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입양인' 영광...한국은 성공 스토리만 듣고 싶어한다

[심층 취재-한국 해외입양 65년] '추방 입양인' 아담 크랩서 인터뷰 ②

<피부 색깔=꿀색>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한국 출신 벨기에 입양인 융 에넹이 만든 자전적 영화다. (융은 정(jung)을 벨기에식으로 읽은 것이다. 그의 한국 이름은 전정식이다.) 영화 제목인 '피부 색깔=꿀색'은 그의 입양서류에 적힌 표현이다. 융 감독은 그 말이 시적으로 느껴져 제목으로 썼다고 말한다. '꿀색'의 피부색을 가진 아이는 그 표현만큼 사랑스럽다. 하지만 이 아이가 자라 어른, 특히나 남자 어른이 되었을 때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그는 '우리'와 다른 이방인이며, 낯설고 이질적이기 때문에 공포스러운 존재다. 품을 내주기보다는 밖으로 내쫓고 싶다.

세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41세에 추방된 아담 크랩서(한국 이름 신성혁) 씨가 겪었던 일의 정서적 배경이다. '꿀색 아기'로 데려갈 때는 한없이 너그러웠지만, 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엔 냉정하기 그지없다.

아담은 미국에서 첫 번째, 두 번째 양부모에게 극심한 구타와 학대를 당했고, 결국 16살에 버림을 받아 노숙자가 됐다. 그는 양부모의 불찰로 시민권 취득 신청을 못한데다 영주권 재발급 신청도 하지 못해 '불법체류자'로 살아야 했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영주권을 받으려다 과거 범죄 경력이 드러나면서 추방 재판에 회부됐다. 아담이 시민권을 얻지 못한 것은 그의 어린 시절 다른 어른들의 잘못 때문이지만, 그 책임은 어른이 된 아담이 져야 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아담만이 겪는 게 아니다. 미국 해외입양인 중 3만5000여 명이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으며, 이들 중 1만9000여 명이 한국 출신 입양인이다.

(☞ 아담 첫번째 인터뷰 바로보기 : "나는 1억 원 짜리 '서류 고아'였다")

다음은 지난 10월 25일 있었던 아담 크랩서와의 인터뷰 후반부다. 영어로 진행된 이 인터뷰는 이경은 고려대학교 인권센터 연구교수, 제인 정 트렌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 대표와 함께 진행했다.

▲ 아담 크랩서 ⓒ프레시안(최형락)

계속된 양부모와 악연..."14년간 얼굴도 못 본 양부모가 신고"

첫 번째, 두 번째 양부모의 괴롭힘은 계속 됐다. 자신들이 학대한 아이가 자라 성인 남성이 되자 양부모들은 아담이 자신들에게 '복수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아담이 감옥에서 출소했다는 소식을 들은 첫 번째 양부모는 아담을 상대로 '접근 금지 명령'을 신청했다.

"나에 대한 5건의 신고가 있었다고 연락이 왔다. 그 중 4건이 첫 번째 양부모들이 했다. 내가 감옥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그들이 법원에 '접근 금지 명령'을 신청했다. 그들은 내가 총도 갖고 있다고 신고했다. 1999년 법원에서 불러서 '라이트 부부가 누구냐'고 묻길래 '나는 이 사람들을 14년 동안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다. 길에서 마주쳐도 몰라볼 거다'라고 답했다."

두 번째 양부모인 크랩서 부부는 아담에게 그의 입양 서류를 끝까지 건네주지 않으려 했다. 영주권 신청을 위해서는 출생증명서 등 입양 서류가 반드시 필요했다.

"나는 정말 심각했다. 내가 서류를 주지 않으면 집 앞에서 자살하겠다고 하자 겨우 서류를 내줬다. 그런데 내가 나중에 홀트에서 받은 서류와 크랩서 부부에게 받은 서류를 비교해보니 똑같았다. 그들은 나를 위해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양부모와 '악연'은 그의 추방 재판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아담은 생각한다.

"라이트 부부는 내가 9살 때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고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에 증언했다고 한다. 9살의 어린아이가 얼마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일 수 있었을까? 내가 특별히 기억할 만한 일은 없었다. 모르겠다. 그들이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 과거 범죄 경력이 드러난 아담은 국토안보부에 의해 추방 재판에 회부됐고, 2016년 2월 이민세관단속국(ICE) 구치소에 수감됐다.

