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여아 성폭행범 감형' 논란에 재판부 '황당' 해명

"10세 아동의 '양손을 눌렀다'는 진술만으로는 강간죄 성립 안 돼"

10세 아동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남성이 2심에서 감형을 받은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쇄도하자 법원이 이례적으로 판결에 대한 해명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이 오히려 재판부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인식 부족을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9부(한규현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선고된 이모(35) 씨의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강간) 사건 판결에 대해 17일 판결 이유를 설명하는 자료를 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모 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씨는 지난해 4월 평소 이용하던 채팅앱으로 알게 된 A양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소주 2잔을 먹이고 양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이 씨가 폭행·협박으로 A양을 억압했다고 판단해 징역 8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A양을 폭행·협박했다는 증거가 피해자 진술밖에 없다는 이유로 미성년자 의제강간죄만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 "무죄 선고해야 하지만 정의에 반해 미성년자의제강간 유죄 선고"

재판부는 해명 자료에서 이 같은 판단의 근거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한 진술만으로는 피고인의 폭행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했다며 감형 취지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손으로 피해자의 양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는' 방법으로 폭행을 했다는 것"이라며 "공소사실에 관한 직접 증거는 영상녹화물에 포함된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데 영상녹화물만으로 피해자가 반항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경찰 진술 증거가 부족해 검사에게 권유해 피해자를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출석하기 힘들다는 의사를 피해자 변호사가 전해 증인 신문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형사소송법은 '원 진술자가 사망 등에 준해 진술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데 1심은 이런 점을 간과해 피해자 어머니 진술을 유죄 근거로 삼았다"고 1심 판결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으면 공소장 변경 신청이 없는 한 무죄를 선고해야 하지만, 형사소송 목적에 비춰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것이라 판단해 미성년자의제강간을 유죄 판결했다"면서 "일부 보도처럼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진술만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강간죄는 무죄이지만, 가해자인 이 씨가 "키가 160㎝에 이르는 A양이 만 13세 미만인 줄 몰랐고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미성년자의제강간을 유죄로 판결했다는 의미다. 미성년자의제강간죄는 폭행과 협박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13세 미만 아동과 간음했을 때 처벌할 수 있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 판결에 여성변호사회는 "아동을 가르치는 보습학원 원장이 평소 사용하던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10세 아동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소주 2잔을 먹인 뒤 피해아동을 강간했는데, 이 같은 자에게 법정형의 범위 중 가장 낮은 3년형을 선고하였다는 것은 일반인의 건전한 상식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또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이 같은 판결을 비판하며 해당 판사를 파면하라는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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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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