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주부전이 사찰 이야기인 이유

[최재천의 책갈피]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

재작년 여름 흑룡강성인대상위(人大常委)부주임 리센강(李显刚)과 서울에서 저녁을 함께하게 됐다. 나이가 토끼띠로 똑같았다. <별주부전>을 차용해 '오늘 술을 마시려고 간을 빼서 양지 바른 곳에서 말려 두었다가 다시 집어넣고 왔다.'라고 했다.

인도 어느 해안가에 열매가 많이 열리는 잠보나무가 있었다. 원숭이 한 마리도 살고 있었다. 나무 아래에는 원숭이가 던져 주는 열매를 얻어먹고 서로 친하게 된 악어가 있었다. 악어의 아내는 남편이 갖다 주는 열매를 먹을 때마다 '이 열매를 먹고 사는 원숭이의 간은 얼마나 맛있을까?'하고 생각했다. 악어 아내가 원숭이 간을 먹고 싶다고 계속 채근했다. 악어는 할 수 없이 한 가지 꾀를 냈다. "내가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으니 한번 대접을 하겠다"며 원숭이를 등에 태워 먼 바다로 나갔다. 악어가 원숭이에게 "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원숭이는 "그런 사연이라면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나는 간을 잠보나무 구멍에 감추어 놓고 다닌다"고 말했다. 속은 악어가 잠보나무 근처로 데려다주자 원숭이는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서 "이 세상 어느 누가 간을 빼놓고 다니겠니"라며 악어를 조롱했다.

▲ 별주부전은 토끼와 자라의 이야기다. ⓒ동아출판 공식 블로그

부처님 전생의 수행을 담은 <본생담>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이야기가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에는 악어가 흔하지 않다. 악어가 용으로 대체됐다. 이야기가 다시 우리나라로 건너온다. 판소리 <수궁가>가 됐다. 수궁가를 소설화한 작품이 <별주부전>. 우리나라에서는 악어의 아내가 용왕으로, 용은 자라로, 원숭이는 토끼로 대체 됐다. 악어나 원숭이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자라가 토끼를 등에 태우고 용궁으로 가는 장면이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져 절집 안에 표현된다. 어찌 보면 비불교적인 내용일 텐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불교에서 용궁을 바닷속에 있는 또 하나의 불국정토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라가 토끼를 태우고 용궁으로 가는 모습은 중생을 불국정토로 인도하는 장면으로 간주 됐다.

지난 12월 하얼빈에서 리센강 부주임과 다시 만났다. 리 부주임이 토끼의 간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고 술을 권했다. 그날 저녁 하얼빈 기온이 영하 25도였다. 호텔 베란다에 간을 빼서 말려 두었더니 땡땡 얼어버렸다고 답했다.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는 우리 문화와 역사와 절집에 대한 놀라운 정보를 제공하여 참으로 고마운 책이다. 추천한다.

▲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노승대 지음)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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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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