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13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 열린 심포지엄 제1세션 발제자로 나서서 "6.12 북미 정상 공동성명의 의의는,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북한을 처벌 대상인 '불량 국가'로 취급하는 관행을 벗어나 조약 체결도 가능한 대화 상대로 인정한 것"이라며 "요점은 '평화체제 건설을 통한 북한 비핵화 건설'이라는 큰 틀에 미국 대통령이 동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사전 배포한 발제문에서도 "(센토사 합의는) 평화협정 체결에 의한 북한 비핵화의 진행을 의미한다"며 "그 구체적 이행을 위한 후속 협상은 평화협정의 내용에 대한 협상이 될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현재 북미·남북 간 대화 의제는 '핵 신고 리스트 제출과 종전 선언'에 국한돼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하면서 '종전 선언'이 아닌 '평화 협정'에 대한 본질적 논의를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그 근거로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라는 판문점 선언 3조 3항, "미국과 북한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협력한다"는 센토사 공동성명 2조를 들었다.
이 교수는 "그런데 평화협정 논의는 시작하지도 않고, 종전 선언마저 한미는 한미연합훈련 재개 위협과 함께 북한 비핵화 선행조치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며 "6.12 합의에 따르면 바로 평화협정 논의로 가야 하는데, 미국은 종전 선언을 따로 떼어내어 압박 수단으로 쓰는 '살라미 전술'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한반도 이슈의) 요체가 평화협정임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냉전 해체 후 핵 프로그램을 시작한 북한이 결국 지난해 "핵무장 완성"을 선언하게 되기까지, 북한의 등을 떠민 한국·미국 대북 강경파들의 인식론으로 △북한이 처음부터 핵무장을 목표로 했다는 본질주의 관점 △북한 붕괴론을 꼽았다. 이 교수는 "본질주의는 자기충족적 예언"이라며 "우려한 대로의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하고, 북한 붕괴론에 대해서도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 이행을 포기할 때 '합의 이행은 불량국가 북한의 수명을 연장할 뿐'이라는 생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험악했던 한반도 정세가 변화한 계기로 △2017년 봄 중국이 '쌍잠정(쌍중단), 쌍궤병행'을 해법으로 제시했고 △한국의 정권교체 후 문재인 정부가 2017년 12월 한중정상회담 후 '평창올림픽 기간 중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발표하는 등 균형외교에 나섰으며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 특사단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밝히는 일련의 사건들을 꼽았다. 이를 촉발한 변수는 △2017년 북한의 '핵무장 완성' 선언으로 지목했다. "'핵무력을 완성'했기에 비핵화를 천명하게 된 아이러니"라며 그는 "제품이 완성된 다음에야 그 물건을 갖고 거래와 흥정을 할 수 있다"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이 교수는 "북한의 핵무장 완성이라는 사실이 힘의 균형에 변화를 가져왔고 정치적 충격도 컸다"며 "한국이라는 행위자의 속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진보적 정권교체가 균형외교를 강화했고 그것이 남북중 간 새로운 상호작용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북한의 핵무장 완성 선언은 단기적으로 미국의 군사 반응을 초래해 전쟁 위기를 고조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진보정권에 절박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간의 '습관적 대북정책'의 결과가 핵무장 완성이라는 데 대한 통절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제하고 "한미동맹 중심주의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중 정상회담을 강행한 것은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을 거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무장 완성으로 북한 붕괴론, 선제타격론의 타당성이 사라졌고 △한국의 균형외교로 인해 미국의 대북 군사 옵션이 불가능해진 가운데 △김정은이 핵-경제 병진노선 포기를 선언하며 비핵화 의지를 보인 것이 북한과의 협상 국면에 나서게 하는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그럼에도 9월 현재는 "미국 정부가 6.12 선언과 비핵화 선행조치론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다"며 "북한의 미래는 자신들의 노력뿐 아니라 한미 양국의 노력에 의해서도 열려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미의 대응에 따라 북한의 선택은 다음 3가지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미국 의회의 비준을 거친 조약 형태의 평화협정 체결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 평화체제' △미 의회 비준 없는 행정조약 형태의 평화협정에 따른 '불안정한 평화체제' △평화체제 논의 불발로 인한 북한 핵무장 재강화 등이 그 3가지다.
