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원은 23일 페이스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긴 세월을 같이 한 동반자 같던 친구의 비보를 접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에 서울 화동의 경기고등학교 교정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며 "10대 소년들이 청춘을 즐기기에는 '10월 유신'으로 그 폭압성을 더해가던 박정희 철권통치가 너무나 분노스러웠다"라고 덧붙였다.
고등학교 시절 노 원내대표와의 추억을 돌이켜 본 이 의원은 "우리는 <창작과 비평>도 읽고, 함석헌·백기완 선생의 강연도 다녔다"며 "퇴학 조치를 불사하고 유인물을 돌리고 데모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형성된 가치관과 사회관이 평생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지 모른다"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 살이 되고 어느덧 육십이 되는 동안 나와 그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대학생으로, '양심수'와 변호사로, 도망자와 숨겨주는 사람으로, 운동권 대표와 정치인으로, 둘 다 국회의원으로 관계는 달라졌다"면서도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서로를 신뢰하고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좋은 벗이었다. (우리는) 한결같이 만났다"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그리운 친구야. 네 모습을 떠올리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너와 나눴던 많은 이야기는 나 혼자 간직하련다"라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며 함께 꾸었던 어린 시절의 꿈은 내 몫으로 남겨졌다. 부디 평안하기를"이라고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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