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시 빈민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계보

[김시덕의 직업적 책읽기] 빈민 속의 기록가 최인기 선생의 작품들

서울 중구 충무로의 갤러리 브레송에서 개최된 최인기 선생의 사진전 <청계천 사람들>이 지난 6월 20일에 끝났다. 이명박 서울 시장 때의 청계천 복원 사업, 오세훈 시장 때의 동대문 운동장 철거와 DDP 건설, 그리고 박원순 시장 시정 하에 지금 현재 을지로 3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 사업. 빈민운동가인 최인기 선생은 이 세 번의 청계천변 개발 사업에서 철거 대상이 된 도시 빈민의 생활과 그들이 철거에 저항하는 싸움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런 사진 작업을 한 사람은 여태까지 많았다. 그런데 최인기 선생의 작업은 이제껏 카메라를 든 많은 사람이 도시 빈민을 찍어온 그것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고, 현대 한국에서 가늘지만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어떤 작업의 계보를 잇고 있으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의 도시 빈민을 찾아가서 그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긴 사람은 많다. 그런데 이들은 대개 도시 빈민이 아닌 입장에서, 많은 경우에는 기자 같은 언론계 종사자로서 도시 빈민을 바깥에서 관찰했다. 이들이 만든 글과 사진이 전부 센세이션과 스펙터클을 노린 것은 물론 아니지만, 많은 경우 이들은 1980년대 사당동과 상계동, 2000년대 용산, 2010년대 아현동과 장위동에서처럼 주목할 만한 사건이 터진 뒤에야 비로소 도시 빈민에 주목했고, 도시 빈민의 외부에 존재하는 관찰자로서 사진을 찍었다.

물론 이들의 사진은 사태의 어떤 부분을 잘 드러냈고, 한국 사회의 여론을 만들어내는데 크고 작은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이들의 사진은 어디까지나 도시 빈민에게 잠시 들러서 촬영한 외부인의 것이었다.

사회학 연구자 조은 선생과 같이 사당동의 대규모 도시 빈민촌이던 이수단지의 주민을 20여년에 걸쳐 추적한 사례도 있지만, 조은 선생과 조력자들은 어디까지나 학술적 입장을 견지한다는 차원에서 빈민 운동의 내부로 뛰어드는 것을 자제해왔음을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조은 선생은 "사당동은 또 하나의 광주"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처참한 철거가 진행되던 당시, 바로 이틀 전 철거 측과 싸웠던 사당동 주민과의 인터뷰 녹음물 말미에서 "저는 무서워서 못 왔어요. 차마 무서워서 못 오겠더라고요"라는 자기 자신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찾아냈음을 고백한다(<사당동 더하기 25> 63쪽).

최인기 선생의 사진은 이것과 다르다. 그는 도시 빈민과 계속 함께 움직여 왔다. 사진을 찍히는 당사자가 최인기 선생을 대하는 느낌이 여타 관찰자에 대한 것과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친밀함·동지의식은 도시 빈민의 일상생활을 찍은 그의 사진에서도 느껴지지만, 재개발·재건축 철거나 노점상 철거에 반대하는 시위 현장을 찍은 사진에서 특히 분명하다. 그는 사태의 바깥에서 도시 빈민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빈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태의 내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그의 사진이 신문기자의 사진들처럼 센세이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이 찍힌 상황을 가만히 상상하면 나는 이 사진에 찍힌 사건이 사건 당사자들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었는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물론 여태까지 도시 빈민 운동을 한 많은 분들이 이런 사진을 찍어 오셨다. 그렇다면 최인기 선생의 사진과 글은 어떤 점에서 여타 도시 빈민 운동가의 그것과 다른가.

최인기 선생은 현대 한국에서 도시 빈민 집단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생존 투쟁을 해온 궤적을 자각적으로 정리함으로써 도시 빈민 외부의 이른바 '일반 시민'이 사태의 본질을 잘 깨닫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일찍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이끌었던 정동익 선생은 <도시 빈민 연구>(아침)라는 책을 써서 도시 빈민 문제를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렸다. 전두환 정권 시기인 1985년에 나온 이 책은 당시의 엄혹한 상황에서도 꾸준히 널리 읽혀서, 내가 1990년대에 구한 것은 1989년 4쇄본이었다. 이후로도 이런 유의 책은 많은 수는 아니지만 꾸준히 세상에 나타났고, 해당 계보의 가장 최근에 자리하는 것이 최인기 선생의 <가난의 시대 - 대한민국 도시빈민은 어떻게 살았는가>(동녘, 2012)이다. 2019년 현재, 도시 빈민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가장 정확하고 평이하게 이 문제를 다뤘다.

