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권력 가진 최저임금위 공익위원들, 권력 더 달라?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최저임금 38년 결정의 역사 톺아보기… "최임위는 공익위원에 기울어진 운동장"

"보다 근본적으로 노동계가 요청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종사자 등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노무제공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여부와 방식에 대한 논의는 우리 위원회가 아닌 실질적 권한을 갖는 정부, 국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별도의 기구에서 논의하기를 권유합니다."

지난 6월 10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4차 전원회의 막바지에 나온 '공익위원 권고안'이다. 작년부터 뜨거운 쟁점으로 다뤄져온 최저임금 확대적용, 그러니까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부문에도 최저임금 권리를 보장하는 논의는 또다시 뒤로 늦춰졌다.

스스로 권한 내팽개친 최저임금위원회

하지만 공익위원 권고안은 뭔가 이상하다. 간단히 말해 현행법과 제도로는 어렵다는 것, 즉 최저임금 적용 확대를 위해서는 법·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이다. 법·제도를 바꾸는데 정부와 국회가 권한이 있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 되는데, 대체 경사노위는 왜 등장한 것일까?

필자가 아는 한 최저임금 법·제도 개선 관련하여 경사노위는 아무런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경사노위에서 노·사·정이 사이좋게 최저임금 제도 개선을 의결한다 해도 그 내용이 정부와 국회로 전달되는 것일 뿐이다. 결국 정부·국회가 결정해야만 법·제도가 바뀐다. 경사노위는 그저 '건의'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권한이라면 경사노위가 아니라 최저임금위원회가 오히려 확실한 법적 근거를 갖고 있다. 최임위 기능을 명시한 최저임금법 제13조를 보면 제3호에서 "최저임금제도의 발전을 위한 연구 및 건의"를 분명한 자신의 기능으로 하고 있다.

최저임금법 제13조(위원회의 기능) 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기능을 수행한다.

1. 최저임금에 관한 심의 및 재심의

2. 최저임금 적용 사업의 종류별 구분에 관한 심의

3. 최저임금제도의 발전을 위한 연구 및 건의

4. 그밖에 최저임금에 관한 중요 사항으로서 고용노동부장관이 회의에 부치는 사항의 심의

즉, 공익위원 권고안은 법에 명시된 최임위가 가진 기능을 스스로 걷어찬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기능과 권한이 없는 경사노위를 언급한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여기 말고 다른 곳에 가서 논의하세요"라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유체 이탈 최임위 공익위원들

지난해 11월 8일, 그러니까 윤석열의 계엄이 있기 직전에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제도개선 위원회'를 발족시킨 뒤 결정구조 개편을 비롯한 다양한 최저임금 제도개선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 이 위원회는 총 9명으로 구성됐는데 놀랍게도 그 중 4명(권순원, 오은진, 성재민, 김기선)이 최임위 현직 공익위원들이다.

이들은 6개월가량 논의를 진행한 후 올해 5월 15일 "최저임금 제도개선을 위한 제안서"라는 형태로 결론을 내놓게 된다. 문서를 보면 ▴최저임금 결정체계 ▴최저임금 구분적용 및 특례 ▴최저임금 결정기준 등 크게 3가지 쟁점에 대한 의견을 정리하고 있다. 즉, '최저임금 확대적용'과 관련한 내용은 아예 다루지 않은 것이다.

이 얼마나 기만적인가? "다른 곳에 가서 논의하세요"라고 친절하게 안내하신 공익위원들 상당수가, 그 '다른 곳'에서 본인들이 직접 제도개선 논의를 6개월이나 했다는 거 아닌가. 게다가 그 논의 결과를 발표한 지 불과 1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 "우리는 논의할 권한 없어요"라고 얘기한 거다. 정작 그 기구에서 본인들은 '최저임금 확대적용' 논의조차 안 해놓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6월 10일 나온 '공익위원 권고안'에 대해 민주노총이 '한 걸음 나아간 진전'이라고 평가한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불과 한 달 전에 확대적용 얘기를 쏙 뺀 제도개선 내용을 발표한 공익위원들이 한 달 사이에 개과천선이라도 했단 말인가.

최임위 역사를 보면 결정구조도 보인다

자신들에게 권한이 있는 데도 없는 것처럼 숨기는 '유체이탈' 화법은 이들 공익위원이 주도한 제도개선 제안서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제도개선의 핵심은 최임위 결정구조 개편인데,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최임위에서 노사 당사자들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는 대신 공익위원 기능을 비롯한 전문위원회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금의 최저임금 결정구조가 과연 노사 당사자들의 영향력이 너무 세서 문제였던 것일까? 공익위원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영향력이 너무 모자랐던 것일까? 이건 해외 사례나 연구 논문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1988년부터 시행된 최저임금 제도가 매년 어떻게 결정돼 왔는지 역사만 살펴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역대 최저임금 결정과정이 모두 요약돼 있다. 1987년부터 2024년까지 총 38회의 최저임금 결정이 있었는데, 매년 복잡한 논의를 거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종 결정과정에 들어가면 노·사·공익이 각각 의견을 제시하고 만장일치, 또는 표결로 결론을 내게 된다.

