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째 장례 못 치른 마사회 기수 유족의 호소

문중원 기수 부인 "마사회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빼앗아 간 곳"

"저희 남편은 정말 성실하고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조교사 면허를 취득하고 마방 배정을 받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발로 뛰어다녔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를 하는 도중에 이미 합격자는 누구인지 경마장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시험을 보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래도 저희 남편은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노력했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결과는 소문에 났었던 그분들이 합격을 하더라구요. 저는 충격에 빠진 남편을 위로하기 급급했습니다. 저희 남편의 속은 까맣게 타고 빈 공간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나 봅니다."

고 문중원 마사회 기수의 부인인 오은주 씨의 말이다. 문 기수의 아버지인 문군옥 씨도 지난 11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사회에 돌던 '소문', 그리고 소문대로 결론 난 마방 배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당한 경마 지시와 불공정한 마방 배정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문 기수의 유족이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한 호소를 이어가고 있다. 유족들은 19일째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17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공운수노조와 정의당 등 주최로 문 기수의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마사회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빼앗아 간 곳"

이날 기자회견에는 문 기수의 부인과 어머니가 참석했다. 부인인 오 씨는 내내 울먹이며 직접 적어온 글을 읽었다.

오 씨는 "제가 이런 자리에 나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며 "갑자기 찾아온 충격적인 소식에 이미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아무런 의욕도 없고 모든 게 두렵기만 한 상태로 있었다"고 말했다.

오 씨는 "가족밖에 모르던 그런 착한 사람이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 얼마나 그 힘든 세월을 혼자 가슴속에 품고 살았을까"라며 "제 남편이 마지막 문을 나서던 순간이 기억난다"고 전했다.

문 기수는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숙사에서 동료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 날인 11월 28일 저녁 7시 경 경마공원에 들어왔고, 당일 밤 10시까지 부인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오 씨는 "여느 때와 다를 거 없이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 다녀올게. 사랑해'라고 말하고 나섰었다"며 "제 남편 현관문을 닫고 나서는 순간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지, 죽을 준비를 하고 혼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무서워했을지"라고 말했다.

오 씨는 "마사회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빼앗아 간 곳이고,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온다"며 "제대로 한도 풀지 못하고 모든 걸 떠안고 가버린 저희 남편을 위해 마사회는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 씨는 "저희 유가족은 우리 아이들 아빠를 보내주지도 못하고 차디찬 냉동고에 넣어두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며 "여러분, 힘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2년에 한 번꼴로 노동자 극단적 선택

문 기수는 지난 11월 29일 '말의 능력을 전부 발휘하지 말라거나 아픈 말을 타라는 등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에 시달리는 게 싫어 조교사 면허를 땄지만, 마사회 간부와 친분이 없으면 조교사 일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유서와 함께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숙사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조교사는 마주와 마필관리위탁계약을 맺고 기수와 마필관리사, 말 등을 관리하며 경마 경기의 감독 역할을 맡는 직책이다. 마사회 마사대부심사위원회의 심사 과정을 거쳐 마방을 배정받아야 실질적인 조교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마사회 노동자의 극단적 선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개장 이래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7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원래 직접고용하던 조교사를 개인 사업자로 두고, 하위 성과자를 퇴출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선진경마'가 서울, 제주 등에 비해 잘 시행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족과 생전에 문 기수가 소속되어 있던 공공운수노조는 △ 고인 죽음의 진상규명 △ 재발 방지와 책임자 처벌 △ 공식적 사과△ 유가족 위로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으로는 △ 사람 죽이는 선진 경마 폐기 △조교사와 기수 간 불평등한 계약관계 개선 △ 마방 배정 심사 개선 △ 마방 배정 적체 개선 △ 기수 적정 생계비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여영국 정의당 의원은 "마사회는 기수 면허나 출전권 등으로 생사여탈권을 쥐고 위계구조의 가장 아래에 있는 기수들에게 갑질과 부당한 지시를 일삼았다"며 "지금 이 순간도 마사회는 죽음에 대한 반성이나 그 어떤 진상규명 노력도 안 하고, 기수는 개인사업자 신분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 의원은 "마사회는 유족이 장례라도 치를 수 있도록 지금 당장 진심어린 사과와 교섭,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며 "사법 당국은 고인이 유서에서 낱낱이 고발한 부정한 행위에 대해 즉각 수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