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 내 북한 지뢰 폭발로 한국군 간부들이 부상을 당하면서 일각에서 이에 대한 대응 조치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거론하고 있는 가운데,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확성기 방송 재개는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하다고 일갈했다.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 장관은 "지뢰 사고로 부상당한 장병들과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위로 말씀을 전한다"라며 "다만 이번 사고를 빌미로 삼아서 이재명 정부의 일관된 평화를 향한 노력을 깎아내리고 왜곡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우리 젊은이들이 더 이상 피 흘리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고 이것은 남과 북 모두에게도 좋은 일"이라며 "일각에서 확성기 방송 재개해야 한다는 그런 주장을 하는데,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본 원인을 성찰하고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증오와 적대를 부추기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증오와 적대를 전환해서 상호 존중과 평화공존으로 바꾸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고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2015년 목함지뢰 폭발 사건 때처럼 북한에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라는 일부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대해 당시와 지금의 효과가 다르다고 밝힌 강신철 국방부 장관의 인식과도 유사한 대목이다.
지난 9월 29일 국회 국방위원회 비무장지대(DMZ) 지뢰 추정 폭발 사고 관련 현안 보고에 출석한 강 장관은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사건이 발생했을 때 북한이 유감을 표명한 것을 알고 있느냐며, 그렇게 하라는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의 지적에 "그 부분에 대해 효과가 있는지 평가하고 있다"라며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라고 답한 바 있다.
이같은 판단에는 남한에서 북한에 대해 확성기 방송을 실시하더라도 북한이 이를 막기 위해 방해음을 내보내고 있다는 기술적 이유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4년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실시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에서 오물풍선이 날아오자 군 당국은 대북 확성기를 전면 가동했는데, 북한은 마찰음을 내보내면서 이에 대응한 바 있다.
남한의 확성기 방송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남북 간 확성기 방송으로 인해 그 피해가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면서,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포함해 대북 방송 자체를 중단한 바 있다. 이에 북한도 대남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대북방송 방해 주파수를 끄는 등 남한의 행동에 일정 부분 호응하기도 했다.
정 장관은 "이번 사고의 핵심 원인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휴전선, (군사) 분계선(MDL) 문제"라며 "248km 휴전선에 73년 전에 박아놓았던 1292개의 말뚝이 오랜 세월 속에서 80여 개 남겨 놓고 거의 다 사라졌다. 그래서 남과 북 그리고 유엔사가 측정하는 선이 다 다르다"라고 짚었다.
정 장관은 "이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같은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라며 "통일부 장관으로서 북에 제의한다. 이제 만나서 소통해야 한다. 적어도 군사분계선의 선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확정하는 일을, 그런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 역시 강 장관과 유사한 인식을 보이는 대목이다. 강 장관은 국방위원회에서 실효적 조치를 하려면 결국 북한과 고위급 회담을 열고 휴전선 문제를 언젠가는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더불어민주당 김성회 의원의 지적에 대해 "그렇다. 그래서 작년에 정부에서 북측에 제의했고 아직 답이 없는데 이번 건을 계기로 (회담) 테이블로 나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1월 17일 김홍철 국방부 정책실장은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관련 회담 제안을 위한 담화‘를 통해 북한에 DMZ 내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기준선 설정에 대한 회담을 실시하자고 제안했으나, 북한은 이에 대해 응답하지 않은 상황이다.
정 장관은 휴전선 문제를 위한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는 것과 함께 북한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당연하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정 장관은 지뢰 부상으로 피해를 입은 장병들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재명 정부의 평화공존 정책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정 장관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평화공존이 더 절실한 것"이라며 "금강산 관광객이 오가고 개성공단을 매일 아침 출퇴근하던 시대에는 지뢰 폭발 사고 같은 것 없었다.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만들어 낸 것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다. 이재명 정부가 갈 길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지난달 28일 북아일랜드와 독일 출장차 출국했다. 이후 오는 3일 제36주년 독일 통일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지뢰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일정을 단축해 1일 입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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