 빼앗긴 원한은 결코 잊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토지보상금에 불만을 품은 노인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숭례문을 불태웠다. 자신의 목숨만큼 소중한 재산권인 부동산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관계 법령', '객관'이라는 말만큼 뒤에 숨기 좋은 말은 없다.

여기에 더하여 미래 세계는 인공지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대다. 부동산 가격도 인공지능(AI)이 결정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주소만 톡 치면 '객관적' 가격을 떡하니 보여줄 날도 머잖은 듯 보인다. 최근의 신조어로 프롭테크(Prop-Tech)는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용어로, 정보 기술을 결합한 부동산 서비스산업을 말한다. 프롭테크의 발달로 부동산 감정평가산업도 이제 ‘객관’을 산출 가능한 인공지능에 자리를 내주게 될까?

부동산 가격은 객관적으로 형성되는가?

'부동산 가격은 객관적'이라는 통념에 삐딱한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부동산 가격은 갈대 같은 인간의 마음에 따라 형성되는 주관적 가격이고, 비이성적으로 결정된다. 왜곡된 부동산 시장에서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데이터는 불충분하며, 이를 기초로 거래된 가격은 다시 부동산 시장을 왜곡한다.'

부동산은 본래 인간이 지구에 출현하기 이전부터 주어진 자연의 일부다. 부동산이 거래의 대상이 된 것은 바로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농업생산량이 중요한 시대에는 곡식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비옥한 토지가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근대화 이후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 들자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뛰었다.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거나 모여 들자 부동산 가격은 단순히 '뛰는' 수준을 넘어섰다. 평범한 사람도 투자 대상으로 부동산을 구매하며, 부자들은 남아도는 돈을 쓸 곳이 없으니 사라지지 않는 부동산에 묻어놓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인간의 행동은 부동산에 대한 확고한 믿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주관적인 판단에서 나왔다. 100원의 부동산을 200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부동산은 200원이 된다. 또 누군가가 나타나서 300원에 사겠다고 하면 300원이 된다. 부동산 가격을 알기 위해서는 300원을 주고 사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 동기, 즉 인간의 주관적 마음을 이해해야만 한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불법과 비정상이 만연한 시장

재벌가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빌딩을 계열사에 비싼 값에 임대주거나, 높은 가격에 파는 것은 고전적인 자산 불리기 방법이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상가를 수년간 텅텅 비워놓을지언정, 건물가격 하락을 염려하는 건물주는 임대료를 내리지 않는다. 임대료는 높게 잡아놓고 렌트 프리 기간을 길게 두는 식으로 건물 가치를 올리기도 한다.

주차장을 점포로 개조하여 사용하는 경우, 불법 증개축을 해서 건축물대장과 같은 공부와 실제의 면적이나 구조가 완전히 상이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층수 올려 더 많은 세대수를 빼기 위해서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으로 불법 개조하여 분양하는 일도 흔하다. 임차인도 자신들이 쓰고 있는 임대 시설이 불법 건축물인지 아닌지,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하여, 또는 대출을 많이 받기 위하여 거래금액을 올리거나 내리기도 한다.

부동산 감정평가를 위하여 부동산 실거래가를 살펴보면 특정한 패턴이 없거나 일관성이 없고, 거래가격이 널을 뛴다. 부동산 가격 산정 기준이 되는 임대료 또한 마찬가지다. 매우 균일한 수준의 실거래가가 다수 분포되어 있다고 해서 정상적인 가격이라는 보장이 없다. 전국의 도시나 관광지 주변 임야를 중심으로 기획부동산이 휩쓸고 간 흔적이 많다.

부동산이라는 객체를 두고 사람들의 주관적 판단이라 할 수 있는 가격에 왜 이렇게 큰 편차가 날까? 많은 국민은 부동산 불패라는 막연하고 광범위한 믿음만 갖고 있지, 부동산 정보는 충분히 갖지 못했다.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하여 소위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부동산 시장을 투기판으로 삼기 좋은 환경이다. 더구나 부동산 시장을 통제하고 균형을 잡아주어야 할 정부의 역할이 부재하다. 이 모든 원인이 부동산 가격을 왜곡한다.

