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도 밝히지 못한 '4대강 비밀TF', 네 가지 의혹

[MB 대운하, 5년 비망록 ④] MB "'4대강=운하'면 어떤가…"

4대강 사업이 사실상 대운하 사업의 '전단계'였다는 것이 최근 감사원 감사로 드러나게 됐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 결과로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22조 원이 투입된 거대 사업이라 이권이 걸려 있는 업계나 인사들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 진행 과정에서 제기된 불법 논란들만 봐도 핵심 쟁점이 수십가지는 된다.


이명박 정부 내내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논란을 지켜본 인사가 있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현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진애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신우석 씨다. 그는 국회 내에서도 자타 공인하는 '4대강 전문가'다.

신우석 씨가 <프레시안>에 보내온 글은 감사원 감사를 통해 밝혀진 것이나,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밝혀진 것 등과는 또다른 '결'을 보여준다. 신우석 씨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민간 건설사 등의 각종 보고서에도 주목했다. 이와 함께, 현재까지 드러난 정부 측 보고서와 4대강 사업 관련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복잡한 '퍼즐'을 짜맞춰, 몇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의혹들을 짚어내고 있다. <편집자>

MB 대운하, 5년 비망록
"국민은 속았지만, 건설사는 '대운하' 알았다"
"MB 정부, '대운하 담합' 방조자인가, 공범인가"
한반도 대운하, 어떻게 '4대강 사업'으로 둔갑했나

#6. 2008년 7월, 새로운 준비 : 녹색 뒤에 꿈틀되는 대운하 재추진론

2008년 대통령이 직접 대운하 포기선언을 하며 대운하 논란은 잦아드는 듯 했지만, MB의 대운하에 대한 집착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대운하가 포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음밀해지고 비밀스러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17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한반도 대운하 설명회에서 대운하의 타당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07.6.17. ⓒ연합뉴스
먼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을 확인해 보자. 7월이 되자 백성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당시 의원은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대운하는 폐기가 아닌 중단 상태"라고 말했다. 포기 선언이 완전한 포기가 아니었음을 내비친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대통령까지 국민들에게 대운하 포기선언을 한 마당이어서, 친이계 국회의원이 불필요한 논란성 발언을 한 것 정도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이같은 발언의 '체급'은 총선 패배 후 미국에 머물던 이재오 의원으로 확 올라갔다. 발언 수위도 더 직접적으로 변했다. 심지어 공무원을 훈시하는 글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이재오 의원은 "현대판 치산치수를 해야 한다. 그 이름이 운하든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는 국토를 재창조하고 전국에 물길을 살리고 하천 지천을 살아 있는 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름이 운하든 무엇이든 좋다? 전국의 물길을 살려야 한다? 이 글을 접한 사람이 "설령 운하가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라도 물길(수로) 만드는 사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과연 지나친 해석일까? 급기야 2008년 9월 2일에는 대운하사업 주무부처였던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 정종환 당시 장관이 국토 국토해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반도 대운하사업 추진을 언급하며 "요건이 조성되고 국민이 필요하다고 할 때 다시 할 수도 있다"고 발언하기도 한다.

과연 뭐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던 걸까? 당시에는 철저하게 숨겨져 있었지만 'PD수첩'의 '수심6m의 비밀'이 결국 방송을 탄다. 방송 이후 국회가 제출받은 자료에는 2008년 100대 국정과제에 '국가하천종합정비'가 포함돼 있었고, 2008년 9월에 기본구상 작업을 시작했다고 되어있었다. 대운하 포기선언 불과 2개월 후인 8월에 국가하천종합정비를 국정과제로 포함시켰다는 정부자료는 이해할 수 없는 의문투성이다.

첫째 의문. 절묘한 시점의 의혹이다. 대운하 추진론자들이 인수위에서부터 일관되게 주장했던 '2009년 착공, 임기 중 완공'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또한 2개월 전 국민에게 대통령이 직접 대운하 포기선언을 했기 때문에, 대운하 논란 자체는 잦아들고 있었다. 거셌던 촛불정국도 진정돼 가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인수위 시절부터 대운하TF 고문을 맡아왔던 이재오 의원이 미국에서 "운하든 무엇이든", "물길 살리기를 해야 한다"고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그게 8월이었다. 공교롭게도 8월에 국토부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참으로 절묘하다. 이 모두가 우연일까?

