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의 국민볶음밥, 그 기원은?

[최재천의 책갈피] <중화미각>

최치원 선생 후손이다 보니, 중국 양저우시를 자주 찾게 됐다. 어쩌다 '도시 귀빈'이 되는 영예까지 안게 됐다. 갈 때마다 양주볶음밥을 먹게 된다.

양주볶음밥의 기원이 궁금했다. 시작은 아득히 멀리 대운하가 착공되던 수나라 양제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양제는 대운하를 뚫어 강남까지 배를 띄운다는 원대한 포부를 실천했다. 양제가 좋아했던 달걀볶음밥이 당시 '강도(江都)'라 불리던 양주에서 유행했다. 황제가 드시던 음식이라 이름마저도 ‘황금가루 볶음밥’이란 뜻의 쇄금반(碎金飯)이라 했다.

그러나 거창한 별칭과 별개로, 사실 양주볶음밥은 운하의 뱃사람들이 일용하던 저녁 한 끼 양식이었다. 뱃사람들은 점심에 먹고 남긴 밥을 따뜻하게 데우려고 거기에 달걀과 다진 파, 갖은 조미료를 넣어 뜨거운 기름으로 볶았다. 남긴 밥을 따뜻하고 맛나게 먹기 위한 삶의 지혜가 응축된 요리가 바로 양주볶음밥이 된 셈이다. 양주볶음밥은 전형적인 중국볶음밥이다.

널리 알려졌듯 양주는 대운하의 시발점이다. 그래서 고대부터 소금상인들이 판을 치는 물류 중심 도시가 됐다. 천하의 사람과 물산이 양주로 흘러들었던 것처럼 양주볶음밥에는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산과 바다의 모든 것이 보이지 않으면 진짜 양주볶음밥이 아니다"라고 했다.

1989년 중국 소설연구자들이 창립한 한국중국소설학회가 있다. 올해로 30년이다. 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19명이 중국역사와 문학속의 음식이야기를 풀어냈다. <중화미각>은 이들이 연구해온 '이야기의 힘'이다.

바야흐로, 외식업계에는 지금 마라(麻辣) 열풍이 분다. 한자를 자세히 보았다면 뭔가 달랐을 것이다. 마라탕에서 '탕'은 왜 탕(湯), 국이 아니고 탕(燙), 뜨겁다 일까.

"마라탕에서 탕(燙)은 뜨겁거나 화상을 입는다는 뜻이 아니라 바로 요리법의 한 가지다." 탕이란 요리법은 잘 자른 원료를 뜨겁게 끓는 탕국에 넣고 데치는 느낌이 들 법한 요리법이다. 그래서 마라탕은 매운 국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마라 국물을 끓여서 재료를 익혀 먹는 요리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을 자주 다니다보니 느낄 때가 있다. 한국의 중식은 이미 중식이 아니라 한식이다. 중국 사람이 한국의 중식을 낯설어한다. 나 또한 중국에 가면 낯선 중식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특히, 중국의 다양한 채소 요리, 그리고 두부 요리는 정말 부러울 때가 있다. 고려시대 때 중국에서 두부를 가져왔듯, 이제는 중국에서 채소 요리와 두부 요리법을 가져왔으면 싶다.

▲ <중화미각>(김민호, 이민숙, 송진영 외 지음)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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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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