지난 10월 20일 정부는 부동산 거래 질서를 확립한다는 명목으로 강남구와 마포구 합동 현장 점검에 나섰다고 한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부의 권위적이고 구태의연한 대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 환경에서 부동산 가격의 산정을 위한 기초 데이터는 부정확하고 일관성이 없다. 이 때문에 대량 산정, 통계 모형을 이용한 가격 산정, AI를 이용한 가격 산정은 모두 허울뿐인 '객관'을 내세운 뜬구름 잡는 헛발질에 불과하다. 정확한 부동산 가치 판단에는 시장 환경과 하위 시장의 분석, 거래 패턴과 거래 건수의 분석, 개별적인 상황 등을 모두 검토하여 거래 건수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유사한 특성을 갖는 부동산별로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에 따라 그룹핑을 하거나, 투입되는 기초자료를 정상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작업은 개별 부동산이 속한 시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AI, 통계 모형을 이용한 부동산 가격 산정은 '합리와 객관'을 앞세워 산출되는 과정을 가리고, 조작으로 갈 위험성이 매우 크다. 우리 국민은 불완전한 부동산시장과 정보의 비대칭상태에서 계속 호구로 남게 될 것이다.

부동산 공시가격 공개해 국민과 함께 시장 만들어야

표준지, 표준주택, 공동주택 가격의 조사 평가에 중앙정부 예산만 연간 900억 원가량 든다. 개별공시지가와 개별주택 조사평가를 위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예산까지 고려하면 매년 18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문제는 이처럼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부동산 가격을 공시하는 정부가 과연 국민에게 어떤 수준의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다.

국토부가 공시하는 주택가격 공시자료를 보면 주소, 지목, 용도, 토지면적, 건물면적, 구조, 층수, 도로교통, 사용승인일자, 건폐율, 용적률, 지리적 위치 등의 특성과 표준주택가격 정보가 제공된다. 가격 외에는 대부분 건축물대장을 확인하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주택공시가격은 지역별로 현실화율이 30%~90%로 들쭉날쭉 차이가 나며, 어떤 방법으로 산출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우리 국민은 단 한 번도 공시가격이 어떻게 산출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부동산 가격은 사람들의 행동과 다른 부동산과의 관계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가격을 알기 위해서는 시장 참여자를 관찰하고 행동의 동기를 분석해야 한다. 부동산 공시가격이란 시장성, 수익성, 비용성에 근거한 감정평가 3방식을 도구로 하는 감정평가활동의 결과며, 부동산시장에 참여하는 매수자, 매도자, 또는 임대인, 임차인, 개발자 등 각종 이해관계인들의 주관적 판단의 결과물인 매매가격과 임대료, 건설비용 등의 데이터를 감정평가 주체인 감정평가사가 해석하여 객관화한 결과물이다. 불법과 비정상이 만연한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의 목적이나 개별성을 정상화해 공시가격에 반영하여야 하고, 시장 참여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하고 분석하여 부동산 정책을 수립하는 기초자료를 삼아야 한다.

데이터를 분류하고 선정하고 해석하고 비교하여 정상화하는데 주관이 개입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능하지 않은 '객관화'보다 중요한 건 12억 원이라는 공시가격이 어떤 거래사례와 임대사례를 기준으로 분석하여 산출된 것인지, 사례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정상화되었는지, 거래사례비교법에 의한 가격과 임대료를 기준으로 하는 수익환원법에 의한 가격에 얼마나 괴리가 있었는지, 실거래가 기준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은 얼마나 되는지, 그래서 어떤 기준으로 최종 공시가격이 결정되었는가를 국민이 전문가로부터 충실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의 권리다.

부동산 가격은 그 속성상 사람들의 활동 결과 인위적이고 주관적으로 만들어지는 가격이기 때문에 각 시장참여자의 행동 동기와 결과를 분석하여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이의신청과 같은 불복절차를 통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시장참여자의 가격 결정 원리에 가까운 모형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하고, 부작용을 보완하는 정책을 세밀하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결코 그렇게 결정되지 않는다.

지난 30년간 국민을 무시해온 깜깜이 공시가격이 이제 '합리와 객관'이라는 미명하에 대량산정모형과 AI 뒤로 숨어 계속 국민을 무시하는 도구로 활용될 것 같아 심히 걱정이다. '부동산 가격의 객관화'란 컴퓨터와 통계 모형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산출 과정을 공개하고 판단의 근거와 기준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참여자들과의 소통을 통하여 이 같은 부동산 가격 결정 과정을 지속적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지난 30년간 감정평가3방식을 대한민국의 부동산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전문성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밥그릇 챙기기에만 골몰해온 한국감정원과 감정평가사업계, 이를 방조한 국토부는 깊이 반성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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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흔

2004년부터 감정평가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부동산 현장과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부동산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은 현상이지만, 가격에는 적절한 자원의 배분과 사회의 가치의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나누고, 소통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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