두번째 의문. 사업내용에 대한 의혹이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단계로 4대강 하천정비사업을 우선 추진하여 강별로 운하용 하천정비를 하고, 조령터널을 연결하는 문제를 2단계로 넘기자는 것은 '대운하 분리추진론'에 근거해 볼 때 대운하 1단계 사업의 재추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토부 자료를 봐도 그것이 '대운하 1단계 사업 재추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당시 국가하천의 개수율(하천의 정비가 필요한 구간 가운데 정비를 마친 곳의 비율)은 97% 수준으로 정비가 마무리되는 단계였다. 반면 지방1급 하천은 93%, 지방2급 하천은 74%, 소하천은 38%에 불과했다. 국토연구원은 "지방2급 하천 정비사업 부진이 전국적인 하천범람 피해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 했으며 그 원인은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국가 하천, 지방1급 하천에 비해 열악한 지방재원에 의존하는 지방 2급 하천의 하천정비기본계획 수립율과 개수율이 부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침수위험이 높은 지방하천 등에 예산을 우선 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 이미 '국가 하천'은 하천정비가 거의 끝난 상황이었다. 오히려 지방 하천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런데 MB정부가 '국가 하천'에 대해 다시 시작하려고 한 정비는 무엇이며, 이러한 국가하천 종합정비가 국정과제로 포함된 배경은 무엇일까. 국가하천 종합정비의 기획이, 포기하겠다던 "대운하의 1단계 사업의 재추진"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셋째 의문. 추진과정에 대한 의혹이다. 국토부가 비밀TF 구성의 근거로 삼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무회의를 거쳐 결정된 것은 2008년 10월이었다. 대운하가 국정과제에서 제외되었다는 것도 기사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는 것도 10월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2개월 앞선 2008년 8월 '국가하천 종합정비'가 국정과제로 포함된 상황이다. 국토부는 국무회의 결과를 미리 알았던 것일까?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이다. 국토해양부에서 국정과제로 건의를 하고 그렇게 추진하라는 '윗선'의 사전승인을 받았든지, 반대로 국정과제로 포함시킬 것이니까 미리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든지. 어느 상황이든 국정과제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 '핵심'이 개입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운하 준비 목적의 4대강 사업이 재추진된 의혹을 풀어줄 핵심적인 부분으로, 향후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운하 포기선언 2개월 후인 2008년 8월 대체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나온 자료로는 이 부분이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합리적 의심을 통해 추론 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먼저 대운하 민자사업 컨소시엄의 움직임을 보자. 정부의 대운하 포기 의지가 확고하다면 해체할 수밖에 없는데다 본사로부터 철수지시까지 내려왔다던 대운하 컨소시엄은, 해체는커녕 대운하 포기선언 한 달 만인 2008년 7월 연결구간(조령터널)을 제외한 "한강·낙동강 물길살리기" 제안서를 마련한다. 2008년 9월에는 "낙동강 물길 살리기" 제안서를 마련했다. 운하 사업을 계속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만든 '제안서'는 누구에게 간 것일까? 이를 규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 제안서를 받은 주체가 컨소시엄이 해체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다시말하면 '운하 재추진의 가능성'을 알려줬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8월의 수상쩍은 움직임은 이뿐이 아니었다. 주식시장에서도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기이한 움직임이 감지되었으며 이는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기도 했다. <파이낸셜뉴스>는 2008년 8월 21일 "대운하 관련주 급등 시작"이라는 기사를 통해 "대운하는 테마 생명이 끝났는데도 관련주들이 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생명이 끝난 대운하 테마가 급등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결과적으로 보면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대운하 포기선언'이 끝이 아니었음을 아는 세력이 분명 존재했다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이 국회 본관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반도 대운하 공약 당위성을 직접 설명하고 있다. 2007.10.15 ⓒ연합뉴스

#7. 2008년 10월, 대운하의 반격 : 다시 뭉친 비밀TF와 청와대의 직접 개입

'PD수첩'을 통해 알려진 4대강 비밀 TF는 왜 비밀 TF라고 불릴까? 이명박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인 국가하천종합정비를 준비하는 정부부처(국토부)의 테스크포스팀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 TF를 비밀팀이라고 부를만한 이유는 너무나 많다. 이 비밀팀에는 공문도, 예산도, 어떠한 회의기록도 없으며, 그 활동장소 또한 근무지인 과천 국토해양부 청사가 아니었다. 반포에 위치한 한강홍수통제소 밀실에서 이뤄진다. 정부부처에서 추진한다고 보기에는 국가기밀을 다루는 첩보요원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정황 투성이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논의하고 무엇을 준비한 것인가? 이 부분이 4대강사업의 진실을 밝혀줄 가장 중요한 장면이지만 감사원 등 어떠한 발표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는 부분이며 국정조사를 실시한다면 밝혀야 할 핵심 부분이기도 하다.

