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시절, 삶을 놓치지 않기를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정답을 찾는 노력

"아, 어쩜 좋아. 말도 안 돼."

치료를 받던 환자가 전화 통화를 하더니 정신없이 베드에서 일어납니다. 잠깐 사이 얼굴에 창백하고 눈빛이 달라진 것을 보면서, '설마?'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양보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다고 해요. 치료비는 다음에요 선생님."

황망한 모습으로 한의원 문을 나서는 환자를 보면서 열흘 정도 전에 뵈었던 할머니 모습이 떠오릅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주사를 맞고 오는 길이라 해서, 치료를 더하면 부대끼시니 다음날 오시라고 했던 것이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며칠 전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와 달리 아무 말도 없이 눈을 마주치지 않던 모습이 진료를 하는 하루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삶이 참 찰나구나...'

그 할머니를 처음 뵌 것은 설을 며칠 앞둔 날이었습니다. 요양보호사와 따님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오셨는데, 다른 곳에 살다 이 동네에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었다 합니다. 너무 마르고 몸이 쇠약해져서 치료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리가 너무 아프다 하셨는데, 다른 질병으로 처방 받아서 복용 중인 약이 여러 종류였습니다. 보호자께 물으니 지금은 약을 많이 줄인 편이라고 합니다. 다니시던 병원에서 더는 해드릴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해서, '내가 이 분께 뭘 해드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치료에 대한 기대와 의지가 강하셨고, 따님은 그런 어머니의 뜻을 이기지 못하시는 듯 했습니다.

첫 날은 휠체어에 탄 상태에서, 그리고 며칠 후에는 베드에서 아이들을 치료하듯 조심스레 환자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치료했습니다. 할머니는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치료해 주기를 원하셨지만,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여서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잠깐이라도 덜 아프고 마음이라도 조금 편하게 해드리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소식을 접하고 나니, '뭔가 좀 더 해드릴 수 없었을까', '환자보다 내가 먼저 포기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환자를 돌보는 일은 늘 그 때는 최선이지만, 지나고 보면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오래된 동네 가운데 자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자연스레 이곳에서 나고, 성장하고, 나이 들고, 또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오랜 기간 고통을 겪으며 마지막을 맞는 분도 있었고, 너무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때론 열심히 고생해서 일군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떠나는 아쉬운 죽음도 있었고, 누가 봐도 괜찮은 삶을 살다가 평화로운 죽음을 맞아 동네 어르신들의 부러움을 사는 경우도 있었지요.

죽음은 살아있는 누구에게나 어느 날에 찾아오고야 마는, 그 무엇보다 확실한 사실입니다. 많은 종교가 죽음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공자의 말을 종교의 약속보다 더 좋아합니다. 죽음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찾아오는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 만큼 살아 있는 순간순간이 더 절실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치료를 받으러 오셨을 때 보이던 할머니의 눈빛이 꽤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알지만 인정하면 끝날 것 같다는 긴박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산다는 일이 정답은 없지만, 정답을 찾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꽤 어수선한 시절입니다.
무탈하게 그리고 삶을 놓치지 말고 지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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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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