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철도지만, 그 노선망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계획하고 얼마나 제대로 집행하고 있는지는 시민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국가철도망구축계획은 4차에 걸쳐 20년 가까이 이어져 왔으나 재원 부족과 계획·집행의 구조적 불일치로 목표를 크게 밑돌아왔고, 그 공백을 메워온 민자철도 개발은 공사비 부풀리기와 다단계 하도급에 따른 안전사고, 이용자 운임 부담 증가 등 여러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공공운수노조는 현행 철도망 계획의 한계를 짚고, 지속가능한 재정 구조와 민자철도의 대안, 철도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글을 4회에 걸쳐 기고한다.
전통적인 인프라와 다르게 코로나19를 지나 기후위기에 놓인 현재의 인프라는 '어떻게든 인프라의 총량을 늘린다'는 단순 공급전략에서 미래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특히 각종 위기 사항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이 주요하게 고려되고 있다. 즉 '어떤 인프라를 어떤 방법으로 확보할 것인가'라는 전략적 공급방법이 중요해지고 있다.
일례로 회복탄력성Resilience를 핵심으로 하는 세계적인 도시연합체인 '알시티즈(R-Cities)'는 2025년에 <회복탄력성을 위한 포트폴리오 접근법과 도시 재정>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재정압박 시기에 인프라 투자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핵심은 장기적 재정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손쉬운 민간투자 활성화와 같은 진부한 방법에서 벗어나 캐나다의 녹색도시기금과 같은 정부 주도의 안정적인 재원 구조를 마련해야 하고, 특히 기후위기 대응에 필수적인 인프라의 중장기적 재정계획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과 같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서 수송 분야의 감축 목표가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에서는 기존의 자가용 중심의 개별 교통수단을 철도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인프라 전환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공공교통수단 중에서 철도에 대한 투자는 반드시 이와 같은 중장기적 재정계획이 전제되지 않으면 달성되기 힘들다. 철도가 제공하는 편익이 이용자에게만 한정되는 개별적 편익보다 환경 편익이나 사회 편익과 같은 사회적 외부성이 크다는 점, 초기의 자본투자에 비해 회수 기간이 길어서 장기적인 사업추진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 지역발전이나 물류의 효율성 등과 같은 개별 산업 이익을 넘어서는 국가 전략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철도와 같은 네트워크는 개별 노선의 경제성만으로 추적할 수 없는 시스템의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공적 계획이 중요해진다.
부실한 철도인프라 투자 계획과 무너지는 철도망
현재 한국의 최상위 교통계획은 국가통합교통체계효율화법 상 20년 계획기간을 가진 국가기간교통망계획인데 현재 2021년에 수립된 제2차 계획이 시행 중이다. 여기엔 "주요 간선 도로망 구축이 완료되는 한편, 온실가스 배출이 없고 대량수송이 가능한 광역급행 철도 등 철도 공급이 중요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철도 분야에 대한 투자를 우선적으로 검토"(계획안, 65쪽)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먼저 교통시설특별회계법 상 계정 간 배분비율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현행 교통시설특별회계법 상 시행규칙에 위임된 계정 간 배분비율은 2010년 이후 명시적으로 변경된 바 없다.
