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의 한 장례식장 빈소엔 40일 넘게 아들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부모가 있다. 아들의 이름은 김승모 씨. 지난 7월 22일 HL만도 평택사업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끼어 숨진 28살 하청 노동자다.
산재 유족이 발인을 미루고 한 달 넘게 싸우는 것은 정권이 바뀐 뒤에는 처음 있는 일이다. 힘든 싸움을 오래 이어가고 있는 이유를, 지난달 28일 빈소에서 승모 씨의 아버지 김모 씨(60)와 어머니 김모 씨(54)에게 물었다.
"20대 내내 일만 하다 떠난 속 깊은 우리 아들, 승모"
가족의 장남이었던 승모 씨는 음악과 게임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낚시하러 가는 걸 즐기며, 말수 적은 평범한 20대였다. "사고 안 일으키고 속 깊은 아들이었다"고도 아버지 김 씨는 말했다.
그 깊은 속 때문이었을까. 세상을 떠난 승모 씨는 20대 내내 돈을 벌며 가족의 생계에 보탰다. 제대한 지 6일 만에 처음 취업한 공장에 6년 넘게 다녔다. 지각이나 결근 한 번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옮겨간 두 번째 직장이 완성차 1차 협력업체인 HL만도의 한 하청업체였다.
하청업체 소속이었지만, 승모 씨가 매일 출퇴근한 곳은 HL만도 평택사업장이었다. 아버지 김 씨는 그래도 '대기업으로 출근하니 낫겠거니' 생각했다. 평소 말수가 적었던 아들이 힘든 티를 잘 내지 않기도 했다. 잘 지내겠거니 하는 생각은 입사 9개월만에 아들이 HL만도 공장 안에서 숨지며 무너졌다.
금속노조 사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작동하지 않아 일어난 사고였다. 공작기계의 일종인 MCT를 정비하던 승모 씨가 기계 안에 있는 줄 모르고, 원청 관리자가 시운전을 지시한 것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내 '쾅' 하는 소리가 들렸고 승모 씨가 숨졌다. 기계가 개방돼 있으면 작동을 멈추는 안전장치인 인터록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어머니 김 씨는 그날, 아들이 퇴근하면 닭볶음탕을 해주려 재워뒀던 고기를 그대로 버렸다. 울다 쓰러지기를 반복해 지병이었던 무릎 질환이 악화돼 지금은 휠체어를 타고 지낸다. 아버지 김 씨는 자꾸 '남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지켜보는 사람 한 명만 있었으면 사고 안 일어났다"
김 씨 부부는 처음엔 사건을 언론에 알리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슬퍼하기만도 힘에 부쳤다. 아버지 김 씨가 사고 현장을 직접 본 날, 마음이 바뀌었다. 지난해에만 9조 원대 매출을 기록한 대기업 공장에서 일한 아들이 그런 환경에서 일했을 줄은 몰랐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건 사고현장의 구조였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복도와 기계에 쓰이는 원료를 공급하는 컨베이어 벨트 사이에 MCT 수십 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아들이 정비를 위해 열고 들어간 기계의 "뚜껑"을 떼어낸 곳은 복도 쪽에 있었다.
현장을 보자 아버지 김 씨의 가슴 속에 열불이 일었다. 참았던 눈물도 마구 흘렀다. 한편으로는 아들과 비슷한 또래,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친구 아들들 생각이 자꾸 났다. 이걸 그대로 두면, 그런 청년들이 비슷한 사고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아들 살려내라, 아니면 더는 안 죽게 해달라"
이후 승모 씨 부모님은 아들의 죽음에 대한 회사 차원의 진상규명과 사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목표로 싸움을 시작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일을 했다.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기자회견에 직접 참석해 발언하고, 청와대 앞에서 추모제도 열었다.
지난달 12일에는 노조와 함께 경기 성남에 있는 조성현 HL만도 대표이사 사무실을 찾았다. 아버지 김 씨는 그날 이렇게 말했다고 밝혔다.
조 대표이사와 함께 나온 임원들은 대체로 묵묵부답이었다고 김 씨는 전했다. '이 사람들이 진짜 책임자가 아니라 쉽게 말을 못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이에 노조와 함께 지난달 24일 정몽원 만도그룹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고소 사실을 밝힌 기자회견에서 '만도 평택공장 청년 비정규직 고(故) 김승모 중대재해 대책위원회 법률팀'의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정 회장이 HL만도 사내이사직을 유지하며 중요한 사안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인사권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족은 아직 정 회장을 만나지 못했다.
"두 가지만 하면 된다.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회사 임원들이 답답한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진심을 다해 김 씨 부부를 위로한 것은 노조와 시민단체 사람들, 그리고 다른 산재 유족이었다. 평택항에서 현장실습 중 숨진 고 이선호 씨의 아버지가 조문했다. 방송사 비정규직을 부리는 자신의 일에 대해 괴로워하다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도 빈소를 찾았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그런 이 중 한 명이었다. '지치면 안 된다. 조급해하지 말아라. 자식이 죽었는데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한다.' 경험에서 우러난 김 이사장의 조언은 승모 씨 유족들에겐 큰 힘이 됐다.
빈소를 찾은 산재 유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승모 씨의 부모님도 끝을 볼 생각이다. 이를 통해 이루고 싶은 일에 대해 아버지 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유족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노조가 회사와 이에 대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주요 요구는 외주작업 안전관리수칙 제정 등 재발방지 대책 마련, 불법파견 실태 파악과 이에 대한 해결방안 마련 등이다. 노사는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HL만도 측은 산재사망 관련 합의가 늦어지고 있는 이유를 묻는 질의에 "성실히 합의에 임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 회장이 HL만도의 진짜 경영책임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고 수습과 합의에 모든 권한을 가진 책임자는 (김현욱) CSO&CLO 안전 및 노사 총괄대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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