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되었다. 20년 전부터 보고서를 쓸 때면, '비전 2020'이라고 상정하면서, 2020년에는 마치 모든 것이 바뀔 듯한 생각에 미래를 담곤 했었다. 그 2020년이 왔다. 그래서 올해는 10년, 20년 전에 출판되었던 다양한 책자들을 보면서 우리의 예측력을 검증해 보고자 한다.
여전한 것 중 하나는 '인간은 지역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이는 인간이 모이면 지역을 구성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역은 인간 공동체가 만드는 공간적 자화상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역은 인간의 개인적인 삶과 상호작용하면서 다양한 DNA를 지닌 생명 공동체로 진화하게 된다.
그래서 경제지리학자들은 지역 그 자체를 물리적‧행정적으로 탐색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흥망성쇠를 야기 시키는 경제지리적 DNA를 해부한다. 여기서 경제지리적 DNA란 인간들의 다양한 경제활동이 지역에서 실현되고, 조직되면서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별 특성을 말한다.
우리가 만든 경제 지역의 자화상
지역은 살아있다(그림 1). 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한 지표로 자리 잡고 있는 제조업과 지식기반서비스업 종사자 수를 중심으로 2000년부터∼2017년까지 몇몇 지역의 변화를 살펴 본 결과이다. 더 많은 유형들이 존재하겠지만, 필자가 살펴 본 11개의 지역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그룹은 생산가능 인구는 감소하거나 정체상태이지만 일자리가 확대된 지역이다. 강원도 철원군, 삼척시, 경기도 연천군, 경상남도 고성군이 이와 같은 사례에 속한다. 이 지역들은 그 성장의 본질이나 속성은 다를 지라도, 1950년에서 2000년까지 이탈리아 북동부 산업성장인 '제3의 이탈리아' 그래프 유형과 유사하다. 즉, 생산가능 인구가 정체된 상황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형국이다.
두 번째 그룹은 생산가능 인구와 일자리가 모두 확대된 지역이다. 여기에 강원도 원주시, 전라북도 전주시, 경기도 포천시와 동두천시가 속한다. 이중 원주시는 지난 3∼4년 동안 다른 지역보다도 급격한 생산가능 인구의 증가를 경험했다. 일반화는 곤란하지만, 대체로 지역 거점도시들의 성장세이다. 이 지역들은 정책적 자극과 거점 도시라는 지역적 관성을 누리면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는 지역들이다.
세 번째 그룹은 위기지역들이다. 이는 다시 세 그룹으로 세분되는데, 생산가능 인구가 소폭 감소되면서 1∼2년내 일자리가 급격하게 감소되었던 경상남도 통영시가 그 사례이다. 다음으로 생산가능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일자리가 급격하게 감소된 경상남도 거제시의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생산가능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를 경험하면서 2016년 이후 쇠퇴를 보이고 있는 경상북도 구미시의 유형이다.
이 지역들은 우리나라 국가산업의 지역적 성장거점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지역들의 쇠퇴가 일시적이기를 바랄 뿐이지만, 구조적일 경우 지역 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1인의 지도자나 단기적인 정책 처방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역 모두가 동원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지역들이 존재할 것이다. 예를 들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산업종사자수가 가장 많은 서울시 강남구와 생산가능 인구가 가장 많은 경기도 수원시, 이들을 뒤쫓고 있는 경상남도 창원시와 경기도 성남시 등이 있고, 이와는 반대로 1970년부터 2015년까지 45년 동안 낙후의 계곡을 벗어나지 못한 많은 낙후지역들도 존재한다.
2020년에는 지역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경제지리학적 도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점들을 반드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일터와 삶터가 분리되면서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하고 있는 지역들의 출현이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직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혁신도시들뿐만 아니라, 대구-경산, 목포-영암 간 관계다. 즉, 일터는 경산이나 영암에 있고, 삶터는 대구나 목포에 있는 유형이다.
일터와 삶터의 공간적 분업은 지역 간 협력과 갈등의 경계를 만들어 놓고 있다. 이와 같은 유형은 특히 산업도시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데, 한 지역에서의 산업위기는 이 산업과 연관된 기업들이 입지하고 있는 도시들로 확산되면서 초광역적 차원에서 정책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으로 지역 공동체에 부합하는 비전 설정과 실천적 리더십의 필요성이다. 아무리 좋은 비전도 지역 공동체와 부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며, 아울러 실천적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으면 비전은 허상이나 망상에 불과하다.
비전 설정이란 공동체에서 다양한 담론들의 쟁패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이를 지역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실천적 리더십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치 지역에 널려 있는 것 같아서 보이지 않는 자원들에 대한 동원력과 활용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역의 혁신자원은 만들어서 쓰는 것이지 사서 쓰는 것은 아니다.
지역을 만들어야 할 때다. 지역은 돈으로, 뛰어난 정책적 아이디어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역은 공동체의 공동 학습과 실천적 리더십으로 만들어지며, 지역 주민 모두의 잠재적 자원들에 대한 동원력과 활용력으로 거듭난다. 2020년 필자는 경제지리학적 시선을 여기에 고정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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