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의 인질극, 언제까지 두고 볼 건가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8100억 혈세 투입에도 끊이지 않는 분쟁 또 분쟁…

"올드 머니(old money) 28억 불은 GM도 출자로 전환을 하고요. 다만, 28억 불 + 8억 불, 36억 불은 대출로 하는데 좋은 점은 '회전한도대출'입니다. 필요할 때만 쓰고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이자를 내지 않는 돈이지요."

지난 5월 17일, 국회 예결위 자리에 출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이 얘기를 처음 접하고 나서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GM이 부담하기로 한 투자액 대부분이 '회전한도대출', 그러니까 마이너스 통장 대출이라고?

GM의 지원 약속은 마이너스 통장?

문재인 정부와 GM은 지난 5월에 양자가 합의·체결한 ‘기본 계약서(Framework Agreement)’ 내용을 아직까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개략적인 내용은 정부가 보도자료 등을 통해 밝힌 바 있다. 그 핵심에는 GM 본사가 64억 달러, 산업은행은 7.5억 달러 등 한국GM에 총 71.5억 달러의 투자(지원)가 이뤄질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위 내용은 기본계약서 체결 직전인 5월 10일에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이다. GM은 기존 대출금 28억 달러 출자 전환 설비투자 28억 달러 지 구조조정 비용 8억 달러 지원 후 출자 전환으로 총 64억 달러를 책임진다고 한다. 김동연 부총리가 얘기한 ‘회전한도대출’이란 설명은 찾아볼 수가 없다.

GM이 책임지는 64억 달러 중 36억 달러가 회전한도대출이라는 사실은 보도자료의 구석구석을 잘 뒤져야만 찾아낼 수 있는 단어이다. 왜 이렇게 꼭꼭 숨겨놓았을까? 뒤가 구리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책임지는 방식은 ‘출자’인데 GM은 대부분 ‘대출’이라는 게 드러나면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낯 들고 다니기 불편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회전한도대출이 뭔가. 그냥 마이너스 통장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즉, GM은 36억 달러를 직접 투자하는 게 아니다. 한국GM에 36억 달러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을 하나 주는 거다. "필요하면 빼서 써. 빼서 쓴 만큼 이자 물고!"

신규 투자 자금은 모조리 산업은행이?

5월 18일 기본계약서 체결에 따라 사흘 뒤에 열린 한국GM 이사회에서는 3개의 유상증자 계획 안건을 의결하게 된다. 그리고 이사회 의결에 따라 GM과 산업은행은 차례대로 28억 달러, 8억 달러, 3.75억 달러의 유상증자를 단행하였다. (아래 표)


우선 GM이 책임진 2개의 유상증자를 보자. 6월 11일 증자를 실시한 28억 달러(3조209억)는 막대한 본사 차입금을 출자로 전환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현금을 투입한 것이 아니라 장부상 차입금으로 되어 있던 것을 우선주 자본금으로 전환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건 기존 부실을 걷어내기 위한 것으로 마땅히 대주주인 GM이 책임지는 게 옳다.

두 번째 유상증자인 8억 달러(8630억)는 ‘운영자금’ 명목이지만 정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희망퇴직 위로금 등 구조조정 비용이라고 한다. 퇴직 위로금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책임지는 것으로, 당연히 사용자인 GM이 책임지는 게 옳다.

마지막으로 산업은행의 3.75억 달러(4045억) 유상증자만 유일하게 ‘시설자금’으로 신규 투자의 성격을 갖고 있다. 애초 산업은행은 7.5억 달러를 출자하기로 했는데, 6월에 절반을 출자하고 나머지 절반(3.75억 달러)은 12월에 투입될 예정이다.

즉, GM이 책임진 2개의 유상증자는 대주주이자 사용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에 불과하다. 신규 투자자금이라고 할 수 있는 투자는 사실상 산업은행의 출자가 유일하다. 아니, 정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GM도 설비투자 등을 위해 28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건 어디 간 걸까.

정부가 나서서 GM 투자 부풀려주기

앞서 얘기한 것처럼 GM이 투입한다는 64억 달러 중 36억 달러는 ‘회전한도대출’이다. 그 중에서 구조조정 자금 8억 달러는 대출로 준 직후에 출자로 전환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으며 이미 6월에 출자로 전환했다. 즉, 순수한 회전한도대출은 28억 달러라는 말이다.

