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아동 성폭행 법정 증언, '2차 피해' 간과한 요구"

민변 아동위 "10세 아동이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판결"

10세 아동이 채팅앱을 통해 만난 30대 남성에게 성폭행 당했으나 미성년자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결에 대한 비판이 계속 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위원장 소라미)는 27일 논평을 내고 "강간죄 성립에 필요한 폭행·협박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피해자의 연령이 10세인 점 등 피해아동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형식적이고 일률적으로 판단한 법원의 판결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민변은 "피해아동의 연령이 10세인 점, 피해 당시 시각이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이었던 점, 피해 장소가 피해자의 소재지로부터 시 경계를 넘어 이동한 피고인의 집이었던 점, 피해 당시 피고인의 권유로 피해자가 술을 마셔 취한 상태였던 점, 피고인이 피해자의 손을 잡아 누른 상황에서 성폭행이 일어난 점 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 피해자는 피고인의 성폭행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저항하기 현저히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며 지난 13일 있었던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의 판결에 대해 "위법·부당하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또 재판부의 감형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증거가 부족해 피해자에게 법정 증언을 요구했으나 피해자가 이를 거부한 사실을 든 것에 대해 비판했다. 민변은 "이 사건의 피해자인 10세 아동이 법정에 출두하여 1년도 더 지난 범죄피해사실을 떠올려 다시 진술하는 것은 아동 성폭력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2차 피해를 야기하는 행위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도 피해자의 불출석을 감형의 근거로 삼은 법원의 판단은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아동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선언하고 있는 아동최상의 이익의 원칙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강간죄의 구성 요소로 '폭행·협박'이 아닌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한 것, 또 미성년자의제강간사건 중에서도 최소 형량에 비해 불과 6월 많은 징역 3년을 선고한 사실은 모두 "일반인의 법 감정을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본 판결 어디에서도 범행 피해 당시 및 사법절차 내에서 피해자 아동이 처했던 맥락적 상황을 고려하는 감수성을 찾아볼 수 없다"며 대법원에서 이같은 문제점이 바로잡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민변 아동위 논평 전문이다.

[논 평]

10세 아동 성폭력 사건 판결에 대한 논평
서울고등법원 2019. 6. 13. 선고 2018노3172 판결–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는 지난 6월 13일 10세 아동을 강간하였다는 이유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피고인이 피해자를 폭행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성년자의제강간만을 인정하여 징역3년을 선고하였다. 우리 모임은 강간죄 성립에 필요한 폭행·협박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피해자의 연령이 10세인 점 등 피해아동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형식적이고 일률적으로 판단한 본 법원의 판결에 유감을 표한다.

위 판결이 선고된 후 해당 재판부를 파면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되는 등 사회적 논란이 일자 법원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자료의 요지는 공소사실에 대한 직접적 증거는 영상녹화물에 포함된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데, 피해자의 진술 내용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몸을 누르게 된 경위, 피고인이 누른 피해자의 신체 부위, 피고인이 행사한 유형력의 정도, 피해자가 피고인의 행위로 느낌 감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어 피고인이 피해자의 몸을 누른 행위가 피해자가 반항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피해아동의 연령이 10세인 점, 피해 당시 시각이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이었던 점, 피해 장소가 피해자의 소재지로부터 시 경계를 넘어 이동한 피고인의 집이었던 점, 피해 당시 피고인의 권유로 피해자가 술을 마셔 취한 상태였던 점, 피고인이 피해자의 손을 잡아 누른 상황에서 성폭행이 일어난 점 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 피해자는 피고인의 성폭행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저항하기 현저히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강간죄를 구성하는 폭행 요건을 형식적으로 좁게 해석하여 강간죄의 성립을 부정했다. 이와 같은 항소심 판단은 아동 피해자에 대한 인권감수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아동' 성폭행 피해자가 처한 취약성을 간과한 것으로서 강간죄에 대한 기존 대법원 판시 취지에 반하여 위법·부당하다.

