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시계획사의 이면: "남산 폭파론"이 나온 까닭

[김시덕의 직업적 책읽기] <이야기로 듣는 국토·도시계획 반백년>

<이야기로 듣는 국토·도시계획 반백년>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편저, 도서출판 보성각, 2009

이 책을 읽은 느낌은 <창세기>, <일리아드>, <길가메시 서사시> 같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의 토지를 계획・정비하고 현대 도시를 탄생시킨 영웅들의 증언을 담은 이 책에서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그들이 맞닥뜨렸던 황량한 현실과 비상한 각오, 그리고 시행착오를 수없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이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난처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경험담을 김형만 선생이 전한다.

제가 (동경공업대학을) 졸업 후 일본의 설계사무실에서 일한 후 귀국하기 위하여 가츠다 치토시 교수에게 인사하러 갔더니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2차 대전 중 일본의 모든 도시가 폭격으로 잿더미가 됐다. 종전 후 마스터플랜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복구해 도시를 제대로 만들 기회를 놓쳤다. 한국에서 6.25 전쟁도 끝나 폐허가 된 국토를 제대로 복구하고 만들기 위해서 너는 도시계획은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도시계획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처음으로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이 화두가 항상 제 머리 속에 있었습니다. (396쪽)

역사적인 경위로 인해 초기 한국의 도시계획 관계자들은 일본의 학계 및 실무자들과 관계가 깊었다. 일본의 도시계획 관계자들은 한국인 동료와 제자들에게, 한국은 패전 후 일본이 거친 실패의 길을 피하여 국토를 제대로 정비하라는 격려와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해서 해방과 전쟁의 혼란이 가라앉고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공업입국 정책이 추진되자, 이번에는 공업화에 따른 공해 문제가 대두하게 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장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를 "드디어 한국이 공업국가가 된 상징"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한반도의 빈곤 상태를 생각하면 박 전 대통령의 이러한 감회에는 수긍할 측면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 현재를 만들어내고 있을 때 다른 누군가는 미래를 고민하고 계획해야 한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창립멤버인 노융희 선생은 이 시기부터 공해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그로 인해 정부의 탄압을 받아가면서 공해 문제를 연구하고 서울대학교에 환경대학원을 만들었다.

내가 1972년 5월 환경문제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던 그 당시에는 (중략) 환경문제가 곧 공해문제로 인식되던 때였고 정부는 공해문제를 발표하면 수출에 지장이 있다고 해서 일체 발표하지 못하게 하는 등 공해문제를 연구하던 사람들을 매우 박해하던 시절이기도 하였지요. (중략) 그 당시 내가 이사장으로 있던 사단법인 ‘도시 및 지역계획 연구소’도 원래는 "환경"을 붙여 '환경계획연구소'로 하려고 했지만 감독관청으로부터 일언지하에 거절당해 성사되지 못했는데, 당시에는 그 정도로 환경문제에 대한 거론을 금기시하던 때였기 때문에 학과와 대학원 명칭에 환경을 붙인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고 생각해요. (77-79쪽)

▲ 마포아파트 단지 전경. ⓒ국가기록원

위의 증언은 얼핏 '공해문제 연구자 대 공무원'의 선악 구도로 이해될 수 있겠으나, 미래의 환경문제를 고민한 공해문제 연구자들과 이들을 박해하던 박정희 정권 하의 공무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충심으로 걱정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이처럼 이 책에는 한국 전체, 또는 서울 지방과 비서울 지방의 도시 계획에 직접 가담했던 분들의 귀중한 증언이 가득하다. 서울시립대 교수였고 이 책에도 인터뷰를 남긴 고 손정목 선생이 전설적인 책 <서울도시계획 이야기> 제1권에서 증언했듯이, 서류를 남겼다가 훗날 사고가 나면 서류를 통해 과거를 반성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서류에 이름을 남긴 관계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현대 한국의 일반적인 사고 수습 행태였다 보니,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중요한 사업에도 가급적 자료를 남기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이 분들의 증언은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닌다. 안타깝고 부끄럽지만 이것이 현대 한국의 현실이다.

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증언하는 12인의 증언자 가운데, 장명수 선생의 증언에는 특히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사대문 안팎을 중심으로 발전한 현대 한국 초기까지의 서울시가 바야흐로 외곽으로 확대하려 할 때 남산이 방해가 되니 폭파해버리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는 대목에서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남산 폭파론'이라니!

