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차 일식 요리사가 세종호텔 앞 10m 고공에 오른 이유

[인터뷰] 고진수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

25년 차 일식 요리사인 고진수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 그는 2021년 12월 해고된 뒤 매일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인도 농성장으로 출근했다. "복직 없이 끝나지 않는다"라고 적힌 무지개색 현수막이 붙은 가로 10미터, 세로 3미터 너비 천막. 그곳이 지난 3년 고 지부장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이었다. 천막을 지키기 위해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와 매연, 가로등 불빛을 참고 그 안에서 잠을 잔 날도 많았다.

지난 13일 고 지부장은 고공에 올랐다. 세종호텔 앞 높이 10미터, 가로 10미터, 세로 1미터 너비 도로시설 구조물 위에 농성장을 차렸다. 몸 한 번 편히 누이기 어려운 그곳에서 고 지부장은 안전조끼를 입고 추락방지용 고리를 허리 높이 난간에 걸어둔 채 24시간 생활 중이다. 도로의 매연과 소음, 불빛은 전보다도 그를 괴롭힌다. 흔들림과 바람도 더해졌다.

점점 위태로운 곳으로 향하는 그가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은 문제는 무엇일까. 고공농성 7일 차가 되던 지난 19일 고 지부장을 10미터 구조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현장에서 소통이 쉽지 않아 인터뷰는 전화로 진행했다. 바람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리는 전화기 너머로 고 지부장은 "개신교대책위분들과 아래에 있는 동지들이 하루 두 번 식사를 올려주고, 간식을 많이 줘서 밥은 잘 먹고 있어요"라고 첫 마디를 뗐다. 이어 자신이 고공에 오른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세종호텔에 대한 것이었지만, 정리해고와 노동조합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이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도로시설 구조물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정리해고 제도로 노동자에게 전가된 코로나 위기의 피해

고 지부장이 고공에 오르게 된 직접적 원인은 '정리해고'다.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2021년 8월 세종호텔은 경영난을 이유로 구조조정 협의체를 꾸렸다. 이어 9월부터 11월까지 네 번에 걸쳐 희망퇴직 공고를 내고 29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회사는 멈추지 않고 정리해고를 이어가려 했다.

초유의 재난으로 회사가 힘들다는데, 노동자들도 막무가내로 버티려 한 것은 아니었다.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확대해 호텔 업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고 연간 최대 270일, 90%의 인건비를 지원하던 시점이었다. 노동자들은 이 제도를 최대한 활용해 힘든 시기를 버텨보자고 제안했다. 회사의 반응은 차가웠다.

"코로나 유행이 언젠가 끝날 것은 분명했어요. 그러면 억눌려 있던 관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호텔 사업이 회복될 것도 분명했어요. '고용유지지원금을 더 신청하면 버틸 수 있다, 같이 가자'고 회사에 말했어요. '그래도 회사가 내야 하는 돈이 있다면, 그것도 안 받겠다'고도 했어요. '안 된다'더라고요.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자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건 고작 7억 원어치 매각해 놓고, 노동자들에게만 이렇게 하는 건…."

네 달여 뒤 구조조정 협의체 활동이 끝났다. 2021년 12월 회사는 희망퇴직을 거부한 15명을 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했다. 2001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세종호텔에 입사해 20여 년 간 청춘을 바친 고 지부장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한때 250여 명의 정규직이 일하던 세종호텔에는 이제 20여 명의 정규직과 40여 명의 비정규직만 남았다. 333개 객실이 있는 호텔의 야간 프런트를 지키는 근무자는 한 명이다.

2023년 5월 고 지부장의 말처럼 정부의 엔데믹 선언으로 코로나19 사태가 끝났다. 호텔 사업도 활기를 되찾았다. 세종호텔은 그해 바로 10억 원 대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고 지부장과 함께 해고된 뒤 복직을 요구 중인 6명은 3년째 거리를 헤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남긴 고통이 IMF 위기 때 도입된 정리해고 제도를 통해 노동자에게만 전가된 셈이다.

▲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에 놓인 해고자 복직 욕구 농성 천막. ⓒ프레시안(최용락)

노동조합이 무너지자 노동조건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고 지부장이 고공에 오르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노동조합이다. 다른 많은 사람처럼 그 역시 젊은 시절 노동조합에 큰 관심 없이 살았다. 아침 8시에서 밤 9시까지 일하고, 대기시간으로 설정된 2시간에 대한 임금을 받지 못하면서도, 요리사는 원래 그렇게 일하니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그의 생각을 바꿔놓은 것이 세종호텔 노조였다.