우리 대법원은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여부는 그 폭행·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피해자가 성교 당시 처하였던 구체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사후적으로 보아 피해자가 성교 이전에 범행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사력을 다하여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도3071판결). 동 대법원 판결 이후 성폭력 사건에서 법원은 피해자의 저항이 제압되는 상황을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종합적·맥락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왔다. 그러나 본 판결은 이러한 대법원 판결 취지에 반하여 피해자의 취약한 상황을 간과한 채 강간죄의 폭행·협박을 판단함으로써 원심과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한편 항소심 재판부는 폭행·협박의 입증이 충분치 못하다고 본 주요한 근거로서 피해자를 증인으로 소환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은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성폭력처벌법」 제30조는 수사단계에서 피해자의 진술 내용을 영상물로 녹화하고, 피해자 조사과정에서 동석했던 신뢰관계자의 진정성립만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특례를 두고 있다. 그 취지는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취약성을 고려하여 피해자가 다시 법정에 나와 진술을 되풀이 하는 것을 지양하고, 피해자 보호에 충실하고자 함에 있다. 이러한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법원은 성폭력 피해자가 아동일 경우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한 법정에 피해자를 함부로 소환해서는 안 되며, 피해자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범죄 사실의 입증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같은 사실관계에 대하여 원심판결은 피해자의 진술 외에도 다양한 정황을 고려하여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던 만큼, 피해자가 다시 법정에 출두하여 구체적으로 진술했어야만 강간죄의 폭행협박이 인정될 수 있었다는 법원의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 사건의 피해자인 10세 아동이 법정에 출두하여 1년도 더 지난 범죄피해사실을 떠올려 다시 진술하는 것은 아동 성폭력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2차 피해를 야기하는 행위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도 피해자의 불출석을 감형의 근거로 삼은 법원의 판단은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아동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선언하고 있는 아동최상의 이익의 원칙에도 반한다.

나아가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무죄 선고를 해야 하나 형사소송법의 이념인 정의와 형평을 고려하여 축소사실인 미성년자의제강간을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13세 미만의 사람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은 강간 등으로 처벌한다는 「성폭력처벌법」 제7조 제5항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피해자에 대한 "폭행"을 직접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상대적으로 경미한 유형력과 상황이 고려되는 "위력"에 대한 검토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를 간과하고 피고인조차 성행위 당시 피해자가 피고인을 밀어내거나 옷을 벗기는 것을 거부하는 등의 행동을 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성년자의제강간을 인정한 것은 피해자가 사실상 성관계에 "동의"하였다고 재판부가 선언한 셈이다. 정의와 형평이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더욱 큰 상처가 되는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

설사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양형기준의 하한에서 단 6월이 많은 3년을 선고한 것은 가해자에 지극히 관대한 결정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도 하지 않았다는 점, 채팅앱을 통하여 가출한 아동을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여 간음했다는 점에서 비난요소가 높은 계획된 범행이라는 점, 피해자에게 술을 먹였다는 점에서 심신장애 야기라는 양형가중요소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은 형량은 일반인의 법 감정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근본적으로 본 판결 어디에서도 범행 피해 당시 및 사법절차 내에서 피해자 아동이 처했던 맥락적 상황을 고려하는 감수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에게 법원의 판결은 성인 피해자보다 장기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아동 피해자의 경우 범행 상황에 대한 기억의 왜곡이나 이해 수준의 부족, 진술 내용의 모호함 등으로 인해, 일반적인 형사사건의 "증거"로서의 피해자의 역할을 온전히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에 사법절차 내에서 아동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아동 중심적 관점에서 아동이 처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아동친화적인 절차를 마련하여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도록 하여야 한다. 아동에 대한 이해가 깊은 재판부를 통하여 절차의 진행과 사안의 판단이 이루어졌어야 함에도 이 판결에서 이러한 고민이 없었다는 점에서 우리 모임은 거듭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 모임은 이 판결이 다른 아동 성폭력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 미칠 악영향을 깊이 우려한다. 이 판결과 같은 태도가 사법부 내에 자리 잡는다면 아동 피해자의 취약한 지위를 악용하여 피의자나 피고인이 합의에 의한 간음 등을 주장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신중한 고려 없이 피해자를 법정으로 소환하거나, 피해자가 법원에서 진술하지 않을 경우 폭행·협박과 위계, 위력 등의 범죄 요건 판단을 게을리 하는 등 실무상 문제점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위 판결은 피고인과 검찰 측 모두가 상고하여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항소심 판결 논란을 계기로 법원의 아동에 대한 이해 등 전반적인 감수성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이 제기되는 지금이야 말로 아동의 특수성과 아동이 처한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토대로 한 사법절차 내에서의 아동 이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적기라 할 것이다. 이에 대법원이 위 판결에 대한 답변으로 책임감 있게 논의의 첫 장을 열어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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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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