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그리고 책

[최재천의 책갈피] <칼과 책>

어느 날 왕양명(王陽明)이 제자들과 함께 봄나들이를 갔다. 절벽에 만개한 진달래꽃이 눈에 들어왔다.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평소 '마음 밖에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저 진달래꽃은 산중에서 저 홀로 피고 지지 않습니까? 저 꽃이 우리 마음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왕양명이 답했다.

"자네가 미처 저 꽃을 보기 전에, 꽃과 자네 마음은 각각 일종의 '고요(寂)' 상태에 놓여 있었지. 하지만 자네가 저 꽃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서 꽃빛이 선명해지지 않았는가? 그러니 저 꽃은 자네의 마음 밖에 존재한 게 아니라네."

양명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왕양명은 그저 철학자가 아니다. '기이하고도 특출한' 왕양명은 탁월한 군사 전략가이자 위대한 사상가, 교육자이자 시인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그에게 내린 평가는 거의 최상급이다. '진실로 세 가지 불후를 갖춘 인물(眞三不朽)'이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진삼불후'란 '가장 뛰어난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고, 그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이며, 그다음은 말을 세우는 것인데, 세월이 오래도 폐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세 가지 썩지 않는 것'(太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再次有立言, 雖久不廢, 此之謂三不朽)을 말한다.

왕양명은 57년의 생애를 통해 진정으로 '삼불후'를 구현했기에 고금을 통틀어 가장 완벽한 인물'로 칭찬받았다. 우리야 주자학의 전통 속에서 양명학이 비주류였지만, 증국번에서 마오쩌둥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중국의 정치 지도자나 사상가로서 양명학의 사상적 세례를 받지 않은 이는 거의 없다. 일본에서 양명학은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기반이 됐고, 오늘에도 왕양명의 실천 철학을 정신적 지주로 추앙하는 정계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일본 보수주의의 뿌리로 양명학을 드는 이도 있다.

<왕양명 평전>은 저장대 철학과 교수 둥핑(董平)이 중국 CCTV <백가강단(百家講壇)>에서 강연한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이다. TV 방송의 교양 강좌를 전제로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양명학자로서 왕양명의 사상 체계를 논리적으로 서술했다기보다는, 군사 전략가·지방 행정관·문인으로서 왕양명의 평생 사적을 한 편의 드라마나 소설처럼 엮어냈다. 그래서 책은 고대 사상가의 평전이되, 흥미와 교양, 거기에 사상 체계의 논리성까지 아울러 대중의 눈높이를 맞췄다. (역자 이준식)

몇 년 전 왕양명이 도를 깨쳤던 용강서원을 찾았다. 그때 서원의 돌조각을 기념으로 건네받았다. 귀한 유산이 됐다.

▲ <칼과 책>(둥핑 지음, 이준식 옮김)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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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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