<가난의 시대>가 도시 빈민 문제의 교과서 같은 책이라면, 그의 두 번째 책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 무엇이 그들을 도시의 유령으로 만드는가?>(동녘, 2014)는 2010년대 초에 '서울의' 도시 빈민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를 글과 함께 풍부한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이때부터 사진은 최인기 선생의 중요한 기록 도구가 되는데, 그가 사용한 카메라는 일찍이 1973~76년에 청계천의 도시 빈민을 사진으로 남긴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의 도움으로 입수한 것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 청계천 도시 빈민을 찍은 노무라 선생도, 1980년대 사당동 도시 빈민을 찍은 조은 선생 팀도 현대 한국의 어둡고 추한 모습을 찍어서 북한을 이롭게 할 거냐는 비난을 숱하게 받았다. 이렇게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오해만 받는 작업을 묵묵히, 꾸준히 해온 분들 덕분에 나는 현대 한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이 성장했고, 그 성장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바깥으로 밀려나고 죽어갔는지 알 수 있다. 이 계보의 끝에 최인기 선생이 있다. 특히 노무라 선생과 최인기 선생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서,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최인기 선생은 노무라 선생의 의발을 전수받았다고도 하겠다. 최인기 선생의 최근 책이자 사진전의 제목이기도 했던 <청계천 사람들>(리슨투더시티, 2018)은 그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최인기 선생은 책과 사진 작업을 통해, 도시 빈민의 내부에서 외부의 이른바 '일반 시민'을 향해 "지금 여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그리고 꾸준히 전하고 있다. 실제로 최인기 선생은 빈민 운동을 하는 쪽과 외부 시민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2019년 현재 가장 자각적으로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중간 저자', 즉 학계와 일반 독서인 사이를 이어주는 연구자이자 저술가에 해당하는 사람을 도시 빈민 운동에서 찾자면 최인기 선생이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서, 나는 언제나 그의 글과 사진 작업으로부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마지막으로, 이 서평의 제목에는 <서울 도시 빈민>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나는 도시 빈민 문제의 문외한이지만, 서울의 도시 빈민 문제에는 여타 도시의 빈민 문제와는 조금 다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다. "내 마을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바람은 많은 현대 한국 시민이 품고 있는데, 도시 빈민 투쟁에서도 이런 주장을 많이 접한다. 하지만 '내 마을' 가운데에서도 서울은 조금 특수하다. 현대 한국사 내내 이어진 이촌향도 현상에서 서울은 대체로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목적지로서 기능해왔다. 따라서 현재 서울시 내에서 사는 사람을 밀어내야 자신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서울시 내의 빈민촌을 밀어내고 세워진 고층아파트 단지에 서울시 외부의 중간 계급 시민이 입주하는 현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즉 서울 도시 빈민 문제는 계급 갈등임과 동시에 지역 갈등의 정점에 놓여 있기도 하다.

<청계천 사람들> 사진전을 찾아가 최인기 선생과 이야기하던 중, 앞으로는 서울시 바깥 상황작업을 더 많이 하려 한다는 그의 말을 들었다. 현대 한국 도시 빈민 문제를 해결하려 해왔고 기록해온 분들의 계보에서 가장 최근의 자리에 서 있는 최인기 선생이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작업을 계속해주시기를, 또 한국 사회를 향해 발신해주시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 최인기 선생의 책들. <떠나지 못 하는 사람들>(동녘), <가난의 시대>(동녘), <청계천 사람들, 삶과 투쟁의 공간으로서의 청계천>(리슨투더시티)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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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문헌학자, 전쟁사 연구자, 서울답사가. 작게는 시군구(市郡區)에서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집단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직업적으로 책·논문·기사를 읽는 중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는 좋은 글을 발견할 때마다 서평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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