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19일 오후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좌파연합 5적 '심정손박문'"이라고 범진보진영 유력 정치인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좌파는 준연동형 '캡'을 내년 총선에만 적용하겠다고, 선거법을 한 번만 쓰고 버리겠다는 얘기를 한다. 도대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심 원내대표는 "이같은 '걸레 선거법'을 누가 받아들이겠느냐"며 "민주당과 좌파 '심정손박'이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비례한국당'을 만들 수밖에 없음을 미리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박완수 한국당 사무총장도 기자들과 만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비례 정당'을 만들 수도 있다"며 "지금 실무적인 준비는 하고 있다. 언제든 등록할 수 있는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4+1은 물론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 도입을 주장해온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이 총선에서 얻은 정당득표율에 전체 의석이 연동해야 한다는 취지의 제도다. 예컨대 한 정당의 정당득표율이 10%, 지역구 당선자가 10명이라면, 기존 제도에서는 정당득표율은 지역구 선거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비례대표(현행 47석) 의석에서만 10%가 배분됐다.
그러나 '연동형'에서는 전체 300석의 10%인 30석이 이 정당이 얻어야 할 의석 수의 기준이 되고, 지역구에서 10석밖에 당선되지 않았다면 이 정당은 원칙상 20석을 비례대표로 받게 된다. 이 제도는 유권자들의 의사가 정확히 반영되고 사표를 줄일 수 있어 개혁적이라고 평가돼 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2015.4.6) "지난 총선에서 야당은 부산 지역에서 40% 득표를 했는데, 의석은 18석 가운데 2석밖에 얻지 못했다. 대구·경북의 경우 (민주당을 지지한) 20~30%에 달하는 국민들이 단 한 명도 대표를 내지 못한다"며 같은 취지의 문제 제기를 한 바 있다.
다만 정당 득표율보다 지역구 당선자 수가 많은 거대 정당(20대 총선에서 민주당 정당득표율 26%에 지역구 123석, 구 새누리당 34%에 지역구 122석)은 오히려 정당득표율 대비 초과 의석수를 달성했기 때문에 이런 제도에서는 비례대표 의석을 거의 받지 못한다.
한국당은 이런 제도의 취지를 거슬러서 '지역구는 원래의 한국당에, 비례대표 투표는 비례한국당에' 투표해 달라고 호소하겠다는 편법을 들고 나온 셈이다.
그러나 제1야당의 품격이나 자존심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현행 공직선거법 88조는 "후보자,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회계책임자, 연설원, 대담·토론자는 다른 정당이나 선거구가 같거나 일부 겹치는 다른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고, 같은 법 255조는 이를 '부정 선거운동'으로 규정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는 과거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 '야권연대'에 족쇄가 됐던 조항이기도 했다.
또 우세스러움을 무릅쓰고 '비례 정당'을 만든다 한들, 그 정당이 '본가(本家)'인 한국당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를 것인지도 역시 미지수다. 만약 이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 배분선 이상의 득표율을 올리는 데 성공한다면, 의석이 적은 대로 당당한 원내 정당이 되고 국가로부터 정당보조금 등도 받게 된다. 한 표가 아쉬운 상황에서 '캐스팅 보터'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를 모두 버리고 본가에 다시 들어갈 정치인이 있겠는지도 의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제도의 도입 취지에도 맞지 않고, 현행법에 비춰봐도 위법 소지가 크며, 정치 현실에 비춰봐도 가능성이 높지 않은 주장에 대해 민주당이 사뭇 진지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당이 '4+1' 협의체를 향해 던진 황당한 이간계를 민주당이 선거개혁 후퇴의 명분으로 삼는 모양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변인은 전날 의원총회 결과 브리핑에서 "(연동률 적용 대상) 30석 상한선 부분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도 "다만 '위성 정당'이 고려되고 있다는 여러 정황과 내용이 있기 때문에, 비례만을 위한 정당이 출현하는 부분은 연동형비례대표제 전체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고 언급했다.
한국당이 '연동형 개혁'에 반발하며 반대 방향으로 어깃장 놓기를 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민주당의 '연동률 축소' 주장의 근거가 돼주고 있는 셈이다.
한국당은 '4+1' 협상에서 민주당이 마지막까지 거부하고 있는 석패율제에 대해서도 이날 맹공을 폈다. 황교안 당 대표는 "정치개혁, 혁신이 국민의 요구인데, '종신 국회의원'을 만드는 석패율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며 "민주당이 석패율 협박에 굴복한다면 더 큰 국민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과 4년 전만 해도 석패율제는 옛 새누리당의 '당론'이었다. 이를 앞장서 주장한 것은 김무성 당시 대표였지만, 정식으로 의원총회를 거쳐 당론으로 채택됐던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 참석했으나, 황 대표가 석패율제를 비난하는 대목에서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2014년 7월 24일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영호남 지역 패권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석패율제 등에 대한 적극적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 전 대표의 지론이기도 했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 대통령과 정치협상을 통해 오픈 프라이머리와 석패율제 도입에 큰 틀에서 합의하기도 했다. (이 합의는 결국 최종적으로는 무산됐다.)
이듬해인 2015년 4월 2일 의원총회에서,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의 나경원 선거공천개혁소위 위원장은 "(비례대표 후보 추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희가 지역감정 해소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서 석패율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라며 의원들에게 추인을 요청했다.
나 당시 소위원장은 "석패율제를 지금 선관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다소 혼동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은데,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권역별로 비례대표 리스트가 따로 있는 것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했을 때 과연 우리가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할 것이냐"고 권역별 비례대표제에는 부정적 태도를 비치면서 "저희가 말씀드리는 석패율 제도는 우리가 일정 비율 이상의 득표율을 못 올리는 취약 지역, 저희 당의 경우에는 호남이 아마 대표적으로 거기에 해당할 것 같은데, 그 경우 지역구 후보자가 비례대표 후보자로 동시에 등록하게 하는 것"이라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나 소위원장은 "예컨대 우리가 '석폐율제 비례대표 의석 수를 한 10석 주겠다'고 하면, (그래서) 10석 중에 3석은 광주, 3석은 전남, 3석은 전북, 이렇게 준다면 광주지역 출마 후보는 모두 비례대표 1번에 동시에 등록이 되고, 그 중에서 가장 당선자와 득표율 차가 적은 후보가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이 된다"며 "이러한 석패율 제도를 통해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나 소위원장이 설명한 제도는, 이날 심 원내대표 등이 '심정손박'이라고 공격한 '3+1'에서 현재 주장하는 석패율제와 하나도 다른 점이 없다.
결국 김무성 대표, 김문수 보수혁신특위 위원장, 나경원 소위원장 등의 노력으로 석패율제는 2015년 4월 9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추인됐다. 표결도 아닌 만장일치 가결이었다. 심재철 현 한국당 원내대표는 당시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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