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왜....저번 법정에서 늦게라도 사실대로 진술해야 하는 사건인데...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항소를 기각합니다."
죄 없는 이들을 고문했던 과오를 끝끝내 인정하지 않는 피고인. 그에 대한 재판장의 선고는 힐난에 가까웠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부(부장판사 김영학)는 30일 열린 전 보안사령부(현 기무사) 수사관 고병천 씨의 위증 혐의 2심 선고공판에서 1심과 같은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고병천 재판 기사>
① "고문 안 했다" 간첩 조작 수사관, 뻔뻔함 언제까지?
② 34년 만에 법정서 '간첩 조작' 잘못 시인한 수사관
고 씨는 재일교포 이종수 씨, 윤정헌 씨를 각각 1982년, 1984년 불법 연행한 뒤 구타, 물 고문, 엘리베이터 고문 등 가혹 행위를 해 간첩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 이후 지난 2010년 열린 윤 씨의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윤정헌에게 구타나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허위 진술했다. 이에 위증 혐의로 지난해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검찰이 1년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검찰 구형을 그대로 받아들여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고 씨는 1심의 징역 1년형이 자신의 죄질에 비해 무겁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비교해 양형조건의 변화가 없고 양형이 합리적인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 씨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뚜렷이 밝히지 않은 채 선처만을 바랐다. 불리한 기억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한편,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진술했다. 제대로 된 반성이 없는 사과는 도리어 피해자들의 공분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1심 재판을 맡은 이성은 판사는 "사과에서는 '무엇'이 중요하다. 그 '무엇' 부분을 잘 기억해내셨으면 좋겠다"며 고 씨를 법정 구속했다.
2심 재판이 열린 지난 16일에도 고 씨는 여전히 '무엇'에 대한 잘못 인정 없이 "후회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노환, 지병 문제를 강조하며 동정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영학 부장판사는 "법원은 검사가 기소하는 범위 내에서 심판할 수밖에 없는데, 법원에서도 굳이 이렇게(검찰 구형과 같은) 징역 1년 실형선고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냐"며 "현재의 논리를 과거의 논리로 가져와서 변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30~40여년 전 수많은 청춘을 철창 안에 가뒀던 고 씨는 실형을 선고받으며 여든 나이에 수감되는 처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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