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시를 보며, 한국의 도시재생을 예측한다

[김시덕의 직업적 책읽기] 로버트 파우저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이 서평 시리즈의 가장 처음에 다룰 책은, 언어학과 도시를 연구하는 로버트 파우저 선생이 새로 낸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혜화1117 펴냄) 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과 아일란드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일본과 한국에서 대학교수로 활동하다가 뜻하는 바 있어 독립학자(independent scholar)가 되었다. 지금은 미국에 거점을 두고 정기적으로 한국과 그 밖의 여러 나라를 오가며 책을 쓰고 사진전을 열고 있다.

한국에서 로버트 파우저라는 이름은 주로 서울 사대문 안의 개량한옥 밀집 지역 '서촌'의 모습을 보존하자는 운동을 이른 시기부터 벌인 사람으로서 기억될 것 같다. 이 운동에 대해서는 그가 2016년에 펴낸 <서촌 홀릭 - 되새길수록 좋은 서울의 한옥마을 이야기>(살림 펴냄)에 자세히 담겨 있다. 얼마 전 서울에 온 그에게 서촌 개량한옥 보존 운동 당시의 상황에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오늘날 서촌이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고 이 정도라도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데 대해, 저는 막걸리 한 잔 얻어 마실 자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촌 개량한옥촌의 역사와 그의 '투쟁'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20세기 전기에 형성된 서울 사대문 안 개량한옥촌과 연관되어 한국에서 기억되어 온 그가,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두 권의 한국어 책을 펴냈다. 2018년의 <외국어 전파담 - 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혜화1117 펴냄), 그리고 얼마 전 나온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 각국 도시 생활자, 도시의 이면을 관찰하다>다. 앞의 책은 그가 평생 연구한 '외국어 학습'에 대한 이야기고, 이번 책은 그가 평생 살고 드나든 미국·일본·영국·아일란드·한국의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다. 즉, 이제까지 자신이 연구한 것과 살아온 곳을 이 2년 사이에 이 두 권의 한국어 책을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모두 털어낸 것이다.


▲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 각국 도시 생활자, 도시의 이면을 관찰하다>(로버트 파우저 지음, 혜화1117 펴냄). ⓒ혜화1117
특히 이번에 나온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를 읽으면서 확인한 것은, 그가 근대 이후 미국인 아시아학자의 제3세대라고 할 수 있을 궤적을 거쳤다는 사실이었다.

근대 이후 영국인 아시아학자, 특히 일본학 연구자의 제1세대는 메이지 유신을 전후해서 외교관으로서 일본에 온 윌리엄 애스턴이나 메이지 정부의 초청으로 와서 일본인들을 가르친 어니스트 사토, 바실 챔벌레인, 라프카디오 헌과 같은 인물들이었다. 제2세대는 20세기 초에 태어나 중국과 일본, 나아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를 연구하고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맞서 싸운 존 페어뱅크나 에드윈 라이샤워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로버트 파우저 선생은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여 일본을 점령한 미군이 사용할 건물·시설을 설계하던 아버지가 교토에서 보낸 사진과 스케치를 보며 머나먼 이국에 눈떴고, 고등학교 때는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도쿄의 일본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중에 어느 덧 일본연구자가 되었다. 그러한 그가 일본의 수도이자 세계적인 메갈로폴리스 도쿄에 대해 말한 대목을 들어보자.

"도쿄는 중심이면서 늘 변방이었다. 에도 시대의 수도로서 일본 권력의 정중앙을 차지했으나 일본 역사의 중심인 천왕과 귀족 문화의 수도는 언제나 교토였다. (중략) 메이지 유신 이후 도쿄는 명실상부 아시아의 선두 주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도쿄의 시선은 런던과 파리에 가 있었고, 이들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도시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중략)
하지만 언제나 서양의 도시를 바라보고 있는 한 도쿄는 역시 또 서양 문명의 변방일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거품 경제가 가라앉고 디지털 혁명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점차 중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도쿄는 다시 예전의 지위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2011년 이후부터는 얼핏 포기한 것처럼도 보인다.
언제나 변방의 자리에서 중심을 향해 시선을 두고 그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도쿄는 중심에서 맞이한 새로운 문제의 해답을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73~75쪽)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호황세를 누리고 있기는 하지만, 청년층과 노년층은 저임금과 충분치 않은 노후연금으로 불안한 미래를 맞이하고 있는 일본의 경제 상황. 숱한 스캔들을 잇따라 일으킨 아베 신조 총리 세력의 대안을 여권에서든 야권에서든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일본 정치권의 무력함.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군사·경제적으로 일본을 능가하고, 대한민국의 경제·외교력이 일본에 육박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본 시민사회의 과거지향적 세계관. 그가 지적하는 도쿄의 폐색감은, 비단 도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전체가 보여주는 무기력함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그가 21세기 초 대한민국 시민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 역시 납득할 만하다. 20세기에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의 남쪽에 탄생한 대한민국과, 16~20세기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섬의 남쪽에 탄생한 아일랜드 공화국을 비교하면서 “피식민지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도 흔히 하던 바였다. 하지만 로버트 파우저 선생이 두 나라를 비교하는 관점은 이런 류와는 조금 다르고, 또 시의적절하다.

