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세금 4000억 출자는 GM 어디에 하나요?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하자 있는 GM주주총회’ 무효 가처분소송은 언제?

추혜선 의원 : 12월에 투입되는 4000억 원, 만약에 (추가 투입을) 하게 된다면 어느 법인으로 가게 되죠? 신설 법인인가요, 존속 법인인가요?

이동걸 회장 : 그 부분에 대해서 불명확하기 때문에 저희가 지금 협의를 하고 법정에서 소송으로 가려야 하겠지만, 그 돈은 어디로 가든 간에 시설자금으로 쓸 수밖에 없게 계약서 상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인사이드 경제>는 귀를 의심해야 했다. 아니, 국민 혈세로 4000억을 출자하는데 그걸 어느 법인에 출자해야 할지조차 ‘불명확’해? 세금 갖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반년도 안 되어 기본계약서 다시 써야 할 판

지난 5월 18일, 산업은행은 석 달간 줄다리기 끝에 GM과 ‘기본 계약서(Framework Agreement)’를 체결했다. 골자는 GM과 산업은행이 한국GM에 각각 자금을 투입하고 경영 정상화를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그중 산업은행에서 투입하는 금액은 총 7.5억 달러이며 6월에 절반인 3.75억 달러, 12월에 나머지 절반 3.75억 달러를 우선주 형식으로 출자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5월에 체결한 이 계약서에 따라 자금을 받기로 한 기업(한국GM)이 조만간 2개로 쪼개질 상황이 된 것이다. 만일 GM이 법인 분리를 강행할 경우 12월에는 법인이 2개가 되는데, 나머지 절반 3.75억 달러(4000억 원)를 출자할 곳이 애매해진 것이다. 5월에 체결한 기본 계약서에는 법인이 분리될 경우 어떻게 한다는 내용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합의 당사자였던 산업은행과 아무런 구체적 협의도 없이 법인 분리를 강행하는 GM이 기본 계약서를 위반한 게 아닐까? 그러나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동걸 회장은 당혹스러운 해석을 내놓았다. 오히려 “12월에 4000억을 출자하지 않으면 산업은행이 계약서를 위반한 것이 되어 계약이 파기”된다는 것이다!

어느 법인으로 출자해야 할지 알 수도 없는 상황, 이 꼴을 만든 건 GM의 일방적인 법인 분리 강행이다. 그런데 4000억 출자를 안 하면 오히려 산업은행이 계약을 파기하는 꼴이라고? 게다가 어느 법인으로 출자해야 할지를 가리기 위해 “협의”도 하고 그걸로 안 되면 “법정에서 소송으로 가려야” 한단다.

산업은행은 돈 싸들고 GM에 퍼주지 못해 안달이 난 곳인가? 국민 세금을 어디에 퍼줘야 할지를 소송까지 해서 알아내야 한다니! 그렇게까지 해서 퍼주지 않으면 스스로가 계약을 파기한 거라고 해석한다. 기본 계약서에 그런 내용까지 들어 있단 말인가? 이동걸 회장의 이 같은 변명에 일부 의원은 “GM 사장 같다”는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도대체 신설 법인에 승계되는 게 뭐가 있나?

만일 법인이 분리될 경우, 신설법인에서도 산업은행이 비토권, 사외이사 추천권, 주주감사권을 갖게 될까? 22일 국정감사에서 추혜선 의원(정의당)이 이 문제를 질의하자 “(이들 권리가) 승계된다고 생각한다”는 답을 했다. “회장님 생각인지? GM에 확인하셨는지?”를 재차 질문하자 또다시 귀를 의심케 하는 답변이 나왔다.

“GM에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라, 만일 (지분비율을) 83 : 17로 기계적으로 분할한다고 하면 승계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이런 중요한 권리들의 승계 여부를 GM에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GM이 어떤 자본인데 당연히 승계된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그뿐이 아니다. GM본사와 한국GM 사이에 체결된 비용분담협정(CSA)의 경우, 법인이 분리되면 이 협정 내용이 양쪽 법인에 모두 승계되느냐는 추혜선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똑같았다.

“승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승계되지 않으면 주주로서 권한이 침해되는 부분이기 때문 … 이에 대해 GM 측에 확인하지는 않았다.”

이건 정말 개그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CSA 협정이 무엇인가? 본사와 자회사 사이에 연구·개발 관련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개발기술에 대한 소유권을 어디에 귀속할 것인지를 정해놓은 것이다. 특히, 전세계 GM 자회사 중 한국에만 유일하게 인정된 권리가 있다.

△한국GM과 공동으로 개발한 기술에 대해서는 항구적인 무상 사용권 △비용분담률에 따른 로열티 수령권 보장 등이다. GM이 철수하더라도 한국GM이 독자생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술을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로열티도 계속 받도록 정해둔 것이다.

게다가 이들 권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산업은행이 GM에 요구해 2010년에 CSA 협정에 포함된 권리들이다. 이 중요한 권리들이 어떻게 되는지 산업은행은 확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추혜선 의원은 똑같은 질문을 그날 증인으로 참석한 한국GM 최종 부사장에게 물어봤다. 이번엔 충격적인 답변이 나왔다.

“CSA가 올해 말에 만료될 예정으로 현재 개정을 위한 협상 중인 것으로 압니다. 신설법인을 12월 3일 등기할 계획이어서 협상 만료 시점과 등기 시점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들 권리의 승계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뭐라고 보고받은 것은 없습니다.”

