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려, 사피엔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새해 다짐은 기후위기 대응으로

"12월이 다 가는데 눈다운 눈을 못 봤네요. 겨울 같지가 않아요."

점심을 먹고 간단히 운동을 마친 후, 텀블러를 들고 단골카페를 찾았습니다. 커피를 내리는 잠깐 동안 주제가 없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오늘은 날씨 이야기입니다.

"그러게요. 그런데 어느 지역은 홍수가 나서 난리고, 어떤 곳은 비가 너무 안와서 힘들고. 빙하는 녹아내리고 생물들도 사라지고... 이렇게 기후가 예측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보면, 지구가 망하려나 봐요."

커피를 건네받으며 답합니다.

"지구가 망할 리가요~ 인류가 망하는 거죠."

채 열흘도 남지 않은 2019년의 달력은 이런 저런 상념들을 끌어냅니다. 달력의 날짜와 숫자 아래 써진 일정들을 보고 있노라니, 아무런 의도가 없는 시간에 1년이란 단위를 매기고 월마다 이름을 붙인 것은, 어쩌면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의미를 찾으려 한 결과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새로 맞이하는 2020년은 모든 사람에게 각기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호모 사피엔스란 생물종의 운명에 특히 중요한 기점이 되리란 예감이 듭니다. 얼마 전 아이와 즐겨보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대기과학자 조천호는 기후이상으로 인한 대재앙이 10년 후면 찾아올 것이고, 지금 당장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삶의 가치에 전환이 일어나야 하고, 이러한 행동의 출발점은 위기를 절감하는 감수성에서부터 시작한다고도 이야기 했습니다. 21세기가 출발할 때만 해도 설마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위기가 이제는 우리 세대가 직면해야 하는 재앙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인류가 이런 처지에 내몰린 까닭에 표면적으로 산업화와 인구 증가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저는 이 파국이 결국은 에너지의 문제라는 생각을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현재를 있게 한 에너지의 축복에 한계가 온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두 번의 혁명이 현재의 인류라는 생물종을 있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 번째는 산소혁명입니다. 자본이 있어야 투자를 하듯, 세포 또한 돈이 많아야 더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세포의 돈은 우리가 생물시간에 배운 아데노신3인산(ATP)입니다. 그런데 해당 과정은 포도당 1분자로 2개 밖에 만들지 못하지만, 미토콘드리아에서 산소를 이용하면 최대 38개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우연히 이루어진 진핵세포와 미토콘드리아의 동거는 세포가 산소를 이용하고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함으로써, 진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두 번째 혁명은 바로 직립입니다. 인간은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게 됨으로써 현재 인류로 진화할 수 있었고,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즉, 에너지를 매우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개체로 진화한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생물종이 지나치게 개체수가 많아졌고, 오래 살게 되었고, 이들이 이룩한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큰 에너지가 든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뭔가 새로운 것을 생산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결국 오랜 기간 지구에 저장되어 있었던 에너지를 캐내서 쓰거나 변형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 효율 또한 그렇게 좋지 않고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요.

이 생물종은 과거로부터 쌓여온 에너지를 빠르게 쓰기도 하지만, 동시대를 사는 다른 생물들의 에너지를 빼앗기도 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멸종의 바탕에는 인류의 더 큰 에너지 소비에 대한 탐욕이 깔려 있지요. 그리고 급기야 그 탐욕은 같은 생물종 미래 세대의 것까지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자식의 것을 빼앗아 호의호식 하는 욕심 큰 부모가 바로 현 세대 인류의 자화상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고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조만간 닥칠 위기에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 힌트를 앞선 두 번의 혁명에서 찾습니다. 산소의 이용과 직립이란 혁명적 진화는 사실 극심한 위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산소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지만, 진화 초기의 세포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독이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활성산소를 떠올리면 쉽지요. 대기 중의 산소농도가 짙어지는 상황에서 미토콘드리아와의 공존은 어떻게 보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직립에의 도전도 비슷한 상황에서 이뤄졌습니다. 기후변화에 의해 쉽게 식량을 획득하기 어려워진 문제에 인류는 직립이란 도전적 답을 냈고, 그 결과로 성공적 생존과 진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의 인류에게 닥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은 획기적인 과학기술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리라고 말합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은 막연한 바람일 뿐입니다. 산소나 직립처럼 혁명적인 일이 생겨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인류의 세 번째 혁명은 의식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주 나이브한 답이지만, 다른 곳을 탐색 해봐도 답을 찾지 못하겠기 때문에 내린 결론입니다.

하지만 이 답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어쩌면 재앙의 순간이 왔을 때 살아남을 사람은 현재의 위기에 공헌도가 큰 자일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할 도리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면 많은 사람이 전과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많은 분의 2020년 신년계획에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일상의 행동강령들이 포함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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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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