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2차 협상이 무산됐지만 이란이 활발한 역내 외교를 펼치며 합의틀 마련을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낙관적 분석과 동시에 양쪽이 근본적으로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해 교착 상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상 대치와 함께 종전 협상 뇌관인 레바논 휴전도 위태롭다.
러시아 <타스> 통신,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 소셜미디어(SNS) 등을 보면 아라그치 장관은 27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러 도착 뒤 발표한 성명에서 "우린 항상 러시아와 광범위한 문제, 특히 역내 문제에 대해 긴밀한 협의를 해 왔고 지속적 양자 회담도 진행해 왔다"고 강조했다.
아라그치 장관이 이날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미하일 울랴노프 오스트리아 빈 주재 러 대표부 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혔다. <타스>를 보면 카젬 잘랄리 러 모스크바 주재 이란 대사는 아라그치 장관이 "협상 현황, 휴전 상황 및 분쟁 관련 동향에 대해 러 당국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알자지라는 이번 방문에 대해 "러시아는 수십 년 동안 이란의 전략적 동맹이었고 이란이 러시아로부터 정치적 지원을 얻으려 하는 것"이라며 외교적 해결 및 대결 시나리오 양쪽 모두에서 "러시아가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란 외무장관이 러시아와 양쪽 모두를 협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의 회담이 무산된 주말 동안 이란은 분주히 역내 외교를 펼쳤다. 아라그치 장관은 24일부터 파키스탄, 오만, 러시아를 순방 중이다. 아라그치 장관은 27일 성명에서 지난 주말 오만 방문 때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과 오만은 호르무즈 해협의 두 연안국으로 특히 해협의 안전한 통행이 중요한 국제적 현안이 됨에 따라 상호 협의가 필수적"이라며 "양국 공동 이익 실현 보장"을 위해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설명했다.
<AP> 통신은 한 역내 당국자를 인용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 제도를 오만이 지지하도록 설득하려 시도 중이라고 전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같은 자리에서 파키스탄 방문의 경우 "매우 생산적"이었고 "좋은 협의"를 가졌으며 "과거 사건들을 되짚어보고 어떤 조건에서 협상이 지속될 수 있을지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 진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과도한 요구와 잘못된 접근 방식으로 인해 지난 협상 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은 중재국 파키스탄 방문에 있어 아라그치 장관의 주요 의제는 이란 쪽 종전 조건을 전달하는 것으로, 아라그치 장관이 호르무즈 해협에 새 체제 도입, 배상금 지급, 추가 군사 침략 방지 보장, 이란 해상봉쇄 해제 등 문제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이에 더해 역내외 다른 국가들과도 접촉했다. 이란 <IRNA> 통신을 보면 아라그치 장관은 26일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터키), 카타르, 프랑스 외무장관과 연쇄 통화해 휴전 관련 최근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걸프국 포함한 종전틀 마련 시도?…NYT "양쪽 대결 논리 변함 없어"
알자지라는 이란의 광폭 외교가 역내에서 종전 조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낙관적 해석을 내놨다. 방송은 "우린 여러 걸프국들로부터 어떤 합의가 도출되든 이들이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을 듣고 있다"며 이란의 외교 과정이 "이란과 미국 뿐 아니라 걸프국들까지 포함해 모든 관련국들이 합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일종의 틀"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봤다. 방송은 "외교는 시간이 걸리고 모든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과정"이라며 "외교는 죽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걸프국 석유 수출을 막고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며 주변국들은 이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받고 있다.
반면 <뉴욕타임스>(NYT)는 양국이 여전히 대결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이는 데 주목해 교착이 심화될 것을 우려했다. 신문은 미국과 이란 회담이 "적어도 지금으로선" 탈선한 것으로 보이며 양쪽이 "전쟁도 평화도 아닌 불편한 과도기"로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란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전쟁이 초래한 경제적 고통을 더 오래 견딜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듯 보이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호르무즈 해협 역봉쇄로 인한 경제적 고통을 미국이 더 오래 견딜 수 있다고 믿는 듯해 양쪽 모두에서 회담 진전을 가능하게 할 유의미한 양보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주말 이란 보수 매체 <호라산>이 "양쪽 모두 전면전의 대가는 피하려 했지만 무력과 압박 논리에선 벗어나지 못했다"며 이는 "단기 전쟁 그 자체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이란 테헤란대 정치학자 사산 카리미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지난해 6월) 12일 전쟁 때와 비슷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결과가 영구적이진 않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미 폭스뉴스에 "그들(이란)이 대화를 원한다면 우리에게 올 수도 있고 전화할 수도 있다. 알다시피 전화가 있다. 우린 훌륭하고 안전한 회선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협상 가능성을 열어 뒀지만 즉각적 대면 회담 가능성은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미 매체 <악시오스>는 26일 미 당국자 및 사안에 정통한 두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및 전쟁을 종식하되 핵협상은 뒤로 미루자는 새 제안을 가져 왔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란 지도부가 내부 의견이 분분한 핵 문제를 빼고 빠른 협상이 가능한 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 제거 및 농축 금지를 전쟁의 주요 목표로 제시해 와 이를 토대로 협상이 진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폭스뉴스에도 "그들(이란)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만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레바논 휴전도 위태
한편 이란 종전의 또 다른 쟁점인 레바논 휴전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레바논 휴전 3주 연장을 발표한 바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레바논 보건부는 26일 이스라엘 공습으로 어린이 2명, 여성 2명을 포함해 14명이 죽고 37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했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에 조성한 이른바 "완충지대" 너머 7개 마을 주민에도 대피 경고를 내리며 추가 공세를 예고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휴전 협정을 위반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그에 대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휴전 협정 위반"을 계속하는 한 레바논 내 이스라엘군 및 이스라엘 북부 공격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또 "효과가 없는 것이 증명된" 외교를 기다리지 않고 "나라를 지키는 데 실패한" 레바논 당국에도 의존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26일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이스라엘 병사 1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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