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도 못 건 '개혁입법 연대' 은산분리 앞에 휘청

민주-한국 손잡고 8월 처리 '직진'…평화당·정의당 반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정동영 신임 민주평화당 대표와의 전화 통화에서 언급한 '평화 개혁 연대'가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 문제로 쪼개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대기업 거리좁히기'에 6.13 지방선거 이후 관심을 모았던 '개혁입법 연대' 역시 시동도 걸지 못한 채 좌초되는 분위기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9일 당 지도부 회의에서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완화를 공식화했다"며 "(이는) 재벌개혁의 중대한 후퇴이며 국민에 대한 약속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은산분리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이 잘못됐다면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결코 개혁에 도달할 수 없다"며 "공정한 경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강력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이 대표는 특히 여당인 민주당을 향해 "정부 정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견제하고 바로잡아야 할 집권여당은 '독도 잘 쓰면 약'이라는 위험천만한 레토릭으로 청와대 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있다"고 비판하며, 한국당이 은산분리 완화 방침을 환영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대통령 공약 훼손에 누가 박수치고 누가 환호하고 있느냐? 여당은 이를 직시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는 산업자본과 은행의 동반 부실을 막을 수 없고, 예금주인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가져오게 된다"며 "이미 지난 저축은행 사태에서 확인했듯, '대주주 대출 규제' 또한 차명대출 등으로 얼마든지 무력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평화당은 정의당과 달리 아직 반대 당론을 정하거나 당의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는 않고 있지만, 지난 5일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정동영 대표가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 대표는 이날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은산분리 규제완화 조치에 저는 반대 입장"이라며 "은산분리를 가장 강하게 고수하고 있는 미국이 핀테크 최강자다. 은산분리 벽을 허무는 것과 핀테크, 4차 산업혁명은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전날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방문하기도 했다. 경실련은 참여연대와 함께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가장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단체 중 하나다.

정 대표와 함께 평화당 내 유력자인 천정배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금융은 공공성이 생명이다. 섣부른 은산분리 완화는 산업자본의 불공정한 이권 추구를 부르고, 이는 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천 의원은 "이는 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당이 반대했던 반(反)개혁 정책이며, 대통령 공약과도 명백하게 배치된다"며 "공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역량이 심히 부족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다만 평화당 내에는 정 대표나 천 의원과는 달리, 장병완 원내대표나 유성엽 최고위원 등 상대적으로 경제·사회정책 영역에서 보수적인 의원들도 포진해 있기에 이들이 정의당처럼 반대 당론을 채택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개혁입법연대'는커녕…진보진영 반발 속 '규제 완화 연대' 되나?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는 등 문재인 정부가 신경을 쏟고 있는 핵심 과제에 대해 평화당과 정의당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문 대통령이 정동영 대표에게 당선 축하 전화를 통해 "'평화 개혁 연대'의 구체적 결과가 아직은 없지만 마음을 함께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지 불과 2~3일만의 일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 중 '평화 개혁 연대'라는 표현은 지난 7월초 당선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말했던 '평화와 개혁 연대'를 의미한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설명했다. 홍 원내대표는 "개혁 입법에 동의할 수 있는 당과 무소속 의원이 있다면 '평화와 개혁 연대'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다(6.25 기자간담회)"고 했었다.

이는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등이 주장해 온 '개혁입법연대'와 유사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당인 민주당과 평화당, 정의당 등 개혁적 성향 또는 '범진보진영'으로 묶이는 정당이 힘을 모은다는 취지다. 사안에 따라서는 중도 보수 성향 바른미래당과도 제휴할 수 있겠지만, '기본'은 민주·평화·정의 3당 연대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전문은행 규제완화 문제를 놓고는 오히려 민주당과 평화당·정의당이 아니라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이 공조를 하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열린 교섭단체 3당(민주·한국·바른미래) 원내대표 회동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지분 취득을 현행 4%에서 상향 조정하는 쪽으로 법을 고친다는 합의가 나왔다. 심지어 개정 입법을 당장 이번달 내로 처리하기로 했다.

'국가주의' 의제로 연일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9일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경청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은산분리 완화 방침에 대해선 "시장 자율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다행"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 변화를 환영한다"고 호응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도 더 나아가서 빅데이터의 사용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조금 더 전환적인 입장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금융회사나 은행이 예치한 고객들의 돈을, 이 금융사·은행을 지배하는 산업자본이 쌈짓돈처럼 끌어다 쓰는 것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나라들은 엄격한 은산분리·금산분리 원칙을 두고 있다. 한국도 은행법을 통해 비금융주력자(금융기관이 아닌 회사)는 은행 지분을 4%이상 소유할 수 없게 돼있고, 의결권을 포기해도 10%까지만 취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규제 혁신' 조치는 케이뱅크·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은행에 한해 이같은 규제를 풀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 원칙이지만, 지금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며 규제 완화 방침을 밝혔다.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자는 취지의 법률안도 발의돼 있다. 공교롭게도 민주당과 한국당, 바른미래당에서 각각 개정안이 나왔는데,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안은 34%까지, 한국당 안은 50%까지 지분 보유를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 골자다.

지난 8일 원내대표 회동 후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은산분리 완화 입법에 대해 "8월에 처리하는 방향으로 합의했다"고 했고,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도 "은산분리 (완화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인터넷은행 특례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며 "금융비주력자 자본 보유 한도 상향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브리핑했다. 다만 박 대변인은 구체적으로 얼마나 올릴지는 "논의 중"이라며 "상향 조정한다는 방향성만 있다"고 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9일 오전 당 원내지도부 회의에서 "어제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의 8월 국회 처리에 합의했다"고 확인하며 "오랜 기간 은산분리 원칙을 지켜왔으나, ICT와 금융산업 혁신을 위해서는 은산분리의 일정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산업자본의 지분율 확대를 여러가지로 우려하는 얘기도 있지만, 그간 금융감독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기에 예방책을 충분히 법규에 넣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8월 8일의 원내대표 회동은 지난달 23일 숨진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자리를 느끼게도 한다. 노 원내대표의 사망으로 정의당 의석 수는 6석에서 5석으로 줄었고, 14석의 평화당과 함께 정의당이 구성했던 연합체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은 교섭단체 기준 의석(20석)을 채우지 못하며 결국 같은달 24일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 평화·정의당이 빠지면서,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 멤버는 4명에서 3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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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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