그렇다. 유상증자 계획에서 빠져 있는 GM의 28억 달러가 바로 이거다. 이 돈은 ‘출자’가 아니라 ‘대출’이기 때문에 유상증자 방식으로 투입되지 않는다. 그리고 회전한도대출, 즉 마이너스 통장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에 대출을 받게 되는 것이지 미리 투입되는 돈이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 상반기 구조조정이 끝난 직후 GM은 내년부터 한국GM이 흑자로 전환될 것이라 발표한 바 있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한국GM은 저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흑자로 전환된다면 차를 팔아서 남는 돈으로 투자를 하면 되지, 뭐하러 이자를 물어가며 대출을 낸단 말인가.

그래서 김동연 부총리도 국회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필요할 때만 쓰고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이자를 내지 않는 돈이지요” 즉, 극단적으로 말하면 28억 달러 회전한도대출은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동연 부총리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좋은 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 이자 부담을 져야 하는 대출이니 안 쓸 수만 있다면 안 쓰는 게 좋다는 얘기는 옳다. 그렇다면 따져야 할 문제가 있다. 도대체 정부는 왜 "GM이 64억 달러를 투입한다"고 GM의 투자금액을 부풀려서 선전해 주었단 말인가.

게다가 그 64억 달러 중 36억 달러는 대주주이자 사용자로서 당연히 책임져야 할 돈이고, 나머지 28억 달러는 어쩌면 사용하지 않아도 될 마이너스 통장 대출인데 말이다. 다시 한 번 극단적으로 말하면, 시설자금 및 설비투자 등 순수한 신규 투자는 산업은행이 책임지는 7.5억 달러(8100억)의 국민 혈세만 남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자. 정부와 GM의 합의에 따르면 “법적 요건을 충족할 경우 GM이 신청한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을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법적 요건일까? 그건 ‘순수한 외국인 직접투자’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GM의 신규투자는 오로지 ‘회전한도대출’ 뿐이다. 본사의 대출을 순수한 외국인 직접투자로 인정할 수는 없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부는 GM의 외투지역 신청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정부도 GM의 직접적인 신규 투자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GM 64억 달러 투입"이라고 정부가 나서서 홍보해 주고 있느냐 말이다.

GM의 뒤통수 때리기 1 : 불법파견 시정명령도 과태료도 거부

지난 5월 28일, 고용노동부는 한국GM 창원공장 774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전원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했다. 이와 함께 한국GM 사측에게 7월 3일까지 위 774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전달했다. 그러나 GM은 대한민국 정부의 시정명령을 거부했다.

고용노동부는 시정명령을 거부한 한국GM 사측에게 파견법에 따라 1인당 1000만 원, 총 77억3000만 원의 과태료 부과 절차를 진행했다. (774명 중 1명은 60세 정년이 넘어서 과태료 부과대상에서 제외됨.)

7월 중순에 과태료 부과 사실을 통보받은 한국GM 사측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과태료 부과를 통보받은 지 2개월 만인 9월 11일, 고용노동부에 과태료 처분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게 된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법원에 통보함으로써 결국 시정명령 및 과태료 부과는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법원 소송이 전개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8100억의 국민 혈세를 투입했음에도 GM은 정부의 불법파견 판정을 간단히 비웃었다. 직접고용 시정명령도 거부하고, 과태료 부과도 거부했다. 5월 18일에 정부와 GM의 기본 계약서가 체결되었는데, 말 그대로 계약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정부와 노동자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GM의 뒤통수 때리기 2 : 연구개발 법인 분리 강행

지난 7월 20일, 배리 엥글 GM 인터내셔널 사장과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이 갑자기 언론에 새로운 내용을 발표하게 된다. 조만간 100명의 엔지니어를 신규 채용할 것이며, 연구개발 부문을 새로운 법인으로 분할하겠다는 것이다. 법인 분리가 진행될 경우 기존 1만3000명의 인력 중 3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신설 법인으로 옮겨가게 된다.

