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명'의 이익은 누가 갖고, 버블의 대가는 누가 치르나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순환투자가 키운 AI 버블의 청구서

"예전엔 '기획자가 아이디어 내면 개발자가 코드로 갈아 넣는다' 이게 공식이었죠. 근데 지금은 AI가 코딩을 대신해주니까 저 혼자서도 기획-개발-출시를 다 돌릴 수 있어요. 1년에 게임 10개 찍던 게 100개로 뛴 거죠. 퀄리티 부문에서도 딱히 티 안 나고요."

AI를 사용하는 모든 이의 생산성이 늘어나진 않는다. 다만 게임 개발 등 R&D 파트를 비롯해 사무직 분야의 생산성 증가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과연 AI 산업의 끝없는 발전을 보증해주는 것일까?

"저만 이런 게 아니거든요. 전 세계 개발자들이 다 같은 툴(tool)을 쓰니까 모두들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에요. 스팀(Steam) 신작 목록 들어가 보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지는데, 아무리 잘 만들어도 첫 페이지에 안 뜨면 죽은 게임이나 마찬가지죠. '스팀 알고리즘 노출 로또'가 된 거예요. "

생산성은 10배 늘었는데 유저들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고, 그들이 실제로 켜보는 게임 개수는 그대로다. 다들 물량으로 승부하니까 유저들도 '이거 또 AI 슬롭(slop)이겠지'라며 의심을 품는다. 게임을 100개씩 찍어낸들 이걸 대체 누가 사준단 말인가.

다시 읽어야 할 역사 : 닷컴 버블 붕괴

과거 닷컴 버블 역사는 여러 의미에서 현재 AI 산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1996~2000년 사이 통신사들은 "앞으로 인터넷 트래픽이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로 대륙과 대양을 가로지르는 광케이블(다크 파이버)을 미친 듯이 깔았다. 문제는 이 투자 대부분이 빚으로 조달됐다는 점.

한국의 IMF 구제금융, 동남아 금융위기가 몰아치던 1990년대 말, 미국 연준은 금리를 크게 낮추며 시장에 유동성을 대규모로 공급했다. 풀린 현금은 인터넷이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란 낙관론에 올라타 기술주로 쏟아져 들어간다. 손실투성이 IT 기업들조차 방문자와 클릭 수만 늘어도 천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나스닥 지수는 1995~2000년 사이 400% 폭등한다.

그러던 중 2000년 4월 미 연방준비이사회가 금리 인상 신호를 보내자 나스닥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후 2년 간 무려 5조 달러가 증발하는 '닷컴 버블'이 터지게 된다. 2001년 10월 엔론 스캔들, 2002년 6월 월드컴 스캔들 등 회계부정 사건이 잇따라 터지며 투자자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고, 2002년 10월 나스닥은 고점 대비 78%나 폭락한다.

이 모든 거품(버블)은 인터넷 트래픽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가정 위에 서 있었다. 심지어 통신사들은 '용량 스왑(capacity swap)'이라는 수법으로 거짓 수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A 업체가 B 업체에 광케이블 회선 사용권(용량)을 10만 달러어치 팔고, B 업체가 다시 A 업체에 10만 달러어치를 판다. 오간 건 아무것도 없는데 A, B 업체 모두 매출액이 10만 달러씩 잡힌다.

생산성 10배 ≠ 시장 10배

서로 회선을 사고팔며 외형상 성장을 만들긴 했지만, 정작 그 대역폭을 채울 만큼의 실제 인터넷 이용자 수요는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쳤다. 후세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 만들어진 대역폭을 채운 건 10년이나 지난 뒤였다. 그만큼 과잉투자·과잉설비가 이뤄졌고 월드컴, 글로벌크로싱 등의 통신사들은 모조리 파산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생산성이 10배로 늘어난다고 해서 소비 시장이 그만큼 증가하지는 않는다. 산업혁명 초기에도 방직기 보급으로 옷감 생산량이 폭증했지만, 옷을 살 사람들의 소득과 수요는 제자리걸음이라 결국 가격이 폭락했다. 트랙터가 보급되던 1차대전 직후(1920년대) 미국 농업 생산은 폭증했으나 수요가 따르지 않아 농산물 가격 대폭 하락이 시작된 바 있다.

