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포용국가' 아동 정책으로 아동권리보장원 출범 자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아동권리보장원이 중앙입양원의 업무를 승계함에 따라 중앙입양원이 해산되는 과정에서 아동이 아닌 '성인' 입양인들의 권리 보호와 관련된 업무가 축소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앙입양원은 지난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을 통해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고 가족찾기 등 입양 사후 관리를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당시 입양특례법 개정은 성인이 되어 귀환한 입양인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결과였다. 이런 이유로 입양인들에게 중앙입양원은 입양인 당사자 운동의 '성과'로 여겨진다. 한국은 지난 67년 동안 20만여 명의 아동을 해외입양 보낸 국가이면서도 입양 사후 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앙입양원이 아동권리보장원으로 통합될 경우, 담당 업무와 인원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그 의미와 역사성은 사라지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20만 명의 해외입양인들은 어디로..."
오명석(존 컴프턴) 중앙입양원 이사는 중앙입양원에 대해 "해외입양인들은 중앙입양원이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법정기관 중 유일하게 기관명에 '입양(adoption)'이 있어서 그나마 많은 해외입양인들은 '한국 정부가 우리를 버리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을 들게 했던 기관이었다"고 말했다. 중앙입양원은 입양인들의 목소리를 정책과 서비스에 반영하기 위해 귀환한 해외입양인 1명을 비상임 이사로 임명해왔다.
오 이사는 "현재도 상당수의 입양인들이 가족찾기 서비스를 중앙입양원에서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기관이 없어지고 기관명이 바뀌면 전 세계에 있는 20만 명의 해외입양인들은 부모찾기 등 사후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조직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해외입양인을 위한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의 숫자도 줄어들 것이 우려된다"며 "현재 중앙입양원 이사회에 배정된 해외입양인 출신 이사 자리도 아동권리보장원이 설립될 경우 없어질 수 있다"고 문제제기 했다.
그는 "해외입양인들은 과연 현 정부가 입양인의 권리와 인권을 존중하는지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현재 진행되는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 오히려 중앙입양원이 설립됐던 이명박 정부 때보다도 퇴보하고 있는거 아니냐는 자조도 나온다"고 말했다.
복지부와 중앙입양원 "관련 인원, 예산, 업무, 큰 변화 없다"
이런 입양인들의 우려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중앙입양원 측은 담당 인원, 업무, 배정된 예산 등의 축소는 없다며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추진단 김지연 팀장은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중앙입양원의 인원과 예산이 그대로 흡수, 통합되는 것"이라며 "담당하는 기관이 더 커지면 일을 더 잘하게 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예산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예산은 기재부와 협의 단계이며 국회에서 확정되겠지만 현재 7개 기관의 예산을 합친 수준에서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중앙입양원의 해외입양인 몫의 이사 자리는 아동권리보장원으로 통합될 경우 없어질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김 팀장은 "공공기관의 이사는 전문성, 대표성 등을 감안해야 한다. 또 법적인 책임의 문제도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으로 통합되면 업무가 늘어나기 때문에 대변하는 단체들이 굉장히 많다. 현재 이사진 구성에 대해 검토 중에 있는데, 입양인이 이사진에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문제보다는 입양인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얼마나 잘 반영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사회가 아닌 다른 방식을 통해 입양인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앙입양원 홍석원 교육홍보팀장은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명칭이 바뀌는 것이지 중앙입양원에서 해오던 업무는 그대로 이관하게 된다"며 "조직이 통합되더라도 입양인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외동포재단 → 중앙입양원 → 아동권리보장원...성인 입양인은 천덕꾸러기?
성인 입양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후 서비스 정책은 과거 외교부의 재외동포국 사업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입양 문제에 대한 인식과 전문성이 부족한 외교부가 재외동포 사업의 일환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는 것 자체의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김대중 정부 들어 사실상 전무하던 해외 입양인들에 대한 정부 정책이 수립되면서 보건복지부로 이관됐고, 2012년 입양특례법에 가족찾기 등 성인 입양인 지원과 관련된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중앙입양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게 됐다.
이경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성인 입양인 관련 정책은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다룰 주요 업무인 위기 아동, 아동 학대, 보육원 등과는 전혀 이질적인 사업"이라면서 "애초에 외교부에서 담당하던 정책이 복지부로 와서 아동 정책의 일환으로 다뤄지는 과정이 마치 성인 입양인 관련 정책이 천덕꾸러기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아동의 입양절차를 규율하는 입양특례법의 입법 목적과는 다른 법익을 다루어야 하므로 별도의 특별법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60여년간 20만 명에 달하는 국제입양 송출국은 전세계적으로 한국 외에 유래를 찾아볼수 없으므로 이들이 정체성을 알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은 한국이 보여야할 최소한의 책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소라미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현재 중앙입양원에서 하고 있는 사업 중 위기 입양인 지원 사업은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했지만 정책적 필요에 의해 추진한 사업인데, 아동권리보장원으로 통합될 경우 이런 부분이 간과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소 교수는 "현재 남인순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입양특례법 전부 개정안과 국제 입양인 관련 법률 제정 논의에서 귀환한 입양인들 관련 지원 사업의 법적 근거를 명시하고 있는데 이런 관련 법안들의 통과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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