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이미 판이 바뀌었다"

[프레시안 books] 정세현·황방열의 <담대한 여정>

올해 상반기 최대 뉴스는 뭐니뭐니해도 한반도 정세의 급변일 것이다.

오직 대결 상대로만 여겨졌던 북한을, 우리는 평창에서 싱가포르로까지 이어진 블록버스터급 뉴스 세례를 받아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 젊은 식객이 평양냉면을 체크리스트에 올리게 됐고, 철저히 대결 대상으로만 북한을 바라본 보수 노인 세대에서도 평화에의 기대감이 싹트게 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이 불가능했던 변화다.

계속해서 대형 뉴스를 기다린 이들에게 어쩌면 지금의 소강 국면은 조금 안달이 날 상황일 지도 모른다. 실제 최근에는 한미 군사 훈련 재개 여부가 뉴스화됐고, 남북 연락사무소 개소 여부도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다시금 북한의 인내력을 시험하려는 듯도 보인다. 답답한 국면이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 변화는 큰 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미 남-북-미는 평화 체제로의 이행을 약속했다. 종전의 대결 구도를 깨고, 새 지평을 열기로 이미 합의했다. 지금의 소강 국면은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실무적 수준의 외교 대결 상황으로 이해해야 한다.

역시 파편적으로 흩어진 뉴스는 이 같은 변화를 보여준다. 군대에서 북한이 주적이라는 표현을 제거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개성공단 재개를 포함해 남북이 전면적인 경제 협력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변화는 진행 중이다.

<담대한 여정>(정세현·황방열 지음, 메디치 펴냄)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말을 빌리자면 "이미 판이 바뀌었다." 판이 바뀌었으니, 기존의 눈으로 새 판을 해석하는 시도는 무용하다. 새 판에 맞게 새로운 안경을 껴야 한다.

지난 2008년부터 <프레시안>과 ‘정세현의 정세토크’를 시작한 정세현 전 장관은 한반도 문제를 읽는 탁월한 혜안을 가진 이다. 오랜 경험과 균형 잡힌 시각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리스트 바로 가기)

▲ <담대한 여정>(정세현·황방열 지음, 메디치 펴냄) ⓒ메디치
정 전 장관은 신간 <담대한 여정>에서 황방열 기자와 대담을 통해 긴 호흡으로 최근의 국면을 다시금 정리한다. <오마이뉴스>에 몸담았던 시절, 한반도 문제를 오래 취재했던 황방열 기자는 정 전 장관과 팟캐스트 '한통속(한반도 통일 이야기, 속시원하게 풀어드립니다)을 만들어 진행하기도 했다.

이 책은 단편적인 뉴스로는 읽기 힘든 넓은 시야를 독자에게 제공해, 지금의 변화 국면에서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치 않게끔 독자를 돕는다. 그것도 알아듣기 쉬운 말로. 변화한 세상을 독자가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를 할아버지 마음으로 풀어내"어 "다음 세대에게 힌트"를 제공해주는 책이다.

그렇기에 책은 한편으로 간략한 남북 외교사 소개서 역할을 하기도 하고, 부분적인 한미 동맹사, 동북아 외교 대결사 개론서 역할을 도맡기도 한다.


그간 ‘정세토크’를 꾸준히 탐독한 독자라면 다시금 긴 호흡으로 한반도 정세를 재정리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정 전 장관이 쉽게 풀어주는 몇몇 에피소드에서는 그간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상식화한 통념을 깨주는 일화도 소개된다. 북한의 주체사상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한미 공조' 개념이 어떤 목적으로 탄생했는지를 역사적 구도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남북 관계에 분탕만 쳤다고 평가되는 김영삼 정부를 재평가한 대목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4.27 판문점 선언 당시의 뒷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재론하지 않더라도 한반도가 지구상에 남은 20세기적 질서, 그러니까 냉전 질서의 마지막 잔재임은 사실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구체제이며, 평화적 미래로 전 지구가 나아가는 데도 큰 걸림돌이다.

한반도 문제를 정상화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 운명을 바꾸는 일만이 아니다. 크게는 지구적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일이다. 우리에게 이처럼 큰 일이 다가왔다. 큰일은 크게 보아야 한다. 새로운 판에 적응하고자 하는 이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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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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