원로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는데 '남산 때문에 서울이 발전을 못하고 있다'고 규탄을 하는 거예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원래 서울은 풍수지리적으로 동서남북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였고 용산 쪽만 터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산이 앞을 막고 있어서 발전할 길이 없었단 말이죠. 그 후에 문제 해결을 터널로 다 했지만, 터널을 뚫기 전에는 도로가 서울역에서 용산으로 가는 길밖에 없었으니까 교통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나온 이야기가 남산 폭발을 해야 한다고 하는 폭파론이 나왔어요. (335-6쪽)

또, 서울 강남 개발 초기에는 서로 자기가 도시계획을 했다고 자랑하던 사람들이, 훗날 강남 개발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서로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더라는 모습을 전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한때 강남좌파로 자칭하던 사람들이, 최근 들어 "내가 언제 좌파라고 했냐"며 우파를 자칭하고 있다는 항간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처음에는 아무도 강남이 저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습니다. 재정이 어려운 서울시가 땅장사를 하기 위해 달려들어 토지구획정리를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안 팔려서 공무원들한테 떠넘기기까지 했는데 점차 투기가 불어 강남이 소위 인구집중지역으로 되어버렸는데요. 강남이 어느 정도 막 번영할 무렵 지금 내로라하는 도시계획가들이 술을 마시면서 강남 계획을 자기가 했다고 서로 자랑치고 했어요. 나중에 강남이 넘쳐흘러 폼페이 최후의 도시처럼, 악마처럼 유흥가로 되면서 강남 계획을 누가 했냐고 물으면 서로 안했다고 자기와는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눈사람을 굴릴 때 조그만 한 것을 굴리면 그냥 막 불어나듯이 어떤 계획도 대책도 없이 불어나버린 것입니다. (347쪽)

이렇게 황당한 현실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나라를 더 좋게 만들고자 하고, 그에 수반하여 발생하는 문제에 눈 돌리지 않으려 한 분들 또한 많이 있었다. 강병기 선생은 1970년대의 재개발 정책이 사실상 한국 사회의 소수파인 화교나 빈민을 도심에서 내쫓기 위한 정책이었다고 지적한다. 그가 증언하는 것과 같이 빈민들을 트럭에 실어서는 서울시 외곽에 문자 그대로 "쓰레기처럼 갖다 버리는" 현대 한국의 잔인한 재개발 방식에 대해서는, 조은・조옥라 선생의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 - 사당동 재개발지역 현장연구>(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1992) 등에서도 똑같은 사례를 숱하게 확인할 수 있다.

소공동 재개발구역지정은 차이나타운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고, 주택개발촉진법은 판자집을 철거하려고 했던 것이에요. 그때 내가 <동아일보> '청론탁설' 칼럼을 쓸 때도 광주대단지(성남)에 사람들을 쓰레기처럼 갖다 버리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신문사에서 이건 정말 못 싣겠다고 한 일이 생각이 나요. (164쪽)

▲ 소공동지구 재개발사업 조감도. ⓒ김시덕 제공

이러한 강병기 선생의 인식과는 아마도 정반대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 한국 최초의 고급 아파트라고 할 수 있는 마포아파트에 대한 주변 지역 빈민들의 반감을 전하는 주종원 선생의 증언이다. 마포아파트 준공 사진을 볼 때마다 주변 지역과의 대조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실제로 두 공간 사이에서는 계급적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났던 것 같다. 마포아파트 놀이터에서 추방된 주변 동네 아이들 돌팔매질을 "반달리즘"이라고 평가하는 데에서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돌팔매질을 테러라고 규정하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상통하는 감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동네 아이들이 돌팔매질을 했어요. 당시에 주변에 무허가 집들은, 처음에는 텐트를 쳐요. 그 속에서 집을 짓는 거지요. 며칠이 지나서 텐트를 걷어내면 안에 집이 생기는 거지요. 그러니 주거환경이 엉망이겠지요. 그런데 살던 애들이 주변에 자기들은 못 사는데 당시로 봐서 고층의 아파트가 있고, 처음에는 놀이터에서 놀았는데 그것도 나중에는 못 놀게 하니까 돌팔매질을 하더라고요. 이런 게 반달리즘이겠지요. (212쪽)

