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군 위안부, 속칭 "양공주"로서 살아온 김정자 선생이 자신이 인신매매된 뒤로 떠돌아다닌 전국 곳곳의 미군 기지촌을 활동가들과 함께 다시 찾아가서 당시 상황을 설명한 증언록이다. 그녀가 친구에게 속아 납치되고, 포주와 깡패들에게 구타당한 장소들을 촬영한 사진과 함께 당시의 상황이 설명되는 대목은 너무나도 무겁고, 김정자 선생을 비롯한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이 한국 시민 사이에서 공유되지 못하는 현실은 독자에게 고립감과 분노를 준다.
한국 시민은 한국·한민족을 괴롭힌 외부 집단을 비난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한국 정부가 자기 나라의 힘없는 국민을 괴롭힌 사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정부의 그러한 행동을 모른 척 하거나 암묵적으로 지지해온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도 다수의 시민은 자기 정부가 저지른 국가범죄에 침묵하지만, 그래도 "양심적 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목숨을 걸고 자기 사회의 감추어진 역사를 밝혀내 왔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일본군 성노예였음을 최초로 증언한 배봉기 선생의 경우,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를 입은 오키나와 시민의 연대의식에 힘입어 삶을 이어왔고, 가와다 후미코 선생과 같은 일본 언론인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
<한겨레> 2015년 8월 7일자 보도 ‘우리가 잊어버린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그 이름, 배봉기’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식모로 팔려간 뒤 일본 제국 곳곳을 떠돌던 배봉기 선생은 29살 되던 1943년에 위안부 모집 업자에게 속아서 오키나와까지 오게 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배봉기 선생이 사기를 당해 일본군 성노예가 된 것은, 이번에 소개할 책의 증언자인 김정자 선생의 삶과도 유사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의붓아버지·형제에게 성폭행당한 뒤 친구에게 속아 파주 연풍리 용주골로 인신매매된 그는, 자신과 같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군 위안부가 된 여성들이 많은데도 한국민은 자신들을 비난하기만 한다고 하소연한다.
"어, 그 양갈보들 죽었대, 이렇게 알고 있잖아? 어, 이 사람들이 그 생활에서 이렇게 힘이 들어서 자살을 했구나...... 또 내가 악착같이 살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몸에 병이 들어서 죽는 언니도 있어. 난 그런 것들을 반의반만 국민들이 알아줘도 참 감사할 것 같애. 난, 우리한테 욕했던 사람들 몇 명은 어머! 이랬었구나! 이렇게. 우리가 지금까지 책도 안 내고, 아무 것도 안 냈어. 그러면 이 사람들의 머리에 스쳐가는 건, 미군부대 앞에서 양색시한 여자들, 그렇게 인정하고 있을 거야. 그거 뭐, 부모 속 썩이고, 뭐 양갈보로 나왔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게 아니거든. 가난해서 나왔지. 그래, 부모 동기간 먹여 살리려고 나온 사람도 있고, 팔려온 사람도 있고, 한국사람한테 버림을 받아서 나온 사람도 있고, 신랑하고 잘 사는데 폭행으로 못 있어서 나온 사람도 있고, 많어. 다 (양)색시라고 아유, 저 여자 못된...... 아유, 저거? 바람이 나서 나왔어? 저거? 아이고...... 그럼 그렇지 뭐, 이렇게 인정하지 말아달라는 거지. 그럼 돌아가신 언니들이 복통(통곡)을 할 거야. 돌아가신 사람들, 미군 손에 죽은 사람들도 있고, 그 사람 얼마나 미군 손에 안 죽으려고 발버둥을 쳤을 거야?" (307-308쪽)
김정자 선생의 이러한 증언을 기록한 것은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을 사회에 알리고 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조직된 새움터라는 모임이다. 이처럼 주한미군이 안정적으로 한국에 주둔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운영 관리한 미군 위안부에 대해, 한국의 뜻있는 시민들도 결코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나아가, 일본군 성노예 제도를 해방 후의 한국군에 도입한 한국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김귀옥・강정숙 선생 등에 의한 선구적인 연구가 있어왔다. 하지만 한국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한국 사회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국민 학살 문제와 마찬가지로 한국 군부는 한국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김정자 선생의 증언에서 보듯이, 미군 위안부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한국 시민 일반에서도 "양색시"니 "양갈보"라는 식의 차별적 인식이 여전히 널리 존재한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민족주의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라 보편 인권적 의식에 의거한 것이라 믿는 사람이라면,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동일한 정도로 한국군・미군 위안부 문제에도 분노하고, 이를 직시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한국 시민 가운데, 한국군・미군 위안부의 존재와 그 분들의 비참한 상황을 인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한국 정부에 의한 국가 폭력의 희생자인 권인숙 선생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한국 사회 일반의 이러한 이중적 인식을 지적한다.