"내 추방 재판 담당 변호사는 매우 승소율이 높은 변호사였다. 나보다 훨씬 중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추방 취소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나도 취소 신청이 받아들여질 줄 알았지만, 내겐 추방 결정이 내려졌다."

아담은 추방 재판에서 자신이 입양아 출신이기 때문에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으며, 과거 범죄 이력도 양부모의 학대와 연관된 것이라는 사실이 고려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검사는 그의 입양 서류와 관련해 고아가 아니면서 고아 비자를 입국한 것은 불법이라면서 "미국에 불법으로 입국했다"고 문제를 삼았다. 세 살 때 입국한 아담의 출생 기록이 잘못된 것은 그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 그를 돌보던 어른들의 잘못이다. 특히 고아가 아니었던 그가 '고아호적'으로 입국한 것을 '불법'으로 본다면, 한미간 국제입양 대다수가 이에 포함된다.

"시민권 문제와 관련해 내가 혼란스러운 것은 미국 정부, 한국 정부, 홀트 모두 현재의 모든 문제가 내 책임인 것처럼 여기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너는 그때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렇게 했어야 한다'는 식의 태도다. 나는 그때 3살 반이었다."

미 연방이민법원은 2016년 10월 24일 아담의 추방 취소 신청에 대해 최종 기각 결정을 내렸다. 아담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그해 11월 17일 이민세관단속국(ICE) 직원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을 떠날 때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것이었는데, 38년 만의 한국으로 귀환도 그가 원치 않은 것이었다.

"병원에서, 상점에서...매일 나는 바보 취급을 당한다"

추방은 사실상 '이중 처벌'이다. 아담은 과거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이미 처벌을 받았다.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추방'이라는 또 다른 처벌을 받아야 한다. 미국 사회는 '이민 사회'다. 영국 이민자들이 독립해 국가를 만들었고, 그 이후로도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지금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민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철저히 자신들이 원하는 이들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였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국 등 아시아 남성들은 가족 없는 '단신 이민'만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이민자들에 대한 추방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단호하다.

한국으로 추방될 때 아담은 한국말을 전혀 몰랐다. 38년간 미국 이외 다른 나라를 가 본적이 없었다. MBC 다큐멘터리를 통해 찾은 친어머니가 그와 한국을 연결하는 유일한 '고리'였다. '본국'이라고 하지만 평생을 미국에서 살아온 아담에게 한국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낯선 땅'이다.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가는 한국에서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한국 국적을 가진 성인 남성'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아담은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거나 살 이유가 없어 자살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떠밀려가서 자살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처럼 생겼는데 왜 한국말을 못하는지, 이런 일은 내가 병원에 갈 때, 상점에 갈 때, 운전 면허 시험을 볼 때, 매번 벌어지는 일이다. 쯧, 쯧, 쯧. 나는 한국말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왜 그런 소리를 내는지 모른다.

공항에서 한국말을 못하니까 내게 외국인 창구로 가라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한국여권을 갖고 있었다. 내가 미국 여권을 갖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안 됐겠지만, 미국 여권을 갖지 못한 건 내 잘못은 아니다. 쯧. 이게 내가 현재 처한 위치다. 나는 어떤 근거도 없이 바보가 되어 가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매일매일 황혼기다. 나는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저 앉아서 쳐다볼 수 있을 뿐이다."

"내 아이들로부터 강제 격리된 삶, 너무 끔찍하다"

아담은 미국에서 집수리, 차 정비도 해 봤고, 직접 이발소도 운영해봤지만 한국에서는 직업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 이사 갈 집을 구하는 것, 하다못해 고장 난 보일러를 고치는 것까지도 한국어라는 장벽이 가로놓인 그에겐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미국에 있는 아이들이다. 그는 베트남계 미국인 부인과 3명의 아이가 있다.


▲ CNN 보도에 게재된 딸을 안고 있는 아담 사진. CNN 화면 갈무리

"나는 추방 입양인들 중 유일하게 자녀가 있는 사람이다. 난 미국에 있는 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다. 이건 너무 끔찍한 일이다. MBC 다큐멘터리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태어난 가정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됐다. 그런데 이제 내가 만든 가족으로부터도 강제 격리됐다."

