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제 생애 마지막이 될 희망뚜벅이를 마쳤습니다.
23년 전 이맘때 미치도록 푸르던 하늘에 푸른 점처럼 박혀 있던 사람. 아주 맑은 가을날이었고, 세상은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평화로워 보이던 아침. 크레인 아래 60명 넘은 조합원들이 그를 불렀지만 아무리 불러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라졌습니다. 영원히 세 아이는 아빠를 잃었고, 조합원들은 신뢰하던 지회장을 잃었고, 저는 20년지기 참 무던하고 속 깊던 동지를 잃었습니다.
그 후 남은 사람들은 산 자의 임무인 듯 자책했습니다. 파업 현장을 떠난 사람들은 떠난 사람대로, 남은 사람들은 남은 사람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끌어내렸어야 했다고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그 후 8년. 다시 85호 크레인에 제가 오르고 시간이 길어지자 조합원들의 숫자는 다시 줄어들었고, 사람들은 다시 불안에 휩싸였고, 다시 그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기 전에 끌어내려야 한다. 그때 황이라 동지가 했다는 한마디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고, 저에겐 가장 고마운 말이 됐습니다. "그게 지도위원님을 살리는 길이 아니다. 살아서 끄집어 내리면 그 사람은 내려와서 죽을 것이다. 무엇이 진짜로 그를 살리는 길인지 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들이 이어져 지역과 업종과 존재를 뛰어넘는 희망버스가 만들어졌고, 저는 살아서 내려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한 발걸음들, 애절한 바람들. 그래서 저는 어떤 이론보다 사람의 진실을 믿는 편입니다.
그토록 간절한 마음들이 모이면 고진수, 김란희, 허지희, 민병준, 이치호, 이주형.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자리에 돌아가게 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 진심을 의심받고 상처도 받았지만, 입이 아닌 삶으로 실천하시는 분들을 매일 만나면서 상처는 나았습니다.
김주익의 죽음과 저의 삶을 가른 건 지역과 업종을 뛰어넘는, 세대가 어우러진 연대였습니다. 그 연대의 힘으로 제가 37년 만에 한을 풀었듯이 세종호텔 해고자들의 복직도 이루어지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김란희 동지가 30년을, 허지희 동지가 29년을 일하고 오로지 민주노조 조합원이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저는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김란희의 30년은, 허재희의 29년은, 고진수의 20년은 어디로 간 겁니까? 한 사람의 생애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해고 5년 세월을 그들은 어떻게 버텨온 걸까요?그 모든 아픔들을 끌어안고 336일 고공농성, 구속 중 옥중 단식, 지금도 이어지는 재판들. 고진수 동지 얼마나 힘드십니까? 저는 그들의 30년, 29년, 20년을 저의 힘을 다해 되찾아 주고 싶었습니다.
힘들고 먼 길이었지만 육신의 고통을 다 덮을 만큼 뿌듯한 길이기도 했습니다. 날마다 감동이 기다리던 길. 정성스러운 간식들과 과일들과 음료들. 그리고 이태원과 세월호, 쿠팡 참사 유가족분들. 땀 뻘뻘 흘리며 사진과 영상을 찍으신 동지들. 자보와 선전물을 만들고 수고비 한 푼 없는 온갖 일들을 소명처럼 해오셨던 동지들. 동지들이 있어 저는 마음이 놓입니다.
네 번의 희망뚜벅이를 묵묵히 성실하게 무사히 이끌어 주신 차해도 대장님, 동지애가 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신 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희망뚜벅이었기에 부산의 조선소 노동자가 세종호텔 노동자를 만나 함께 걸었고, 대전 충남의 병원 노동자가 충북의 금속 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고, 대구의 이주 노동자가 구미 금속 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외쳤던 이주형, 이치호, 민병준, 허지희, 김난희, 고진수. 그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발바닥이 짓무른 채 어떤 마음으로 1200리 길을 한 발 한 발 걸어왔는지 기억해 주십시오.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 복직의 그날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