서울시 내의 소수 집단인 화교와 빈민들을 도시 바깥으로 몰아낸 재개발 방식을 비판하는 강병기 선생은, 특히 비서울 지역에서 대학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있지만 대학들이 이 책임을 중요시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비서울 지역 사립대학교에 대해서는 교육부에서만 폐교 여부를 논의할 것이 아니라 지자체 및 산업 관련 부처들이 지역 발전 차원에서 함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평소에 하던 차여서, 강병기 선생의 지적이 반가웠다. 한 개인의 역사 인식이 자기가 사는 마을에 대한 역사에서 시작해서 한국사·동아시아사·세계사로 확대되어야 하듯이, 대학은 자기가 서 있는 지역에 뿌리내리면서 한국과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는 지역하고 관계를 맺어온 대학이 없어요. 특히 국립대학이 그렇습니다. (중략) 그 지방의 대학이 중요한 핵이 되어야 하거든요. 여러 가지 클러스터의 핵으로 산학협동 등을 대학이 할 일이 많지요. 그런데, 대학들의 생각은 지역에 뿌리내린 산학협동이 아니고 거창해요. 산업하면 지역산업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 하는 식의 꿈을 가지고 있고 특히 국립대학은 더 지역하고 관련성이 없어요. (195-6쪽)
비서울 지역이 처한 이러한 현실에 대해, 서울에서 태어났다가 부산에 정착한 한근배 선생은 좀 더 명확하게 비판한다. 아래의 인용문은 다소 길어서 송구하지만, 이 책 전체에서 '서울 대 비서울'의 차별 문제를 가장 명확하게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므로 장문의 인용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내 소견으로는 그토록 경험 많고 능력 있는 분들이 무조건 서울에만 죽치고 몰려 있을 것이 아니라 지방에 널리 퍼져 살면서 각자 전문영역에서 활동해야 말 그대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양의 여러 선진국을 보세요.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에만 모여살고 있나요? 그뿐만이 아니지요. 어디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에 마치 구더기가 득실거리듯 빽빽하게 들어앉아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지내고 있습니까? 여러 분야의 숨은 인재들이 나라마다 특색 있는 지방도시에 흐트러져 살면서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보세요. 뜻있게 보내는 그들의 값진 삶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그렇게 해야 나라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말을 낳아서 제주도로 보내고 자식을 낳으면 한양으로 보내라는 망국적 집념이 사라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장래는 결코 보장될 수 없을 것입니다. (중략)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가 매년 개최하는 연례행사인 학회총회를 어디 한 번이라도 지방도시에서 개최해본 적이 있습니까? 1970년대 이전까지는 지방에 인력이 전무하다보니 그렇다 치고, 1980년대 들어서면서 지방도시의 순회 개최가 필요하다고 끈질기게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때마다 학회에서 중심역할을 하던 분일수록 뭐라고 되받았는지 아십니까? 이 제안을 즉석에서 거절하면서 도대체 당치도 않는 소리를 한 교수가 늘 지껄인다, 라며 목청을 높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선진국으로 눈을 돌려 보세요. 영국황실도시계획학회의 총회가 매년 런던에서 개최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른 선진국과 매한가지로 지방도시를 번갈아 돌아가며 총회활동을 하면서 그 지역의 계획전문가들을 격려해주며 학회지부의 발전을 지원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말까지 거침없이 내뱉은 분이 있었습니다. 어디 건방지게 우리 국토학회 총회를 지방에서 열자고 하느냐? 정말로 격에 맞지도 않는 정신 나간 서울 촌사람(?)의 부질없는 넋두리가 나에게는 오히려 가련하게 들릴 뿐입니다. (368-9쪽)

내가 일본 유학시절에 회원으로 가입해 있던 일본근세문학회의 경우, 일 년에 두 차례 열리는 정기 학회 가운데 춘계 학회는 도쿄, 추계 학회는 도쿄가 아닌 지역에서 열게 되어 있다. 일본에도 도쿄 바깥으로 출장을 가거나 도쿄 바깥에서 직장을 얻는 것을 꺼려하는 연구자들이 적지 않지만, 이렇게 해서 강제적으로 학문의 전국적 발전을 꾀하는 것이다. 이 책을 편저한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의 홈페이지를 살피니, 최근 십여 년 간은 서울과 비서울지역을 오가며 전국에서 학회를 개최하고 있다. 한근배 선생과 같은 학회 내부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진 것이리라.

글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이쯤에서 이야기를 마쳐야 하겠으나, 지금까지 소개한 것과 같이 이 책 <이야기로 듣는 국토・도시계획 반백년>에는 다른 곳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귀중하고도 생생한 증언이 가득하다. 현대 한국이라는 국가가 어떻게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유익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책이다.

▲ <이야기로 듣는 국토 ·도시계획 반백년>(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지음) ⓒ보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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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문헌학자, 전쟁사 연구자, 서울답사가. 작게는 시군구(市郡區)에서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집단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직업적으로 책·논문·기사를 읽는 중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는 좋은 글을 발견할 때마다 서평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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