첫째, 이 비밀팀에 누가 참여했을까? 알려진 바와 같이 국토부 공무원, 건설기술연구원의 연구원, 하천설계가 가능한 엔지니어링사의 임원들이 멤버였으며 청와대 행정관이 참여했음은 밝혀졌다. 단순히 보면 하천전문가들로 보이는 이들을 엮어주는 또 다른 중요한 연결고리가 있다. 이들은 모두 대운하와 관련이 있다. 대운하 추진 당시 대운하 주무부처인 국토부의 담당 업무부서의 공무원, 대운하 추진 당시 대운하 용역을 수행했던 건설기술연구원의 연구원, 대운하 추진 당시 대운하 민자컨소시엄과 운하설계계약을 맺은 엔지니어링 업체 간부, 대운하 추진 당시 대운하 추진을 담당했던 청와대 행정관(인수위 대운하TF)들이다. 이 정도면 참여자의 구성만 봐도 왜 그토록 비밀스러워야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맞춰야 할 퍼즐들은 많으니 다음을 살펴보자.

둘째, 이들은 무엇을 논의했을까? 정부자료에 의하면 비밀팀은 10월에는 '국가하천종합정비(안)'을 만드는 것으로 되어있다. 'PD수첩'이 방송한 것처럼 이 비밀 TF의 논의내용을 알 만한 위치에 있었던 A 씨에 의하면 이 비밀TF에는 청와대 행정관이 수시로 참여해 지속적으로 특정수심을 확보하도록 개입했다고 한다. 특정수심 확보는 곧 준비하는 사업의 성격을 규정 한다. 수심 확보가 규정하는 사업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다. 홍수소통에 장애가 되는 일부 퇴적토를 걷어내는 하천정비사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특정 최소수심을 확보하는 운하용 수로 사업을 할 것인지.

아직 구체적 논의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니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상황을 더해 보자. 이 시점(2008년 10월) 민자사업컨소시엄에서는 '준설, 보 설치는 정부에서 하천정비사업으로 추진하고 운하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시설인 갑문, 터미널 등만 민간자본으로 설치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제는 상황을 재구성 할 수 있다. 청와대 행정관이 낙동강에서 6m의 특정 최소수심을 요구한 이유는 민자컨소시엄의 계획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청와대 행정관이 압력을 행사한 낙동강 최소 수심 6m의 비밀은, '최소 수심을 확보하는 운하용 하천정비를 해야만 민간자본으로 갑문, 터미널 등을 설치하는 2단계 대운하사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셋째, 비밀스러운 논의, 그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알려진 감사원의 감사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이 비밀팀에서 청와대 행정관의 수심확보 개입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4대강 종합정비방안'에서 운하용 수심확보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 청와대 행정관의 수심확보 개입은 실패한 것일까? 2008년 10월, 4대강 비밀팀이 청와대 행정관(MB와 동지상고 동문, 국토부 출신)으로부터 'MB의 뜻이 운하용 수심을 확보하는 하천정비'임을 확인해놓고, 과연 이를 거부하는 결론을 내린 것일까? 그리고 MB와 청와대는 비밀팀으로부터 운하용 수심확보를 거부당했는데 '4대강 종합정비방안'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다시 직접 운하용 수심 확보를 지시한 것일까?

