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 대책에 대한 단상... 규제는 더 강해져야 한다

[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거인의 정원에 봄이 오려면...

전격적으로 발표된 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과 관련한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대출 규제로 인하여 중산층 실수요자의 주거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비판, 공시가 현실화, 종부세 상향 예정으로 중산층 주거 부담이 커졌다는 비판이 많다.

아예 시가 15억 원 이상 아파트의 대출을 아예 금지한 조치를 두고는 과도한 재산권침해라며 위헌소송까지 제기된 상태다.

대출규제 조치가 빚내서 집 사고자하는 시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조치인가?

시계를 2012년, 2013년으로 돌려보자. 이명박 정부 말기, 박근혜 정부 초기였던 당시는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르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서울 수도권의 경우 미분양이 넘쳤다. 양도세 감면 혜택, 무이자 중도금대출 등 대출규제를 아무리 풀어도 사람들은 집을 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다주택자들은 보유 주택을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였다. 이 때문에 전세 수요가 급증하여 전세가격 폭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실수요층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라 하더라도 무리한 대출을 끼고 집을 사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집값 상승에 대한 불안감, 즉 '투기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실수요자'라는 단어는 '거주할 곳을 찾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서 '집값이 더 오를 것 같은 불안', 즉 '투기 심리'가 함께 작용하지 않으면 집을 구매하고자하는 욕구는 사라진다.

최근 30대 주택구입자 비중이 커진 현상은 매우 우려된다(30대, 서울아파트 구매비중 32%... 주택소비 주력계층 되다, 헤럴드경제 2019.11.11., 젊은 집주인이 온다.. 작년 보금자리론 70%가 20,30대 파이낸셜 뉴스 2019.9.22.). 초기 자금이 적고 소득이 받쳐주지 않은 상태에서 큰 대출은 주택 구매자로 하여금 예측할 수 없는 상황 변동으로 인한 큰 위험에 노출되게끔 하기 때문이다.

소득이 적고 가진 돈이 적으면 그에 맞는 주거 형태를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우연히 집을 언제 구입했는지에 따라서 자산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며, 당장 목돈이 없는 사람들, 주거 취약 계층에게 질 좋고 저렴한 주택을 꾸준히 공급하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다. 집값상승 불안감에 기댄 투기 수요에 발맞춰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은 결코 부동산 대책이나 주거안정 대책이 될 수 없다.

서울의 30년 이상 된 재건축아파트단지들을 보면 분양받아서 수십 년 간 살고 있는 노인 세대가 많다. 그들은 현재는 소득이 없지만, 수십 년 전 우연한 선택으로 소득대비 자산 가치를 기준으로 훨씬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구입하였을 뿐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하였지만 부부 중 한사람의 소득만으로도 알뜰살뜰 아파트 마련하고 자녀들 교육시키며 살 수 있었다.

도시의 확장, 인프라 구축, 인구의 변화, 제도의 변화에 따라, 어느 곳에 집을 사고 팔았느냐에 따라, 내 할아버지가 어디서 농사 지으며 터 잡고 살았느냐에 따라 우연히 자산 격차가 극심해졌을 뿐인데, 이것을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감당하게 하는 것이 온당한가? 우연한 선택의 결과 누리게 된 자산 가치 상승은 온전히 내 것이고, 우연히 기회를 얻지 못한 이웃의 박탈감은 그들의 탓인가?

최고의 정책은 집값이 급등락하지 않고, 소득 대비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언제라도 무리한 대출 없이 자신의 소득범위에서 원리금을 상환할 정도 수준의 집을 구입할 수 있게끔 하는 정책이다. 부동산을 언제 구입했는지, 어디에 구입했는지가 계층이동 수단이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 대출 규제 정책은 결코 서민의 내 집 마련 꿈을 앗는 대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12.16 대책은 소수의 초고가 아파트만을 집중적으로 규제하는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에 정부는 더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요 중산층의 내 집 마련 꿈을 앗아간다는 식의 융단폭격 언론보도를 보고 있자니 왜 문재인 정부가 보다 강력한 정책을 들고 나오지 못 하는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번 12.16 대책을 두고 공급 확대 정책이 빠졌다는 비판에 대해 '우리가 돈이 없지 집이 없나'라고 답하고 싶다. 돈이 부족한 시민에게 필요한 정책은 소득을 높이고 집값을 낮춰주는 것이지, 소득은 적은데 큰 대출을 허용해주고 비싼 집을 사게 만들어 집값을 더 높이는 것이 아니다.

불안 심리에 기댄 투기 수요로 인한 부동산 가격 폭등은 거인의 정원에 점점 더 높고 두꺼운 담장을 치고 아이들이 결코 발을 들일 수 없도록 한다. 북풍과 눈보라로 가득 차 결코 봄도, 아이들도 돌아올 수 없는 황무지가 될 것이다. 아이들이 떠난 정원에서 과연 거인은 행복할까?

(높은 가격에 부동산을 구입한) 거인(건물주, 집주인)이 힘든 이유는 (높은 임대료, 대출이자로) 아이들(자영업자, 세입자, 젊은 세대)이 떠났기 때문이다. ('건물주도 힘들어요' 머니S, 2019.12.19.) 거인의 정원을 아이들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거인도 불행해진다.


거인의 정원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넓고 아름다운 거인의 정원, 꽃이 피고 아이들이 모여들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집을 비워두었던 거인이 돌아와서 아이들을 모두 내쫓았다. 아이들이 떠나고 나자 거인의 정원에는 다시 꽃이 피고 봄이 찾아오지 않았고, 눈과 서리, 북풍 우박만이 춤을 추었다.

어느 날 아침 창밖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고, 파릇파릇 새싹이 피어오르고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담장의 구멍으로 몰래 들어와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거인은 정원에서 아이들을 내쫒았기 때문에 봄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담장을 허물고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거인은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고,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내 정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바로 저 아이들이야.'

▲ 12.16 대책이 발표된 후 일부 초고가 아파트 대출만 규제하는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과 정부의 인위적 대출 규제 정책이 반시장적이라는 비판이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 상가의 부동산중개업소에 부동산 매물들이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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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흔

2004년부터 감정평가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부동산 현장과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부동산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은 현상이지만, 가격에는 적절한 자원의 배분과 사회의 가치의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나누고, 소통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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