맨 앞에 소개한 사례는 비단 게임시장에서 벌어지는 얘기가 아니다. 키워드만 입력하면 대량 게시물을 찍어내는 이른바 'AI 따발총', 매일 수십만 건씩 자동 생성되는 스팸 게시물들 때문에 포털과 블로그도 홍역을 치르고 있다. 2023년에는 AI 출판 도서 범람으로 하루에도 수천 권씩 등록되는 이른바 '딸깍 출판' 서적들 탓에 인간 저자들의 저작물이 검색 후순위로 밀려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문턱이 사라지자 쓰레기 콘텐츠를 걸러내는 문턱이 새롭게 생성되는 상황이다. 스팀(Steam)은 AI를 활용해 게임을 만들 경우 반드시 '공시'할 것을 의무화했고, 아마존은 하루 출판 가능 권수를 3권으로 제한하고 반드시 AI 생성 여부를 공개하도록 했다. 틱톡은 저품질 콘텐츠를 반복 생산하는 계정을 대규모로 삭제 조치하기도 했다.

"혁명은 진짜"라는 말의 함정

"인공지능(AI) 혁명은 진짜다. 시장이나 투자자들은 AI 혁명이 진행되는 상황에 대한 확신이 아직 덜한 것."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이 연일 폭락하자 청와대 김용범 정책실장이 내놓은 해석이다. 사실 "혁명은 진짜다"라는 말 자체가 틀린 적은 별로 없었다. 인터넷도 진짜 혁명이었고, IT 생산성 향상도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문제는 혁명이 진짜냐 여부가 아니라 그 혁명을 지금 이 가격에, 이 속도로, 이 자금구조로 베팅하는 게 맞느냐에 있다는 점이다.

정권 핵심부의 확신에 찬 발언은 역사적으로 볼 때 버블이 꺼질지 여부에 대한 신뢰할 만한 신호가 아니었다. 닷컴 버블 당시에도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인터넷 혁명과 생산성 향상에 무한한 낙관을 보냈다. 서브프라임모기지가 터지기 직전에도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금융 시스템 전체로 번지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오히려 이런 발언은 "지금이 국면의 정점에 가깝다"는 신호로 읽혔던 사례가 훨씬 많았다. 혁명 자체가 거짓이었던 것은 아니다. 인터넷은 실제로 세상을 바꿨다. 문제는 그 혁명이 실현되는 속도보다 자본이 먼저 베팅한 속도가 훨씬 빨랐고, 수요는 공간을 채울 때까지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없기에 버블은 폭탄처럼 펑~! 하고 터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AI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환상

게다가 AI에 대한 수요란 대체 뭐란 말인가? 모든 사람이 다 복잡한 코딩을 원하고, 수많은 논문을 검색해 그럴듯한 전문서적을 집필하고, 앱 몇 개씩 만들어서 배포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실질적인 AI 수요는 대부분 기업 고객들, 특히 소비자에게 팔아야 할 상품이나 중간제품을 만들어내는 공급자에게서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GPT 5.6, 클로드 페이블 등 매일같이 오픈AI와 앤트로픽이 새로운 AI 모델을 출시하고, 중국 업체들도 키미(KIMI) K3 등 오픈 웨이트 모델을 내놓고 있지만 과연 평범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고 있는가? 구독자가 늘어난다 한들 그 정도 수요로 과연 수익성이 발생하고 있는가?

오픈AI의 월간 활성 사용자는 9억 명에 달하지만, 실제로 유료 구독으로 전환한 비율은 그중 극히 일부에 그친다. 그 결과 오픈AI는 2026년 한 해에만 140억 달러 손실이 예상된다. 반면 같은 시기 앤트로픽은 처음으로 분기 흑자를 냈는데, 그 비결은 일반 소비자 구독료가 아니라 API를 통해 기업에 모델을 임대하는 매출이 전체의 55%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즉 지금 이 산업을 실제로 지탱하고 있는 손님은 챗봇 구독을 결제하는 고객이 아니라, 그 모델을 가져다 자기 상품에 심어 파는 또 다른 기업들이다. 소비자는 여전히 최종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이 AI를 태운 상품을 통해 두 다리 건너 마주치는 존재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뱀이 꼬리를 문 순환투자까지