머리가 아프다. CSA에 적시된 권리가 승계되기는커녕 저 협정 자체가 올해 말로 만료된다니… 게다가 산업은행은 이 사실을 아예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GM에만 보장된 소중한 권리들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본사와 자회사 사이의 협상 아닌가. 원청과 하청 간 협상이나 다름없으니, 무조건 본사 뜻이 관철되고 말 것이다.

새로운 쟁점, 청라 부지 회수

최근 GM의 법인 분리 관련 새로운 쟁점이 떠오르고 있다. 인천광역시가 한국GM에 무상으로 제공한 주행시험장 등 청라 연구소 부지 문제이다. 인천시와 GM 사이의 계약서에 따르면 부지 무상임대에 관한 권리는 타인에게 양도 또는 매각이 금지되어 있다. 법인 분리 시 이 부지의 사용 주체는 신설 법인으로 바뀌기 때문에 무상임대 권리가 계속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무상임대 계약의 당사자인 인천광역시는 최근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부지 회수를 검토하고 있다. GM의 주주총회가 열리던 10월 19일 아침, 박남춘 인천광역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으로 아래와 같은 글을 공개한 바 있다.


법인 분리에 맞서 쟁의행위까지 결의한 GM노조의 반대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GM노조 등 시민사회의 동의가 있지 않다면 부지 회수를 추진할 것”이라는 약속의 이행만 남게 된다. 게다가 이 글을 공개한 바로 그날, GM은 산업은행과 GM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홀로 주총’을 열어 법인 분리 의결을 강행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인천시의 부지 회수는 어떤 효과로 이어지게 될까? 현재 해당 부지는 인천광역시의 소유이지만, 이 부지 위에 건설된 건물과 주행시험장 시설은 GM의 소유이다. 따라서 GM이 건물을 몽땅 떼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놓을 재주가 없는 한, 부지 회수는 곧 무상임대가 종료되고 유상으로 전환된다는 의미이다.

박남춘 시장이 보이는 태도는 이동걸 회장과 분명히 다르다. 우선 법인 분리 행위를 GM의 계약 위반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그 책임을 물어 무상 임대 회수를 추진한다는 거다. 이동걸 회장은 출자를 어디로 해야 할지도 모르게 만들어버린 법인 분리를 계약 위반으로 보지도 않고, 오히려 4000억 출자를 하지 않으면 산업은행이 계약 위반 책임을 진다고 주장하는 꼴이니 말이다.

가처분 신청은 도대체 언제?

지금까지 살펴본 것만 보더라도 산업은행이 제기한 ‘주주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이 왜 법원에서 패소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법원의 보수적 판단 때문일까? 아니면 산업은행의 적극성 부족 때문일까? 아직 판결문을 받아보기 전이라 법원 태도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산업은행의 적극성 부족 문제는 비켜가기 어려울 것 같다.

우선 비토권, 사외이사 추천권, 주주감사권 등 기존 법인에서 보장되던 2대 주주로서의 권리를 신설법인에서 인정받는지 여부를 산업은행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CSA에 명시된 권리들, 특히 GM이 철수하더라도 독립된 자동차회사로 생존할 수 있는 권리가 법인 분리 이후에도 승계되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국정감사에서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이들 권리가 승계되지 않으면 “주주로서 권한이 침해된다”고 분명히 인정했다. 그런데 이들 권리의 승계 여부를 GM에 확인조차 하지 않았으니, 가처분 소송에서 적극적으로 문제 삼았을 가능성도 없다. 게다가 GM이 철수하더라도 독자생존 할 수 있는 권리는,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엄청난 무형의 자산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법정에서 제대로 붙어봐야 한다. 게다가 법인 분리 때문에 인천광역시가 무상임대를 회수할 경우, 신설 법인은 엄청난 액수의 임대료를 물어야 할 “불측의 재무적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 아닌가. 신설 법인에서도 17%의 지분으로 2대 주주 지위를 갖게 되는 산업은행은 얼마든지 회사 경영진을 ‘배임’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주주총회가 강행되던 날, 산업은행은 자신의 대리인이 참석하지 못한 ‘하자 있는 주주총회’이며, 산업은행에게는 법인 분리 관련 ‘비토권’이 있기에 부결시킬 권리가 있는데도 이를 실현하지 못했음을 주장했다. 당연하게도 산업은행은 주주총회 결의가 무효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동걸 회장 스스로 12월에 투입할 4000억을 어느 법인에 출자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하려면 “소송으로 가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현재 산업은행이 진행 중인 소송은 없다. 주주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은 기각되었고, 이미 주주총회가 비록 일방통행이긴 하나 개최되어 버렸기에 본안 소송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이 모든 법률적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 하루빨리 ‘주주총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주주총회가 진행된 지 열흘이 지나도록 산업은행의 가처분소송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는다. 이동걸 회장님, 설마 가처분소송을 안 내려는 건 아니죠? 앞선 가처분에선 다루지 않았던 수많은 쟁점들이 새롭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가처분소송을 내지 않는다면 GM의 주주총회 일방강행과 법인 분리 모두를 인정해주는 꼴이 됩니다. 그러니 이제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인사이드 경제>를 비롯해 독자들 모두가 이해당사자이기에 요구할 권리도 있지요. 상반기에 투입한 4000억, 12월에 투입할 4000억에는 비록 소액일지라도 우리가 낸 세금도 포함되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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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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