이 비밀 TF의 논의내용을 알 만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는 감사원 감사 결과와 다르다. 당초 국토부는 6m 수심확보 계획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사실 6m라는 특정 최소수심을 확보하는 계획은 누가 보더라도 운하용 수심확보가 명확한 것이었다. 대운하도 포기한 마당에 하천정비라는 이름으로 이를 추진하라는 것은 보통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행정관의 요구는 간단했고, 분명했다. 결국 TF에서는 2단계 안이 논의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운하사업으로 의심을 덜 받을 수 있는 소규모 정비안을 발표하고, 나중에 실제 마스터플랜 수립 과정에서 운하용 수심 6m 안을 관철시키자는 내용이 오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감사원의 발표와는 또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청와대의 압력에도 국토부가 운하의 재추진을 부담스러워 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문제는 부담스러워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일 목적의 '4대강 종합정비방안'을 발표하는 것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정부부처가 공모한 것 아니냐는 새로운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이 비밀스러운 과정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한 사람들은 없는가? 당시 국회와 언론은 이 시기 4대강 비밀 TF의 움직임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2008년 10월, 이명박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서 대운하 사업이 제외됐다는 기사가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해하기 힘든 움직임이 나타나 있다. <한국경제>의 2008년 10월 15일자 "대운하주 약세장서 '독야청청'"이라는 기사를 보자. "대운하 관련주들이 큰 이슈 없이 약세장에서 투기적 매수세 유입으로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일반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대운하가 제외' 되었다고 생각할 때 오히려 '국가하천종합정비'라는 이름으로 운하가 재추진되고 있음을 알았던 사람들이 있었고, 이런 사람들에게 주식시장은 '한 몫'을 잡을 또 다른 기회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2008년 11월에 비밀 TF에 모였던 외부 사람들은 흩어졌다고 한다. 그 이후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발표를 위한 '4대강 종합정비방안'이 준비되고 있었고 4대강 마스터플랜 용역이 발주될 준비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감사원이 발표한 자료처럼 12월 초 '4대강 종합정비방안'이 보고되고 이에 대해 "수심 5~6m로 굴착할 것" 이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뒤따른다. 그리고 이미 운하용 수심확보 계획으로 변경될 예정인 '4대강 종합정비방안'은, 운하라는 의심을 덜 받을 수 있는 소규모 계획으로 포장돼 국민 앞에 발표된다.

비밀 TF에 참여했던 국토부는 용역의 발주기관으로, 비밀 TF에 참여했던 건설기술연구원은 용역의 수행기관으로, 비밀 TF에 참여했던 엔지니어링업체는 설계용역사로 그 위치를 바꿔 참여한다.

▲ 이명박 정부 내내 국회에서는 매년 연말 4대강 사업 예산, 대운하 의심 예산 등과 관련해 갈등을 빚었다. 4대강 사업 예산안 등이 문제가 됐던 2010년 연말 국회 풍경. 새누리당은 예산안을 밀어붙이고, 민주당이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은 빈번히 일어났다. 결국 4대강 사업이 '위장 대운하 사업'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은 이미 국회가 통과시킨 예산 등 22조 원을 강에 쏟아 부은 후였다. 2010.12.8 ⓒ연합뉴스

#8. 2008년 12월, 몰아쳐라 4대강 : 4대강과 대운하 호부호형(呼父呼兄)을 불허하노라

4대강 사업으로 위장한 대운하 1단계사업은 그렇게 준비를 마쳐갔다. 대통령의 포기선언으로 대운하에 대한 언급만 나와도 수세적일 수밖에 없었던 정부와 여권의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이미 비밀TF를 통한 내부검토를 끝냈으며 용역도 발주할 준비도 마쳤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다시 여론의 역풍을 맞아 중단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빠르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일, 그것만 남았을 것이다.

이 움직임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은 청와대로부터 나왔다. 효과는 강력했다. 11월 28일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을 보자.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대운하도 관계없이 임해라. (…) 4대강 정비사업이면 어떻고 운하면 어떠냐, 그런 것에 휘둘리지 말고 예산이 잡혀 있다면 빨리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 발언이 있은 후 며칠 뒤부터는 참모와 정부부처가 훨씬 과감한 발언들을 쏟아낸다. 2008년 12월 3일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주도했던 한나라당 박승환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며 "이 대통령이 촛불 정국 등 굉장히 어려운 가운데서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할 수 없지 않느냐'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으나 변화된 상황에 따라서 여론이 바뀐다면 대운하도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재추진 가능성을 시사했다.

2008년 12월 4일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한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4대강 수질 개선사업이 운하가 되느냐 안되느냐는 경북 북부에서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게 되면 대운하가 되는 것"이라며 "사업을 다 해놓고 대다수 사람들이 연결하자고 하면 말자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4대강 정비사업이 결국 대운하를 목적으로 하는 1단계 사업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될만 한 발언이다. 2008년 12월 5일 전남대 '녹색성장으로 가는 길' 초청 강연에 참석한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여러분이 노이로제처럼 생각하고 있는 운하문제도 어느 땐가는 거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4대강 정비사업 계획이 발표되기 직전, 다소 의아한 일이 일어난다. 이미 한번 민심에 부딪혀 뼈아픈 경험을 한 탓인지 발표를 앞두고 태도가 급변한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이 운하 준비사업 내지는 1단계 사업으로 인식되는 것이 위험하고 사업추진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부터 4대강 사업을 운하와 연결 짓는 것은 매우 불경한 생각이고 당치도 않은 억측으로 몰리게 된다. 2008년 12월, 바로 대운하와 4대강의 호부호형(呼父呼兄)이 금지되는 순간이다.