그렇다면 그 기업 고객들의 돈은 또 어디서 오는가.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한 겹 더 복잡해진다. 엔비디아는 오픈AI에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돈을 받은 오픈AI는 상당 부분을 다시 엔비디아의 GPU 칩을 사는 데 쓴다. 동시에 오픈AI는 오라클과 3000억 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이용 계약을 맺었고, 오라클은 그 계약을 이행할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또다시 엔비디아의 슈퍼칩(GPU와 CPU)을 사들인다.

엔비디아로부터 GPU를 구매해서 이를 오픈AI에 임대하는 코어위브(CoreWeave), 그런데 엔비디아는 이 업체에도 막대한 지분 투자를 한다. 2025년 코어위브 IPO 시점에 엔비디아는 이미 6%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고, 올해 1월 20억 달러 투자를 보태 지분율은 9%에 육박한다. 즉, 엔비디아가 지분 투자로 뿌린 돈이 코어위브로 갔다가 GPU 구매대금이라는 엔비디아 매출로 되돌아오는 '순환투자'가 만들어진다.

마치 고대 신화 속 우로보로스, 즉 제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형상이다. 뱀의 머리(엔비디아의 투자)가 결국 자신의 꼬리(GPU 매출)를 물고 있는 셈이다. 투자자가 곧 거래상대방이자 공급자가 되는 이 구조에서는, 매출이 늘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AI에 대한 실수요의 증거가 될 수 없다. 그 매출이 이 순환의 고리 밖에서, 즉 최종적으로 지갑을 여는 소비자와 기업으로부터 얼마나 들어오는지 따로 확인해야만 진짜와 가짜를 가릴 수 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생산성 혁명과 수요의 절벽

2025년 7월, MIT 미디어랩 산하 난다 이니셔티브가 AI를 도입한 기업 300개를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기업 중 약 5%만이 매출 증가에 도움을 얻었으며 나머지 95%는 여전히 AI가 테스트(파일럿)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천억 달러가 생성형 AI에 투자됐음에도 95%의 조직이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보고서였다.

뱀은 여전히 제 꼬리를 물고 있지만, 그 바깥에서 뱀에게 먹이를 주는 고객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셈이다. AI에 대한 수요는 무조건 늘어날 것이라는 전제 자체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맨 앞에서 게임 기획자가 던졌던 질문 - "100개의 게임을 과연 누가 다 사줄까" - 은 게임업계만의 고민이 아니다. 생산성의 문턱은 사라졌지만, 그 생산물을 받아줄 시장의 문턱은 그대로다.

이 낙차는 버블(거품)이 되어 지금 자본시장 어딘가에서 계속 쌓이기 시작했다. 그 낙차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서는 순간, 그 청구서는 투자자가 아니라 AI 산업에 고용되어 있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닷컴 버블, 그리고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에서 똑똑히 목격한 바 있다.

AI 버블의 마지막 청구서

산업혁명 시기 옷감 생산 폭증과 가격하락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러다이트 운동'의 주인공이 되었고, 1920년대 농기계 도입으로 농산물 폭증과 가격하락은 1929년 대공황의 뇌관이 되었다. 지금 AI가 만들어내는 거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옷감이나 곡물 대신 코드와 콘텐츠의 가격이 폭락하고, 대규모 사무직 노동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AI 버블이 터진다면 결국 이 인프라에 들어간 수많은 생산품들, 특히 HBM과 DRAM을 생산·공급해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똑같은 폭풍이 몰아친다. 3대 메가 프로젝트는 한국 자본주의를 살릴 구세주가 아니라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힐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AI 혁명을 확신하라" 확신에 차서 떠드는 이들은 재앙에서 비켜난다. 등 떠밀려 시장에 투입된 노동자들과 그 가족만 갈려나갈 뿐이다. 심지어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위해 온갖 노동기본권까지 제물로, 희생양으로 갖다바치려는 시도가 벌어진다. 뱀은 배가 고프면 제 몸을 삼킨다. 그 사이 잘려나가는 것은 투자자의 자산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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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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