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중심 자금성의 필부필부

[최재천의 책갈피] <자금성의 보통 사람들>

"조선국 여인 김흑(金黑) 등 53명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김흑 등은 선덕 초년에 와서 오랫동안 경사에 머물렀다. 황상께서 향토와 부모를 그리워하는 그들의 마음을 가엾이 여겨 특별히 환관을 보내 송환토록 했다. 또한 조선 국왕에게 그들이 갈 곳이 없어 헤매지 않도록 잘 돌봐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라고 분부했다." (<명영종실록(明英宗實錄)> 선덕(宣德) 10년(1435, 조선 세종 17년) 3월 초하루 기사)

1435년 정월, 명나라 선종이 붕어하고 영종이 즉위했다. 예법에 따라 이듬해에 연호를 바꿨다. 불과 아홉 살에 즉위한 어린 황제 영종이 발포한 훈령 중 일부다. 황제는 명나라 궁궐에 머물던 조선 여성을 돌려보내면서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평안히 살 수 있도록 환관을 파견했다는 것이다. 그랬다. 일제 강점기 때뿐만이 아니다. 원나라 때도 그랬고, 명나라 때도 그랬고, 청나라 때도 그랬다. 나라가 시민을, 왕이 백성을 제대로 돌보거나 지키지 못하면 늘 그 피해자는 여성이요, 어린 아이였다.

우리나라에 궁중 비사가 있듯, 중국에도 구중궁궐 비사가 있다. 중국 자금성의 미시사다. 그중에서도 "환관내시·궁녀·장인·만주팔기·도적·거지·여장남자" 등 <자금성의 보통 사람들>의 낯선 이야기다.

청나라 때 궁중의 '태감'이란 자리는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종직이었다. 대부분 빈천한 집안 출신으로 먹고살기 위해 들어왔다. 갇혀 살다 보면 얼마나 어머니가 그리웠을까. 가경 22년(1817년) 태감 왕폭수(王幅受)가 어머니에게 몰래 편지를 보냈다. 결국, 서신 왕래는 발각되었다. 사건을 조사해보니 어머니가 아들을 그리워한 나머지 서신을 보낸 데서 시작되었다. 외부인이 궁에 서신을 보내는 일 또한 금지되었기에 태감과 그의 어머니 모두 처벌을 받았다. 명·청 시대에 조선과의 교류가 가장 빈번했기에 여기저기 우리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상당 부분이 조선 출신 여성들에 대한 기록이다. 물론 다른 이야기도 있다.

조선의 연행사들은 중국에 가면 각종 도서를 구매했다. 때로는 관방에서 국외로 반출을 금지한 도서를 찾는 경우도 있었다. 반출 금지 도서나 서화의 경우 노복에게 개인적으로 구매하도록 시켰다.

사절단을 수행하는 자제나 군관이 개인적으로 청조의 궁인에게 "궁중의 문서나 부책(簿冊)을 몰래 구입하여 초록하거나 심지어 몰래 조선으로 반입하여 청조의 국정을 살피는 데 쓰기도 했다." 외교관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 <자금성의 보통 사람들>(왕이차오 지음, 유소영 옮김)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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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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