▲지난 38년(1987~2024년) 최저임금위원회 결과를 정리한 표. ⓒ오민규

38회 중 합의 처리 7회, 표결 31회

그렇다면 최종 결론은 4가지 중 하나이다. 노·사·공익이 표결 없이 합의(만장일치)하거나, 표결을 통해 공익안, 사용자안, 근로자안 중 어느 하나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아래 표는 <인사이드경제>가 최임위 홈페이지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38회의 최종 결정방식을 정리해 본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4가지 분류 항목에 고유한 색깔을 입혀 보았다.

(참고로 매년 최임위가 결정하는 것은 '내년 최저임금'이다. 1988년부터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됐지만, 1988년 최저임금은 1987년 최임위에서 결정됐다. 지금 열리는 최임위가 심의하는 것은 올해 최저임금이 아니라 2026년 최저임금이다.)

1987년부터 2024년까지 총 38회의 최저임금 결정 중 표결 없이 노·사·공익이 만장일치 합의를 한 사례는 7회이다. 나머지 31회는 합의를 이루지 못해 표결로 결정됐다. 마지막 만장일치 합의는 2008년이었으며, 따라서 지난 16년은 합의를 이루지 못해 매년 표결이 이뤄진 셈이다.

표결 31회 중 공익안 의결이 무려 16회

그렇다면 표결로 결정한 31회 중 가장 많은 경우의 수는 무엇이었을까? 놀라지 마시라. 과반에 해당하는 16회가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안을 표결에 부쳐 결정했다. 공익위원들은 지난 38년의 최저임금 역사 속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도 공익 및 전문가들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도개선 제안서는 한마디로 난센스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공익안으로 의결하지 않은 나머지 15회 표결은 어떻게 나뉘었을까? 이것 역시 놀라운 결과이다. 15회의 2/3에 해당하는 10회가 사용자안으로 의결된 경우였고, 근로자안으로 의결된 경우는 5회에 불과했다. 즉, 노·사 당사자 중 사용자단체가 훨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노동자단체는 가장 약자의 지위에 있었던 것이다.

이 역사를 지난 10년(2015~2024년)으로 좁혀놓고 보면 힘관계가 훨씬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10년 동안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노·사·공익 합의 처리 없이 매년 표결로 결론이 났으며, 이 중에서 공익안 의결이 6회, 사용자안 의결이 3회, 근로자안 의결은 고작 1회에 불과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최저임금위원회

유체이탈 공익위원들의 제안대로 하자면, 이렇게 노·사 당사자 영향력이 낮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그 기울기와 권력을 모조리 공익위원들에게 몰아달라는 얘기이다. 막강한 공익위원들끼리 모여서 제도개선을 논의한 뒤 집중된 권한을 더 모아달라는 결론을 낸 것이니 이거야말로 '이해충돌' 사례가 아닐까.

놀랍게도 그런 제도개선안에 대해 사용자단체는 큰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공익위원들에게 막강한 권한이 주어진 결정구조가 만족스럽다는 얘기이다. 지난 10년 동안 단 1회만 근로자안으로 의결됐던 역사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노동자단체에 얼마나 불리한 결정구조를 갖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2023년과 2024년, 그러니까 지난 2년은 연속으로 사용자안이 의결됐다. 최임위 역사에서 2년 연속으로 사용자안이 의결된 것은 2002~2003년과 2023~2024년뿐이었다. 그나마 2002~2003년은 그 전해인 2000~2001년에 2년 연속으로 근로자안으로 의결됐다는 특수성 속에서 보아야 한다.

2년 연속 이기고도 "어렵다"는 사용자단체

그런데 올해 최임위 전원회의에서도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단체는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적어도 지난 2년 연속으로 사용자 안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면, 사용자단체 입장에서는 그나마 수용할 수 있는 최저임금 수준이 2년 동안 지속됐다는 얘기인데 말이다.

물론 "어렵다"는 얘기 자체가 부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2년 연속으로 자신들이 제시한 안으로 결정이 됐다면, 최소한 사용자단체 입장에서 '최저임금 준수 캠페인'이라도 벌이는 사회적 책임 정도는 다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결정된 최저임금, 그것도 자신들이 제시한 안으로 결정된 최저임금에 대해 준수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매년 "최저임금이 너무 높다"는 말만 반복한다면 그 진정성을 과연 누가 믿어줄 수 있을까. 자신들은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노동조합에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태도 역시 설득력을 갖기 힘들 것이다.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 4차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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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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