GM의 일방적인 발표에 노동조합도, 산업은행도 모두 발칵 뒤집혀졌다. 사전에 그 어떤 설명도 없었다. 심지어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며칠 뒤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연구개발 법인 분리는) 계약서에 없던 내용"이라며, 세부 내용을 GM에 문의해 두었다고 얘기했다. GM의 구체적인 답변을 보고 나서 비토할 것인지, 협의할 것인지 판단하겠다고 말이다.

노동조합은 즉각 "연구개발 법인 분리 결사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GM이 한국의 연구·개발 부문만 남기고 먹튀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지난 몇 년간 노동자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멀쩡하게 하나의 법인에서 생산과 연구·개발을 해왔는데, 갑자기 연구개발 법인을 분리한다니 이건 소문이 아니라 실제상황 아닌가.

"GM 글로벌이 경쟁력 있게 생각하는 한국GM의 경쟁력은 R&D와 협력업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에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GM이 한국에서 제대로 영업을 하겠다고 하는 강한 의지를 표명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타결을 본 것입니다."

지난 5월 17일, 국회 예결위 자리에서 지상욱 의원의 질문에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답변한 내용이다. 정부도 GM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모르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기본 계약서에 담기지도 않은 내용을, 계약서 체결 2개월 만에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계약서 잉크는 이미 마르기도 전에 번져버려서 무슨 내용이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게 된 것일까?

ⓒ연합뉴스

이제 제대로 밝히고, 따지고, 규명해야 한다

결국 GM은 노동조합의 반대, 산업은행을 비롯한 정부의 반대도 모두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를 선택했다. 10월 4일 한국GM 이사회에서 산업은행 추천 이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표결을 강행해 법인 분할계획서를 의결했다. 오는 19일에는 주주총회를 열어 법인 분할 의결을 추진한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8100억의 국민 혈세를 투입해 주는데 불법파견 시정명령과 과태료도 거부당하고, 법인 분할 관련 원만한 협의를 통해 해결하자는 제안도 거부당했다. 지난 3~4개월 사이에 2차례나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오죽했으면 상반기에 원만한 합의를 이뤘던 주체이자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인천지방법원에 주주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세금을 내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밝혀내야 한다. 도대체 계약서 내용이 무엇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 GM이 일자리와 한국 경제를 볼모로 잡고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데, 도대체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응은 이 수준밖에 안 되느냐고 말이다.

연구·개발 법인 분리 하나의 사안만 가지고도 제기되는 수많은 의혹이 있다. 이런 의혹에 대해 GM은 아무런 설명도,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2대 주주인 산업은행도 별다른 말이 없다. 몰라서 말이 없는 건지, 알고도 말을 안 하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분할매각이나 분리먹튀 의혹 말고도 대표적인 의문점 몇 가지만 제시해 보겠다.

- 연구·개발 법인이 분리되면 그 법인에서도 산업은행은 17%의 지분을 나눠갖게 된다. 그렇다면 기존에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비토권·이사추천권·주주감사권 및 경영 견제기능도 신설 법인에서 유지하게 되는가?
- 2010년에 연구개발 관련 비용분담협정(CSA)이 크게 개정되면서 한국GM은 GM이 철수하더라도 △한국GM과 공동으로 개발한 기술에 대해서는 항구적인 무상 사용권 비용분담률에 따른 로열티 수령권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렇다면 이 비용분담협정은 법인 분할 뒤에도 유효한가? 유효하다면 이 협약은 어떤 법인이 승계하는가?
- 기존 한국GM 노동자들의 고용은 승계되는가? 단체협약은 신설 법인으로 승계되는가? 노동조합의 승계 여부는?
- 매년 6000억이 넘게 투입되는 연구·개발 비용은 어떤 법인이 부담하게 되는가? 생산 법인이 부담하는가, 연구·개발 법인이 부담하는가? 아니면 특정 비율로 분담하게 되는가?
- 산업은행이 투입하는 국민 혈세 8100억의 자금은 어느 법인으로 가게 되는가? 계약서에 없던 내용이라면 새로 계약서를 고쳐 써야 하는 건가?

도대체 이런 내용들 모두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법인 분리를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는 10일부터 국회는 국정감사에 돌입하게 된다. 그래, 국정감사가 국민적 의혹을 시원하게 풀어내는데 기여한 바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시원하게’ 풀지는 못하더라도, 매듭의 일부라도 풀어내 보는 것만이라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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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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