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는 데 대한 반론

[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우리에게 부동산 공급이 과연 부족한가?

오늘 보러 나온 현장 모두가 공교롭게도 서울 도심의 재개발구역이다.

도심 한복판 전철역 출구 앞 대로변에 뜬금없이 생선을 가득 늘어놓고 팔고 있는 커다란 생선가게가 보였다. 골목길로 들어가자 도매 전문, 각종 전문 시장이 나타났다. 또 한 골목을 지나자 아이들의 장난감을 파는 완구시장, 벼룩시장이 나타난다. 한 골목을 더 지나자 수족관과 물고기를 파는 전문시장이 보였다. 골목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시장이 펼쳐지는 만화경 속 세상 같았다. 가게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수십 년 관록이 묻어있는 상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보러 나온 현장은 도시 한복판 철도 용지였는데, 근처는 일제 강점기에 전차가 지나다니던 길이라고 인근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알려주셨다. 골목 한복판에는 주민들을 위한 도시정비사업 사업설명회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재개발사업 시행자는 재개발사업으로 토지의 가치를 올려 부자가 되도록 만들어주겠다고 토지주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또 다른 현장이다. 대로변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자 어두침침한 조명에 밀링, 선반, 컴프레서 등 공작 기계들이 가득한 기계 제작 공장들이 나타난다. 검은 기름때에 쩐 작업복을 입은 주름투성이 남성들이 어두컴컴한 공장 귀퉁이에서 기계를 돌리고 있다.

동네 한복판에서 반짝거리는 간판의 부동산 중개업소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중개업소 사장님은 중년 아주머니 몇 분을 고용해서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 부동산을 팔아보겠다는 사람들을 상대로 상담하고 있었다.

이곳에 부동산을 사두면 뭐가 좋으냐고 물었다. 곧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으며, 그 경우 조합원으로서 32평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단다. 5년 후 30평대 새 아파트를 받으려면 추가 분담금도 있어야 한단다. 이게 투자 가치가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근처에 신축된 30평대 새 아파트가 최근에 28억 원에 팔렸으므로 재개발 완료시점에는 30억 원 이상의 투자가치가 예상된단다. 아주머니는 내게 가진 돈이 얼마인지 묻는다. 내가 가진 돈에 따라 투자가능한 부동산을 찾아주겠다고 한다. 단독주택을 사려면 요즘 대출이 어려워져서 최소 15억 원쯤 있어야한다고 했다. 많은 전화번호를 확보해야 하는 부동산 중개업소의 중년 아주머니를 위해서 전화번호를 일러주고 나왔다.

부자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가난한 동네에서 수십 년 간 기름밥 먹으며 함께 어울려 일하고 살던 이웃들이 각자가 부동산 소유자인지 임차인인지에 따라서, 또는 부동산을 언제 사고 팔았는 지에 따라서 희비가 엇갈리고, 극명하게 다른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훨씬 많은 사람들은 개발 소식에 절망과 분노에 빠졌을 것이다.

공급이 과연 부족한가?

지나는 길에 수도 없이 많은 모델하우스와 '마지막 특별 분양', 'OO역세권 이 가격', '마지막 기회'를 알리는 전단지와 특별분양 띠를 두르고 전단을 나누어주는 중년들을 지나친다.

인간의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 누구나 (더 좋은) 집과 (더 많은 물건을 사기 위한) 돈이 부족하다. 기존에 지어진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낡기 마련이고,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는 항상 좋기 때문이다. 모든 요구 조건이 충족되는 집은 없다. 만인의 우상 강남의 신축아파트는 항상 턱없이 부족하다. 같은 강남권이라도 신축연도, 학군, 평형,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서열이 지어진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강남의 새집은 끝도 없이 부족하다.

좋은 지역, 좋은 브랜드의 새집에 살고 싶지만 돈이 부족한 사람에게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이들의 인생을 저당 잡는다. 이들은 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을 담보로 인생을 건다. 이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보상받기 위한 유일한 길은 내가 저당 잡혀 산 금액보다 집값이 더 오르는 것뿐이다.

욕망에 욕망이 꼬리를 물고 부동산 가격을 올린다. 프레스 기계가 돌아가던 가난한 동네는 순식간에 30억 원 아파트가 들어서는 부자 동네로 변모한다. 기름밥 함께 먹으며 기계를 돌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기름밥을 먹은 대가가 아니라 부동산 소유자인지 아닌지에 따라 우연히 소수는 부자가 되고, 우연히 다수는 갈 곳을 잃을 것이다. 1억 원 전세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와 수십 년 기름때가 켜켜이 쌓인 산업 생태계와 사람들의 일자리를 쓸어버린 결과다.

부동산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진 돈의 액수와 사고 파는 사람들의 욕망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사람들의 끝없는 욕망을 멈추지 않은 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은 공허하다. 정녕 공급이 부족한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오직 수억에서 수십억을 호가하며, 앞으로도 계속 오를 예정인 아파트의 공급뿐인가?

2007년 대비 소득이 높고 고용형태가 안정적인 핵심적 중산층의 비율이 2017년 대폭 낮아졌다고 한다. 경기 침체, 기술발달, 환경 변화로 경영관리자의 일자리는 점차 축소되고 중산층 몰락이 가속되고 있다(<매일경제> 사라지는 화이트칼라.. 중산층 몰락 가속 2020. 1. 5.).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와 삶의 터전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부자들과 중산층만을 위한 아파트를 짓는데 모두가 열중한다. 하지만, 정작 가난한 사람은 더 많아지고 중산층은 오히려 몰락하고 있다. 욕망에만 휘둘린 결과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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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흔

2004년부터 감정평가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부동산 현장과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부동산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은 현상이지만, 가격에는 적절한 자원의 배분과 사회의 가치의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나누고, 소통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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