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처벌이 꼭 필요한가?

한국당 '정치 쟁점화' 올인…민주당 '신재민 모욕' 부메랑

청와대가 KT&G 인사와 적자국채 발행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폭로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자살을 암시하는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다가 발견된 3일, 정치권은 신 전 사무관의 폭로를 둘러싼 갑론을박을 벌였다.

자유한국당은 신 전 사무관이 폭로한 내용의 본질보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에 이은 문재인 정부 내부 고발자 프레임으로 격상시키며 집중 공세를 폈다. 이 사건을 일탈한 공무원의 무책임한 주장으로 규정하며 신 전 사무관에 대한 인격 매도성 공격을 한 더불어민주당의 대응도 지나쳤다는 비판론이 나오고 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당 소속 기재위·정무위원들과 연석회의를 갖고 "신 전 사무관이 유서를 쓰고 자살을 시도하다 발견돼 병원에 후송됐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보도를 봤는데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며 "신 전 사무관의 절박한 외침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공익제보자가 사회에서 매장당해서는 안 된다"며 "민주당이 지난 31일 국회운영위원회에서 (신 전 사무관 유튜브 동영상의) '먹고 살려고'라는 부분을 반복적으로 틀면서 마치 그가 먹고살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처럼 비하·조롱했다. 면책특권 뒤에 숨어 무참히 신 전 사무관의 인권을 짓밟은 일"이라고 여당을 비판했다.

앞서 신 전 사무관이 지난달 말부터 2일까지 유튜브,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긴급 기자회견 등을 통해 주장한 내용을 종합하면, △기재부가 지난 2017년말 적자국채를 발행하도록 청와대가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고 △정부가 직·간접 지분을 가지고 있는 KT&G(구 담배인삼공사)와 서울신문사 사장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했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두 사안 모두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는 요지로 부인하고 있고, 이와는 별개로 설사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정말 '부당 외압'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태다.

예컨대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을 반박하는 이들 가운데는 국채 발행의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어서 청와대가 이에 의견을 내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는 반론이 적지 않다. 오히려 '국채는 기재부에서 재정건전성만을 전적으로 고려해 전문 관료들이 오롯이 결정해야 한다'는 믿음은 '모피아(기획재정부 마피아)'들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논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KT&G 건에 대해서도, 정부가 지분을 간접 소유한 기업인 만큼 적절성 문제는 제기될 수 있으나 불법적·범죄적 행위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신 전 사무관이 폭로한 내용이 청와대 외압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기엔 미약하다는 평가가 나오자 한국당은 '공익제보자 보호'를 명분으로 대여 공세의 초점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한국당은 제사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며 "공익으로 판단한다면 정치적 논쟁거리로 만들어 자당의 이익으로 쓰려하지 말고 공익을 위해 사실 관계를 밝히는 데 집중하길 바란다"라고 했다.

폭로 내용의 유의미성과는 별개로, 공적 영역에서 발생한 일을 개인의 소신에 의거해 공개한 행위가 보호돼야 한다는 데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 다만 엄밀한 법적 의미에서 신 씨를 공익제보자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점에선 전문가들도 엇갈린 반응이다.

공익제보자 지원단체 '호루라기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영기 변호사는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현행법상 공익제보자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이나 '부패방지법'에 (요건이) 정해져 있는데, 신 전 사무관은 이 법률들이 규정한 공익침해행위를 신고한 제보자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공익신고자보호법에는 공익신고(자)의 개념을 상세하게 제시하고 보호조치를 규정하고 있는데, 신 사무관의 폭로는 이 요건에는 딱히 맞는 게 없긴 하다"면서도 "비록 법률상 보호받는 공익신고자가 아니더라도 그 제보 내용이 공익신고의 취지에 맞는 의미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그를 공익신고자라고 부를 수 있다"고 다른 의견을 냈다.

신재민 비난 퍼부은 민주당, 검찰 고발한 기재부도 역풍

'공익제보자 보호'를 정치공세용 프레임으로 활용하는 한국당의 반대편에서 신 전 사무관 개인에게 인격적 비난을 퍼부은 민주당의 대응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이날 SNS에 신 전 사무관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삭제했고, 민주당은 신 전 사무관의 생사가 확인되기 전 상황에서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3년차 사무관의 무모한 주장", "풋내기 사무관의 방자한 행동"이라고 그를 비난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31일 열린 운영위에서도 신 전 사무관의 폭로가 논란이 되자 "영상 앞머리에 '돈 벌려고 이런다'고 했다", "영상 끝에 학원 광고를 붙인 것만 봐도 주장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주장으로 반격했다.

바른미래당은 이같은 민주당의 대응에 대해 "민주당은 신 전 사무관을 향해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 '응분의 책임이 뒤따를 것'이라는 등 모욕과 겁박을 쏟아내고 있다"(이종철 대변인)라고 비판했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신 전 사무관을 공익제보자로 볼 것인지 아닌지를 떠나 국민에게 정부 내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서 소상하게 드러내는 것은 투명한 행정을 위해서 바람직하다"며 "정부·여당은 검찰 고발로 제보자 입을 막고 지지자들은 제보자가 감당할 수 없는 비난폭탄을 퍼붓기 바빴고, 결국 제보자를 극단적 상황으로 몰아갔다. 참으로 어리석고 무능한 대응"이라고 비판했다.

기획재정부가 신 전 사무관을 검찰에 고발한 조치도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SNS에 올린 글에서 "모범적인 공익제보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공개 내용이 비밀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전직 공무원이 '자신이 보기에 부당하다고 생각한 사안'을 공개했다고 검찰에 형사처벌을 부탁하는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나 보던 행태"라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신 전 사무관이 공개한 정도의 내용이라면 열린 정부를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이같은 행정적 판단의 이유와 과정은 더 많이 공개될수록 좋은 것"이라며 "세상의 모든 공익제보자들을 위해 기재부가 형사고발만큼은 철회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했다.

홍성수 교수도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내용이 공무상 비밀인지 의문"이라며 "그 폭로가 국가의 기능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불가피한 범죄행위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을 떠나 정부가 굳이 신 전 사무관의 행위를 고발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홍 교수는 또 "현실에서 좋은 폭로, 나쁜 폭로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권력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제보자를 위협하게 될 우려가 크다"면서 "신 전 사무관의 폭로가 공익제보로서 정당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검증 과정에서 불필요한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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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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