"민족을 강조하면서 독립을 요구하고 외세로 인한 분단 상황을 통일로 극복하겠다는 양국의 태도는 1990년대 말부터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한국은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결같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며 분단의 극복만이 '민족의 염원'이다.
아일랜드는 달랐다. 유럽연합의 등장 이후 약 25년여가 흐른 뒤 어느새 과거의 지배자인 영국보다 훨씬 부유해진 아일랜드는 오랜 세월 남아있던 영국에 대한 감정의 앙금을 털어버린 듯했다. 스스로 잘 사는 복지국가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충만해졌고, 북아일랜드와의 통일은 관심사 밖으로 밀려났다."(160쪽)

유럽연합 덕분에 식민지 모국인 영국보다 더 잘살게 된 아일랜드 공화국의 시민들이 더 이상 북아일랜드와의 통일에 열정적이지 않게 되었다는 지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과의 통일에 무관심한 대한민국 즉 남한의 청년층과, 이들 청년층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박하기만 하는 남한 기성세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설명해줄 수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축에 속하던 시절에 태어나서 성장한 세대와, 한국이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군사·경제력을 지닌 나라인 시기에 태어나서 성장한 세대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 공화국이 경제적으로 영국을 능가한 것과는 달리, 한국은 아직 일본의 경제력을 능가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두 나라의 경제력이 근접해지는 시점에서,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은 일본에 대한 너그러움 내지는 무관심으로 바뀔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이뿐이 아니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작은 도시 프로비던스가 최근 십 여 년 사이에 경험한 도시 재생의 실패 사례는, 바로 지금 한국 곳곳의 도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도시 재생 사업의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로버트 파우저 선생에 따르면, 1990년대까지 물리적인 도시 재생을 성공시킨 프로비던스는, IT·미디어·디자인·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이른바 '창조 계급'을 도시 안으로 유입시키는 정책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장기 불황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프로비던스가 미래의 희망으로 떠받들던 이들 창조 계급은 프로비던스를 버리고 이웃한 더 큰 도시 보스턴으로 떠나버렸으며, 프로비던스는 변방의 도시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시민 모두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눈에 띄는 몇몇 사람들에만 의존해서 도시를 재생하려던 프로비던스의 모습을, 현재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 중인 한국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 아닐 것 같다.

▲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도시 프로비던스. ⓒ혜화1117

이처럼 납득할 수 있는 대목이 거의 전부인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에서 딱 한 군데,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서울에서 강북 특히 사대문 안에 가장 강한 애정을 드러내는 한편, 강남은 "여전히 서울이 아닌 '뉴서울'"이고, "서울대 인근은 경기도의 공장 지대와 강남의 경계라는 애매모호한 지역으로 어떤 특징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구절이다(102쪽).

다른 분이 쓰신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서평하는 본인의 책을 언급하는 것은 참으로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많은 한국 시민과 외국인들이 서울이라는 메갈로폴리스의 핵심을 강북 사대문 안에서 찾고, 그 바깥의 서울 특히 한강 이남 지역의 서울시 구역과 수도권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데에 반대하여 지난해에 <서울선언>이라는 책을 냈다.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본질이 강북 특히 사대문 안에 있다는 주장이, 사대문 안을 제외한 서울시와 수도권 동서남북에서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넓은 의미의 서울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온 나와 수 많은 사대문 밖 시민들에 대한 부정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사대문 안을 서울의 행정·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 만드는데 방해가 된다고 간주된 것들은 사대문 바깥으로 밀려났고, 서울시를 한국의 행정·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 만드는데 방해가 된다고 간주된 것들은 서울시 경계 바깥으로 밀려났다. 나는 이렇게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시설들이야말로 서울의 가장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가장 서울적인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며 서울과 수도권의 경계를 걷고 책을 썼다.

이 한 대목을 제외한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의 나머지 모든 부분에는 동의할 수 있고 배울 점이 많았다. 또한 1980년대부터 그가 직접 찍어 온 서울·대전·전주·대구의 모습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한국의 도시들에 대한 그리움을 주었다. 특히 아직 1993년 엑스포를 치르지 않았고 신도시도 들어서지 않은 1988년에 대전 삼익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대전 시내의 모습은, 바로 오늘도 서울시와 수도권의 경계에서 만나게 되는 광경을 나에게 떠올리게 했다.

"특별한 랜드마크는 찾아보기" 어려운 대전은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인상적"이었다는 그의 회고. 나는 바로 그러한 "평범함 때문에 인상적"인 도시를 만날 수 있는 영등포를 걷고, 부평을 걷고 있다. 그와 나는 도시에 대해 어떤 부분에서는 완전히 같은 의견을 갖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만날 수 없는 간극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를 읽으면서 감탄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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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문헌학자, 전쟁사 연구자, 서울답사가. 작게는 시군구(市郡區)에서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집단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직업적으로 책·논문·기사를 읽는 중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는 좋은 글을 발견할 때마다 서평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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