"군위안부 제도를 도입한 일본 군부를 비판해왔지만 그 제도는 그대로 이어져 한국정부와 미군에 의해서 유지되어왔다. 김정자 씨가 풀어놓은 미군 위안부의 첫 목소리는 일본군 위안부였던 정신대 할머니들의 목소리와 결이 같다. 다만 정신대 할머니들은 온 사회가 포옹하고 있지만 미군 위안부는 이제 존재조차 집단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하게 되어가고 있다." (6쪽)
방직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동네 친구의 거짓말에 속아서 파주 연풍리 용주골에 인신매매된 김정자 선생은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포주와 결탁한 깡패의 폭력, 포주와 호형호제하는 지역 경찰의 묵인 등으로 매번 도주에 실패하고 감금과 구타에 시달리면서 차츰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간다. 미군을 호객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미군 위안부 여성들에게 포주는 세코날・아로징 등의 습관성 약품을 복용할 것을 강권했고, 그녀들에게 제공되는 약품은 물론 빚으로 계산되어 그녀들을 더욱 더 빠져나가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경찰서・군청・보건소 등은 그녀들을 해방시키거나 최소한 근무 상황이라도 개선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그녀들을 산업역군으로 칭송하며 국가를 위해 더 많은 달러를 벌라고 채근했다. 근대 일본의 산업화 과정에서 가라유키상(からゆきさん)이라 불리는 빈민 계급 여성들이 해외에서 성매매하여 벌어들인 외화가 큰 역할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 한국에서도 국가 산업화는 하층 계급 여성들의 성노동에 힘입은 바 컸다.
하지만 그녀들이 희생한 대가를 정부도, 시민 사회도 지불하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그녀들이 은퇴한 뒤에 공장과 임대주택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장담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국 각지의 기지촌에 결성된 미군 위안부 여성 조직인 '자매회'도 장례비・노후대책마련・양로원건립 등의 명목으로 그녀들에게서 회비를 걷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정부가 자매회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이 적립된 회비는 어딘가로 사라졌다(169쪽). 중상층 시민의 안락과 편익을 위해 하층 여성들을 희생시켰으면, 최소한 그녀들이 늙어서 살 수 있는 곳 정도는 마련해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녀들은 국가와 시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지금도 기지촌의 값싼 쪽방에 살고 있으며, 미군 부대의 재편과 함께 이들 기지촌 재개발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쫓겨날 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해부터 나는 뜻 있는 지인들과 함께, 김정자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하층 계급 출신의 미군 위안부 여성들이 끌려와 고생하다 죽어간 기지촌들을 답사하고 있다. 강제로 끌려가 성병 검사를 하던 보건소, 성병을 낫게 하겠다며 그녀들을 감금하고 강제로 페니실린 주사를 놓던 낙검자 수용소, 이런 곳에 끌려가지 않겠다며 타고 있던 트럭에서 뛰어내린 이가 자살한 도로, 그녀들이 미군에게 살해당한 현장...... 이런 현장에 설 때마다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주도했고, '선량한' 한국 시민이 침묵함으로써 암묵적으로 협력자가 된 미군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과, 외국 정부・군대가 한반도의 하층 계급 여성들에게 입힌 피해를 인정하고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고.
그러므로 한국 시민은 미군 위안부 문제도,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도, 한국의 사업가와 학생들이 중국・동남아시아에 버리고 온 숱한 혼혈아들의 존재도 동등한 정도로 직시하고 반성해야 한다. 한국 시민이 그렇게 자아비판을 할 수 있어야, 외국 정부・군인들이 한국인, 특히 낮은 계급의 한국인에게 입힌 피해에 대해서도 인류 보편의 입장에서 반성과 보상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다른 나라를 돕는 것이며 적전분열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근현대 일본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파헤치는 양심적 일본 시민, 스탈린·마오쩌둥의 자국민 학살 문제를 파헤치는 용감한 러시아·중국 시민들도 각기 자기 나라에서 똑같은 비난과 협박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민족보다 계급이라는 관점에서 여러 지역의 시민이 힘을 합쳐야 한다. 파주 대추벌의 기지촌에서 중국인 여성이 김정자 선생을 동두천으로 탈출시켜준 것처럼, 계급은 국가나 민족을 초월해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국의 시민이여, 단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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