"제가 입사했던 때 세종호텔이 '유니언숍'으로 운영되고 있었어요. 입사와 동시에 가입하게 돼 있었죠. 그러면서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11시간 넘게 일하면서 수당을 못 받는 것도, 온전히 쉬지도 못하는 대기시간에 대한 임금을 못 받는 것도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당시에 손님들에게 서비스 요금을 받아 직원들끼리 나눠 가졌는데, 홀 직원은 60%를, 주방 직원은 40%를 받았어요. 이건 차별이라는 문제의식도 갖게 됐죠."

2005년 고 지부장은 불합리한 회사를 바꾸는 데 직접 목소리를 내보자는 생각에 노조 간부 활동을 시작했다. 마침 세종호텔을 소유한 대양학원의 주명건 전 이사장이 세종대에서 교비 횡령 혐의, 학내민주화 교수 해임 등 문제로 직을 잃으며 호텔에도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던 때였다. 15년 만에 노조 위원장이 바뀌었고, 경영진도 사외에서 새로 왔다. 전과 달리 새 경영진은 교섭 자리에서 경영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그에 따라 노사 교섭도 합리적으로 이뤄졌다. 그때의 성과 중 하나가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이다.

"노조에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노조다운 활동을 해보자는 분위기가 일었어요. 교육도 열심히 받으러 다녔죠. 그러다 내부의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고 다같이 마음 먹었어요. 이전까지 정규직 전환은 경영진 마음대로였거든요. 어떤 사람은 1년 만에도 되고, 어떤 사람은 7년이 지나도 안 되고. 경영자료를 보니 임금을 더 달라고 하긴 어렵겠더라고요. 대신 계약직으로 1년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조항을 만들었죠. 2009년쯤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 거의 대부분이 정규직이 됐어요."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0년 주 전 이사장이 대학 구성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양학원에 명예이사장으로 복귀했다. 세종호텔에도 옛 경영진이 돌아왔다. 이듬해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며 거센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호텔 안에 사측에 우호적인 새 노조가 설립됐고, 조합원들이 새 노조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때를 맞춰 사측은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단협을 무시했다. 2012년 38일의 파업 끝에 네 명의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지만, 역풍을 멈출 수는 없었다.

기존 노조가 소수노조가 된 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2014년 호봉제가 연봉제로 바뀌었고, 이후 임금은 10년 간 동결됐다. 같은 해 9월에는 계장급 현장 관리자 50여 명이 구조조정됐다. 이후로도 회사는 점차적으로 직원을 줄여갔다. 고 지부장은 "살생부를 받아들던 순간 선배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2021년 12월, '코로나 정리해고'로 기존 노조는 사업장 밖으로 완전히 내몰렸다. 당시 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된 15명 전원이 기존 노조 조합원이었다. 이들은 당시까지 호텔 안에 남아있던 기존 노조 조합원 전원이기도 했다.

▲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이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도로시설 구조물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250명이 넘는 정규직이 일하던 세종호텔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해고 이후 세종호텔이 아닌 다른 직장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고 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일을 찾을 수 없겠냐'는 질문을 사측과 싸우기 시작하고 10년째 듣고 있어요. 처음에는 내 사업장 문제, 우리 노조의 문제를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우리가 겪은 일이 체제의 문제, 사회적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리해고법을 이용해 정규직을 자르고,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일을 우리가 그냥 넘어가고, 당연한 사례로 굳어지면, 다른 회사에서도 노조를 만들어 노동조건을 개선하기가 어려워질 거라는 생각을 해요.

세종호텔 안에서만 250명이 넘는 정규직이 일하던 때를 똑똑히 기억해요. 되돌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그래야 된다는 믿음이 있어요. 노동조합으로 좋은 일터를 만들 수 있고, 그 일터를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요."

요컨대, 고 지부장의 고공농성이 던지는 질문은 한때의 위기로 인한 경영난의 책임을 정리해고라는 제도를 통해 노동자에게만 전가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이라는 헌법상 권리를 행사해 청춘을 바친 사업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동자들을 외면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고 지부장은 고공농성을 통해 한국사회에 이 두 가지 질문을 내놓았다.

다행히 최근 고 지부장의 뜻에 공감하는 시민이 늘기 시작했다. 인터뷰 당일 고공농성장에는 '말벌 동지'라 불리는 연대 시민이 오갔고, 그날 저녁 세종호텔 해고자 복직 요구 문화제에도 100여 명이 참여했다. 다음날 저녁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 요구를 마친 수만 명의 응원봉 부대가 고 지부장을 찾아왔다. 그들 사이에서는 "고진수가 한 달 안에 내려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복직할 때까지 함께 싸우자"는 다짐이 들렸다. 어쩌면, 세종호텔 해고자들의 복직 투쟁은 이제 진짜 시작인지도 모른다.

▲ 지난 22일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복직을 요구 중인 고진수 세종호텔 지부장의 고공농성장으로 행진해온 시민들. ⓒ프레시안(최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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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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