이 때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2008년 12월 10일자 <파이낸셜뉴스>를 보자.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8일 저녁 일부 국토부 출입기자들을 불러 국토부의 내년 주요예산사업 중 하나인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해 야당 등 일각에서 '한반도 대운하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과 관련, '이는 대운하사업이 아니다'고 시종일관 해명했다"고 한다. "4대강 정비사업=대운하'란 공식을 없애기 위한 사전정지작업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고, 심지어 "최근 일부 언론에 대해 4대강 정비사업이 대운하사업이 아니라는 내용의 특별기사를 다뤄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이미 강 정비사업비에 (갑문, 터미널 등) 운하시설비가 빠진 것을 알고 있는데 장관이 저렇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정치권의 발언에 이어 정 장관의 행동으로 볼 때 대운하의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4대강 정비사업과 대운하가 서로 무관하다는, 뒤늦은 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미 여권에서 4대강 사업이 1단계 운하사업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계획 발표 일주일 후인 2008년 12월 17일 <CBS> 라디오에 출연한 친이계 진수희 의원의 인터뷰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4대강 정비와 대운하의 차이가 결국은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문제인데 그 부분은 4대강 정비를 한 시점에 국민에게 물어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후 국정홍보수석, 국무총리가 나서서 대운하 재추진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총리실에서는 4대강 사업이 운하가 아니라는 자료까지 낸다. 그리고 6개월 후, 4대강 마스터플랜이 나왔다. 그러자 총리실이 운하 준비가 아닌 증거라면서 발표했던 자료가 4대강 정비사업이 운하 준비사업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자료가 돼 버리는, 한편의 슬픈 코미디가 연출되었다.

2008년 12월, 4대강 정비사업 관련 정부 발표 자료만 놓고 본다면, 수심 2m, 1~2m의 소형 보 4개를 설치하는 계획을 운하로 연결 짓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총리실에서 "보가 10m가 되야되는데 겨우 1~2m를 계획하고 있고, 수심이 6m가 되어야 운하인데 2m 밖에 안되니 운하가 절대 아니"라는 자료를 냈겠는가. 이는 불과 6개월 뒤 이 계획이 10여m에 달하는 대형보 16개, 낙동강 최소수심 4~6m, 평균수심 7.4~10.4m로 계획이 바뀔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폐기될 것으로 예정된 수심 2m, 1~2m의 소형 보 4개를 설치하는 '축소 계획'을 정부가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불과 6개월 후에 마스터플랜이 나오면 밝혀질 내용인데 왜 그랬을까. 반발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선에서 축소된 계획을 발표하여 사업추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일단 사업이 시작만 되면 그 이후에는 밀어붙이면 된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실제로 뭐가 그리 급했는지 4대강 정비 사업이 발표된 지 20일도 지나지 않은 2008년 12월 말, 낙동강과 영산강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 착공식이 열리게 된다. 사업의 핵심적인 내용을 변경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고 아직 실제 사업계획인 마스터플랜이 나오려면 6개월이 남았는데 말이다.

지금까지가 대운하가 4대강 사업으로 가면을 바꿔 쓴 과정에 대한 필자의 기록이며 의혹이다. 국회는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보고 국정조사에 대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감사원의 발표로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목적으로 했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이는 결론일 뿐이다. 그 과정에 대해 감사원이 밝혀낸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퍼즐을 맞춰갈수록 풀려진 의문보다는 풀어야 할 의문이 더 많다.

과연 MB의 대운하 포기선언의 진실은 무엇인가? "수심 5~6m로 굴착할 것" 이라는 지시는 4대강 사업이 대운하로 변신하게 된 출발점이 아니라, 오랜 시간 비밀스럽게 준비된 계획을 공식화하는 마침표는 아니었을까? 국민을 속이기 위해 청와대와 정부가 공모했다는 의혹 등 대운하가 4대강의 가면을 쓰게 된 과정은 국정조사를 통해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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