아담은 추방 재판 과정에서 "내 아이들만큼은 아버지 없이 자라지 않도록 무엇이든 할 테니 미국에 남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으로 추방된 뒤 그는 아이들을 딱 1번 만났다고 한다.

"아이들을 거의 2년 만에 만났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헤어진 막내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또 단지 며칠을 같이 보내는 것으로 그 아이가 나를 편안하게 느낄 수도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임이 있는데,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아담은 아이들 문제,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다른 영어권 국가로 이주도 고민해봤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에서 범죄를 이유로 추방당한 경우,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이주가 어렵다. 미국과 범죄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이들 국가가 입국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입양인 성공 스토리만 듣고 싶어한다"

아담이 또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는 한국 사회가 입양인에 대해 가지는 '고정된 시각'이다.

"한국 사람들은 내가 친어머니를 만났다는 이유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성인 남성이다. 한국에서 독립적인 삶을 꾸려야 한다. 어머니를 만났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국적 문제 등 당시 '아동'이었던 아담이 책임질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선 '그걸 왜 몰랐냐'고 다그치는 듯한 태도의 정부 부처와 입양기관이 입양인 지원 문제에서는 성인이 된 입양인을 여전히 '아동' 취급을 하고 있다고 아담은 말한다. 아담과 같이 성인이 되어 돌아온 입양인들의 문제는 세 살짜리 아이처럼 엄마를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담은 자신이 전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돌아와 부담스러운 마음도 크다.

아담을 포함한 추방 입양인(위기 입양인)에 대한 지원은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입양원에서 맡고 있다. 지난 2016년 '중앙입양원 및 입양단체 등 사후 관리 지원' 예산은 47억9100만 원이었다. 이중 상당 금액이 중앙입양원 직원들에 대한 인건비로 지출되고, 그 다음으로 국외 입양인들의 모국 방문 사업 등에 지출된다. 아담과 같은 위기 입양인 지원은 대상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후순위로 밀린다.

아담을 포함한 추방 입양인들을 보면, 한국 사회가 과연 이들의 한국 정착을 도울 수 있을까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한국에서 친생부모와의 결별, 양부모에 의한 학대, 성인이 된 뒤 경험한 추방이라는 극단적 처벌 등 이들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이들을 이해하고 치료하려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야만 하고, 미국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아동 학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 필요하다. 한국에서 이런 조건을 갖춘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를 찾을 수 있을까?

한국에 있는 추방 입양인들이 현재 어떻게 지내는지를 보면 이런 의문은 더 커진다. 2011년 한국으로 추방된 A씨는 현재 다른 입양인을 폭행한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정신병원과 감옥을 오가며 살았다. 또 다른 추방입양인 B씨는 장난감 총을 들고 은행을 털려다 잡혀 감옥에 갔다. 2009년 추방당한 한호규 씨는 이태원의 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지만 잠은 35만 원 짜리 고시원에서 자고, 식사는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는 형편이다. (☞ <중앙일보> 인터뷰 바로 보기) 또 다른 추방 입양인 필립 클레이 씨는 지난 5월 자살했다.

아담은 말한다. "한국 사회는 성공한 입양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이야기만 듣고 싶어하는 것 같다. 추방 입양인 문제를 접한 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얼마나 달라졌을까?"

▲ 아담은 자녀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프레시안(최형락)

"아담 라이트, 아담 코먼, 아담 크랩서, 신송혁, 신성혁...나는 진짜 누구인가?"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미국에 있는 아이들 때문에 정착할 수 없는 아담. 그는 자신의 지나온 삶과 현재 위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매일 매일 다른 이름을 쓰는 건 참 사람 미치게 만드는 일이다. 아담은 내 이름이다. 그래서 지금도 가까운 사람들은 다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여권에 그 이름을 쓸 수는 없다. 아담 라이트, 아담 코먼(위탁 가정에 있었을 때 이름), 아담 크랩서, 신송혁(홀트가 잘못 기재한 기아호적 상의 이름. 아담은 친어머니를 만나기 전까지 이 이름이 본인의 한국 이름인 줄 알고 있었다.), 신성혁...내가 가졌던 이름들이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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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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