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황 대표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선의를 믿겠다"고 한 점, 탄핵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불문에 부치자'는 수준으로 요구 조건을 조정한 점 등은 유 의원 역시 보수 통합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도 "앞으로 잘 협의하겠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유승민 "대화 시작하겠지만 안 될 수도, 깨질 수도 있다"
유 의원은 7일 오전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모임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 회의 후 기자 간담회를 갖고 자신의 '보수 재건 3원칙'을 재강조했다. '보수 재건'이란 유 의원이 '보수 통합'이라는 말을 대신해 사용하는 용어다.
그는 먼저 "탄핵의 강(江)을 건너자"며 "탄핵의 강을 건너지 않고는 보수가 화합, 통합을 할 수 없다.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는데, 강을 건너지 않고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보수 혁신, 쇄신을 말하는데, 앞으로 보수의 새로운 방향은 제가 오랫동안 주장하던 개혁보수의 길"이라며 "한국당이든 변혁이든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어야 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그는 "보수 재건을 위해 이 3가지 원칙만 지켜진다면 다른 아무 것도 따지지도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탄핵의 강을 건넌다는 게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탄핵에 대해서 저 개인 의견을 묻는다면 저는 탄핵에 찬성했던 사람이고 그 생각은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탄핵에 반대했던 보수 정치인도 계시지 않느냐. 보수가 3년 전 문제를 가지고 서로 손가락질하고 잘잘못을 따지고 책임을 묻는다면 통합이 불가능하다. 탄핵은 역사에 평가를 맡기고, 보수가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즉 '탄핵이 정당했음을 인정하라'는 게 아니라 '더 이상 탄핵의 적부를 논하지 말자'는 얘기다. 유 의원은 지난 10월 9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는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것의 의미가 뭐냐'는 같은 질문에 대해 "한국당이 탄핵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입장을 분명히 해야만 보수가 살 수 있다"고 했었다.
유 의원은 "저는 황 대표와 한국당이 이 3가지 원칙에 대해 가볍게나 쉽게 셍각하지 않기 바란다"며 "황 대표나 한국당도,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선거를 앞두고 선거용 야합이나 하기 위해 말로만 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대화에 임해 달라"고 경고했다.
'변혁'이 추진해온 중도보수 신당은 한국당과의 통합 대화와 별개로 '투 트랙'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유 의원은 밝혔다. 그는 "한국당과의 보수 재건 문제는 이제 갓 대화가 시작된 것에 불과하고, (한국당이) 너무 '3원칙'을 쉽게 생각하거나, 말로 속임수를 쓰거나 하면 이뤄지지 않을 일"이라며 "변혁은 변혁대로 우리의 갈 길인 개혁적 중도보수 정치를 하기 위한 신당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플랜 A, B, 할 것 없다. 우리 계획은 신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신당으로 가고, 한국당과의 대화 문제는 보수 재건이 탄핵의 강을 건너고, 개혁보수로 나가고, 그를 위한 혁신 조치가 일어나고, 낡은 집을 허물고 국민이 마음을 줄 수 있는 보수의 집을 재건하느냐가 결정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수 재건이 쉬우냐? 지난 3년 동안 되지 않았던 보수 재건이 만나서 악수하고 말 몇 마디로 가능한 일이냐? 저는 어렵게 보고 있다"며 "제가 제시한 3원칙에 대해 한국당이 쉽게 보거나, 말로만 하거나, 속임수를 쓰지 말라는 것은 진정한 보수 재건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 3원칙을 한국당 구성원들이 받아들이는 게 어렵다는 것은 17년간 그 당에 있었던 제가 잘 안다"고 언급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한국당의 스케줄, 그 사람들의 계획에 맞춰서 그것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면서 "개혁중도보수 신당이 우리가 갈 길이라는 신념이 있고, (신당은) 그 길을 가겠다는 뜻을 확실히 가진 사람들이 동지로서 참여하는 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당을 보수 통합의 수단 방법으로, 임시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도 했다.
유 의원은 간담회 내내 한국당의 진의가 확인돼야 함을 여러 차례 반복해 강조했다. 그는 "진정한 보수 재건을 위해 대화하자는 거라면 제가 피할 이유가 없다. 응하겠다"면서도 "하지만 진짜 한국당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그 분들이 정말 구체적이고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부터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다. "대화는 시작하되, 그 대화는 상대가 있는 거니까 안 될 수도, 깨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일어나는 변화에 국민이 얼마나 냉소적인지 안다. 말 몇 마디, 제스처로 국민들이 마음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제가 말씀드린 원칙들이 지켜지길 바라고, 그 원칙을 지키는게 한국당으로서는 고통스런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게 가능하다면 길이 열리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대화는 어려운 대화이고, 고비고비마다 확인돼야 할 부분이 있다"면서도 "어제 황 대표가 제안을 했으니, 일단 상대방의 선의를 믿고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공화당과도 뭉치기만 하면 이긴다? 현실성 없고 성공 못할 것"
보수진영 내 탄핵 불복파인 우리공화당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유 의원은 "'헌법 가치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이 참여하는 보수 재건'은 굉장히 애매한 이야기"라고 전날 황 대표의 제안 내용을 비판하면서 "우리공화당이 탄핵에 대해, 이미 헌법적 판단이 내려지고 역사 속으로 들어간 문제에 대해 '절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제가 말한 보수 재건의 원칙에 벗어나는 행동이고, 그걸 아울러서 '뭉치기만 하면 이긴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못박아 말했다.
