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핵심 실세의 친동생이 남파간첩이었다. 일본을 거쳐 북한으로 몰래 들어가서, '밀봉교육'을 받은 뒤, 남파됐다. 곧 체포됐는데,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그리고 대기업 간부로 특채됐다.
더 이상한 일. 간첩죄로 처벌받은 기록 자체가 삭제됐다. 누가 왜 기록을 삭제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남파간첩의 형은 5공 실세, 운동권 가족 둔 경찰은 퇴직
전두환의 쿠데타를 기획했으며, 5공화국 최고 실세였던 허화평 씨의 동생 허화남 씨 이야기다. 허화남 씨는 1965년 2월 일본으로 밀항한 뒤, 같은 해 8월 북한으로 넘어갔다. 1967년 11월, 간첩 임무를 띠고 남파했다. 허화평, 허화남 형제의 고향인 경상북도 영일군으로 침투했고, 이듬해 검거됐다. 그리고 1969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당시 허화평 씨는 보안사령부 대위였다.
이른바 '막걸리보안법'이 시퍼렇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허화평 씨는 무사히 대령까지 진급했다. 12.12 쿠데타의 핵심 참모 노릇을 했다. 그가 전두환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맡았던 1982년, 허 씨의 동생 허화남 씨는 성탄절 특사로 사면됐다. 허화남 씨는 국가 기간 산업체였던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차장으로 취업했고, 이후 포스코 계열사로 퇴직했다.
노태우 정부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씨는 1980년 5월 광주 항쟁 이후 출범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가했다. 검사 출신인 그는 법사위원을 맡았다. 당시 박 씨가 허화평 형제에 대해 품었던 생각이 박 씨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 담겨 있다. 허화평 씨는 친동생이 남파 간첩인 탓에, 정책 면에서도 공산주의 색채가 있다는 내용이다. 전두환 정부의 과외 금지 조치 등을 가리킨 서술이다. 요컨대 전두환 정부 수뇌부는 '남파간첩 허화남'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수 국민에겐 감췄고, 걸핏하면 색깔 공세를 했다. 남파간첩의 형은 청와대 수석이 되지만, 운동권 자식을 둔 경찰은 옷을 벗어야 했던 시절이다.
'하나회' 형을 둔 간첩은 대기업 간부 특채, 전과 기록도 말소
이런 사실이 공개된 건, 군사정부가 끝난 뒤였다. 문민정부 출범 첫 해인 1993년, <뉴스메이커>(현 <주간경향>) 기사로 알려졌다. 당시 <뉴스메이커>는 "허화평 씨의 압력으로 허화남 씨의 간첩 기록이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대부분의 신문이 이를 받아서 기사로 냈다. 1993년 6월 25일자 <동아일보>는 "검찰은 간첩 활동을 한 허 씨가 어떻게 방위산업체인 포항제철에 간부로 특채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아울러 검찰 공안부는 허 씨의 간첩 전과가 말소된 경위를 조사한다고 밝혔다.
친동생이 남파간첩이었어도, 권력에 접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이유. 다들 아는 대로다. 허화평과 전두환은 모두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 회원이었다. 전두환은 '하나회' 보스였고, 허화평은 전두환의 최측근 참모였다. 끔찍한 색깔론의 나라였지만, '하나회'는 예외였다.
남파간첩과 그 가족은 대한민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나. 역시 다들 답을 안다. 헌법은 연좌제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가족은 아무런 제약을 받지 말아야 한다. 간첩 당사자는 법이 정한 처벌을 받아야 하고, 그 뒤엔 역시 제약을 받지 말아야 한다.
1992년 대선 앞두고 터진 중부지역당 사건, 다시 문제삼는 <조선>
하지만 이런 상식은 현실에서 잘 통하지 않았다. 숱한 이들이 색깔 공세로 상처 입었다. 이런 공세를 주도했던 신문이 오늘 또 칼을 뽑았다. 24일자 <조선일보>는 "간첩 전과자를 공기업 상임감사에 앉히려는 정부"라는 기사를 냈다.
"강원랜드의 상임감사 최종 후보 2인에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주범인 황인오(62) 씨가 포함됐다"라는 내용이다.
1992년 대선 직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이 발표한 중부지역당 사건은, 지금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면이 많다. 안기부가 대선을 앞두고 사건을 부풀리거나 조작했다는 의혹이 있다.
황인오 씨는 광부 출신으로 1980년 4월 사북항쟁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이 사건을 광부 난동 사건으로 규정하고, 31명을 구속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고문이 있었다. 이 사건 관련 판결은 재심 끝에 지난 2015년 최종 무죄가 됐다. 사건 이후 35년만이었다.
뉴라이트 KBS 이사장이 구명했던 중부지역당 사건 연루자
황인오 씨의 동생 황인욱 씨는 1992년 중부지역당 사건 발표 당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 황인욱 씨는 형과 함께 사건에 연루돼 징역 13년을 선고받았다.
황인욱 씨의 스승이었던 이인호 전 KBS 이사장(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이 황 씨의 구명운동을 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KBS 이사장을 맡았고, 대표적인 뉴라이트 지식인인 이 전 이사장이 진짜 간첩을 옹호했을 가능성은 낮다. 이 전 이사장은 황 씨가 억울한 피해자라고 봤기 때문일 게다.
황인오 씨가 강원랜드의 상임감사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만약 된다면, 폐광 지역에 들어선 강원랜드에서 광부 출신이 감사를 맡게 됐다는 상징성이 있다. 채용 비리 등으로 얼룩진 강원랜드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남파간첩 전성시대' 찬양했던 <조선>, 지금은 왜?
다만 분명한 건, <조선일보>가 모든 간첩 연루자에게 일관된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두환 정부에서 남파간첩의 친형인 허화평은 최고 실세로 군림했고, 남파간첩은 국가 기간 산업체 간부로 특채됐다. 그 시절에 <조선일보>는 1등 신문 지위를 굳혔다. 전두환이 가장 좋아하는 신문이 <조선일보>였으며, <조선일보> 역시 낯 뜨거운 전두환 찬양 기사로 지면을 메우곤 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허문도 역시 허화평과 함께 '쓰리 허'(허화평, 허문도, 허삼수) 가운데 한 명으로 불리며, 전두환 정부 실세로 지냈다. 그 역시 <조선일보>의 사세 확장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일보>가 이런 역사를 제대로 다룬 기사를 낸 적은 없다.
'남파간첩 형제'의 전성기를 칭송했던 <조선일보>가 지금 간첩 전과자의 공기업 취업을 문제삼는 모습은, 확실히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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