이 교수는 상호 간 신뢰 형성을 통해 북한의 위험 회피 행동(헷징. hedging) 유혹을 제어하고 역내 협력을 강화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조약 형태의 협정을 통한 안정적 평화체제라면서, 이와 함께 △평화협정의 '타결은 일괄적(패키지 딜), 이행은 단계적'으로 해야 하며 △미국과 중국은 '보장자'가 아니라 '당사자'로 직접 협정에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이혜정 중앙대 교수는 '6.12 북미정상회담은 평화체제를 통한 비핵화(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가 아닌) 약속'이라는 해석에 대해 저마다 주목하며 비평했다.
이남주 교수는 "문제해결의 방향으로 '평화협정의 체결의 의한 북한 비핵화의 진행'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고 논쟁적"이라며 "물론 이 원칙이 이삼성 교수의 주장처럼 북미가 합의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혜정 교수도 "싱가포르 회담이 '평화체제를 통한 비핵화'라고 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반론했다.
이남주 교수는 또 '평화체제 논의가 더 중요하다'는 발제 내용에 대해 "북미협상이 어느 단계에서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만약 종전선언이라는 단계를 뛰어넘어 바로 평화협정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이는 지금까지 사태의 진전을 잘 반영하는 주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남주 교수는 "3차 정상회담 전후는 상당히 다른 국면이 될 것"이라며 "작년부터 1차·2차 정상회담까지는 평화 프로세스 동력 형성 단계였다면, 이제는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만약) 기대에 못 미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고 경고했다.
그는 "큰 틀에서는 동시행동이지만, 일종의 단계가 이어지는 방식"을 제안하며 "내가 한 행동이 상대의 긍정적 행동의 연쇄를 일으키는 방식, 예컨대 (등가 교환을 상정하지 말고) 종전선언을 먼저 하고. 그러면 북한이 핵 신고를 하고, 그럼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식의 해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이 프로세스가 유지되도록 보증자 격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갑우 교수는 균형외교 부분에 대해 "핵심은 정세와 무관하게 (한국이)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확보해야 하는가, 또는 확보할수 있는가"라며 "한국 정부가 북미협상에서 3자적 관점을 취했다는 평가나 평화협정을 회피한다는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고 반론했다.
구 교수는 또 이삼성 교수의 '3가지 시나리오'와 관련해 "불안정한 평화체제의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며 "(이는) 한미동맹 대 북중동맹의 대립구도가 구조화되며 북한의 최소수준 비핵화와 개혁개방이 이뤄지는 경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비핵화, 평화체제, 한미동맹이라는 정책목표의 3중 모순"이 제기될 것이라며 "결국 한미동맹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평화체제 구축에서의 관건인데, 봉합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이혜정 교수는 "북한의 군사적 능력, 중국의 대북 압박·제재에 대한 입장과 한국의 전쟁불가 원칙 등으로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으로 회귀하기가 쉽지 않으며, 미국이 싱가포르 합의를 '일정하게' 지키는 한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진행할 것이란 분석에 동의한다"며 다만 미국사회 주류의 굳은 대북 인식이 "한반도 평화를 방해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혜정 교수는 "긴 호흡으로 보면 북한이 한국과 핵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터부였는데, 6.12 선언에서 보면 오히려 비핵화 부분은 판문점 선언을 인용했다"는 역설을 지적하며 "종전 선언과 핵 리스트의 교환이 안 되면 마치 한 발도 못 나갈 것처럼, 트럼프가 중간선거에서 지면 아무 것도 안 될 것처럼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했다.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정부에만 맡겨두지 말고, 각국의 평화 애호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고발·감시·비판에 나서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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