그는 "공화당의 입장보다도, 한국당에 계신 분들이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이라며 "계속 과거의 문제, 3년 전 탄핵 문제에 매달려 있는 분들과 같이 보수를 재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성이 없는 생각이고 그런 '빅 텐트'가 성공할 거라 보지 않는다"고 강조다.
한편 유 의원은 황 대표와의 사전 소통 여부에 대해서는 "(전날 황 대표가) '저와 직간접 소통했다'고 얘기하던데, 직접 대화는 없었고 추석 직전에 서로 안부 묻는 간단한 전화는 있었지만 보수 재건 관련 직접 대화는 없었다"고 말했다.
신당 창당과 보수 통합을 '투 트랙'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당과의 통합 성사 여부가 언제까지 결론나야 한다고 보느냐고 구체적 시간표를 묻자 그는 명확한 답을 하지 않은 채 "(논의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언젠가는 대화의 결말이 나지 않겠느냐"고만 했다.
유 의원이 이날 '3원칙'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이나 그 원칙이 관철되지 않으면 통합 논의가 "깨질 수 있다"고까지 말한 것은, 한국당을 향한 압박인 동시에 통합에 어정쩡한 입장인 안철수계를 다독이려는 포석으로도 해석된다.
유 의원은 이날 변혁 회의에서 "신당기획단을 출범시키기로 결정했다"며 "권은희, 유의동 의원이 공동단장을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안철수계의 신당 동참 여부에 대해 "신당기획단에 권·유 의원 두 분이 같이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 분들(안철수계) 입장에서는 신당 문제에 대해 사실 100% 결심을 하기가 어려운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안철수 전 대표와 신당이나 보수통합과 관련한 의사 교환이 있었는지 묻자 "그 분(안 전 대표)으로부터 신당기획단이나 신당에 대해 말씀을 들은 적은 없다"면서 "많은 분들,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이나 위원장들이 안 전 대표의 입장을 기다리기 위해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고 하는 현실에 대해 이해한다는 내부 대화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을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으니 변혁에 같이하는 분들이 언젠가는 정치적 결단, 선택을 해 달라고 말씀드리는 중"이라고 했다.
또 '한국당과 통합이 불발된다면 선거연대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후보 단일화 같은 것이라면 저는 아직 생각해 본 바 없다. 신당이라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잘 알고 있고, 지금까지도 힘든 정치를 해왔지만 더 고난의 길을 가야 하는데 벌써 선거연대를 얘기할 계제는 아니라 생각한다"고 답변하면서 "그런 점에서 국민의당계도 걱정할 것 없다. 같이 의논하는 동지인 이상 당연히 협의할 문제"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황교안 "유승민의 '원칙', 극복할 수 있다…앞으로 잘 협의하겠다"
한국당 측은 일단 통합 논의가 시작된 데 고무된 분위기다. 황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은 모든 것을 통합의 대의에 걸어야 할 때"라며 "통합이 정의이고 분열은 불의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자유민주 세력이 국민 중심의 낮은 자세로 마음을 모아서 승리를 위한 통합을 이뤄내도록 저부터 낮은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역설했다.
황 대표는 이날 유 의원이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당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표한 내용을 전해듣고는 "그런 것 때문에 앞으로 협의해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앞으로 잘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 의원과의 통합을 위해서는 황 대표가 탄핵에 대해 먼저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재질문에도 그는 "앞으로 협의 과정에서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만 했다.
황 대표는 전날 부산에서 강연 일정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유 의원이 제시한 '원칙'에 대해 "앞으로 통합협의체가 만들어지면 거기서 논의하는 것"이라면서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유 의원에 대한 당내 반대, 반발도 극복해 나가야 한다"면서 통합 시점에 대해서는 "가급적 빠를수록 좋겠다. (그러나) 12월은 돼야 할 것 같고, 1월이 될 수도 있겠다"고 언급했다.
박맹우 한국당 사무총장은 이날 "통합 기구부터 만들겠다"며 일정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박 사무총장은 "어제 유 의원이 성실히 통합 협의에 임하겠다는 답을 줬기 때문에, 우선 사전협의를 할 수 있는 실무팀을 구성했다. 저쪽(유 의원 측) 실무팀이 정해지는 대로 협의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한국당 측 실무팀은 홍철호·이양수 의원으로 정해졌다고 박 총장은 밝혔다.
박 총장은 우리공화당과의 통합 논의도 열려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쪽도 그쪽대로 정해나가겠다. 모든 보수 우파 세력에 대해 협의에 임하겠다"면서 "(유 의원 측은) 어제 '성실히 임하겠다'는 답을 해서 실무팀을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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