제2조(각 계정 간의 재원의 배분 기준 및 방법) ① 「교통시설특별회계법」 제9조제1항에 따른 교통시설특별회계 각 계정 간의 재원의 배분은 다음 각 호의 비율(회계 각 계정의 총 합계액에 대한 비율을 말한다. 이하 같다) 범위에서 매년 예산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
1. 도로계정: 1천분의 430 이상 490 이하
2. 철도계정: 1천분의 300 이상 360 이하
3. 공항계정: 1천분의 70 이하
4. 항만계정: 1천분의 70 이상 130 이하
5. 교통체계관리계정: 1천분의 100 이하
② 환경 친화적 교통물류체계 구축 또는 투자 효율화 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제2항 각 호에 따른 각 계정 간의 재원의 배분 비율을 1천분의 100의 범위에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 교통시설특별회계법 시행령 시행규칙 일부
더 문제인 것은 위의 20년 법정계획인 국가기간교통망계획의 5년 단위 실행계획은 제5차 중기교통시설투자계획에는 아예 5년 간 투자 재원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인데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경제 활력을 위한 공공부문 지출 등으로, 교통SOC(사회간접자본) 부문에 대한 적정 규모 투자 필요"(28쪽)라고 명시해놓고도 구체적인 투자 재원의 규모를 명시하지 않았다. 즉 현행 국가 수준의 교통계획은 말 뿐인 재정계획 만 반복적으로 내놓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철도망 계획 등 하위 법정 계획의 재정계획은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일 수밖에 없다. 제3차 국가철도망계획 상 투자계획 대비 집행률 실적을 보면 국고는 90%, 지방비는 70%로 나타나 상대적으로 재정투자의 안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반면, 민간투자는 47%에 불과해 전반적으로 전체 계획노선의 재정전략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임이 드러났다. 제3차 계획에서 민자 사업의 비중이 33%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수립된 제4차 국가철도망계획에서는 오히려 39% 수준으로 높아졌다. 문제는 민자에 의존하는 철도 유형이 광역철도에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제4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따르면, 고속철도의 경우에는 민자 사업이 0%, 일반철도의 경우에는 민자 사업이 0.4% 정도에 불과한데, 광역철도는 39%로 사실상 민자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특정 유형 철도에 집중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안 그래도 계획의 집행 수준을 기본계획 수립 수준으로 낮춰 잡더라도 50% 정도에 불과한 국가철도망 계획에서, 광역철도가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로 인해 전체 철도망에서 고속철도와 각 도시의 시내교통을 연계하는 광역철도는 민자 사업이 가능할 정도의 배후지가 존재하는 수도권 지역을 제외하곤 다른 지역에선 추진조차 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즉 현재의 철도 인프라 투자는 SOC 투자의 합목적과 통합성을 기준으로 하는 계획공급이라기 보다는, 계획 수립 이후 개별 노선들의 경제성을 바탕으로 실행이 가능한 노선부터 먼저 추진하는 분절적인 형태로 진행된다.
실제로 국회 예산정책처가 2025년도 결산을 하면서 연도별 철도기본계획수립 사업에 대한 집행 현황을 살펴본 것에 따르면, 2024년 집행률이 26.6%에 불과하고 상대적으로 높아진 2025년에도 46.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사업은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따른 계획 노선에 대한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인데, 연도별 계획수립이 절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즉 현재 한국의 철도망 계획은 전형적인 '계획 따로, 실행 따로'라는 '보여주기식 법정계획'의 전형인 셈이다.
실효성 있는 철도SOC 재정전략
이런 상황이다 보니 철도투자에 대한 착시만 만연한다. 대표적인 것이 재정 총량의 착시인데, 전체적으로 철도 투자액이 증가한다는 것이 철도망을 두텁게 하거나 계획 노선의 달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님에도 마치 정부가 철도 투자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이를테면 2011년에 수립된 제2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되어 추진 중인 대구권광역철도 사업을 보면 2015년 최초 예비타당성 조사 이후 2025년까지 기본계획에 대한 총 26차에 의한 변경이 진행되었고 그 사이에 최초 815억 원이었던 총사업비가 2025년 기준으로 2106억 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최초 계획 시엔 비용을 과소 추정하여 타당성을 확보한 후 사업 추진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연도별 철도 건설에 대한 예산액은 신규 반영보다는 기존 사업에 대한 증액 반영의 비중이 월등히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예산상의 착시는 철도SOC의 자본 구성을 왜곡한다. 이를테면 철도 예산이 실제 선로를 가설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토지보상비나 차량구입비 등에 집중되면 결과적으론 철도 운영에 필요한 실질적인 자본구조를 취약하게 만든다.
또한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이 실제 집행과정에 대한 검토 없이 계획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현재 철도 재정투자가 대부분 과거의 철도망 계획에 따른 사업에 집중된다. 예를 들어 2026년 예산 중에서 2021년에 수립된 제4차 철도망 계획에 반영된 사업이 반영된 것은 전체 44개 노선 중 8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 철도의 건설이 법정계획의 수립과 예산반영을 통한 사업 추진 간에 10년 정도의 시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네트워크라는 속성을 지닌 철도가 그때그때의 우연적 요인에 의해 무작위로 추진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이냐, 장기적이냐는 양자택일의 대안이 아니라 이를 동시에 추진하는 통합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은 기존 4차까지의 계획노선에 대한 재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변화된 계획 환경과 노선 내에서의 우선순위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이를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의 기본계획노선으로 삼고 새로운 신규 철도계획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은 법정계획이라기 보다는 '계획'이라는 요소가 지워진 '장기 철도목록'에 불과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반드시 네트워크상의 계획 노선이 가지는 위계를 평가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고속철도냐 일반철도냐 광역철도냐와 같은 재원 기준에 따른 편의적 분류 외에 전력망이나 통신망 계획에서 적용하는 것과 같은 네트워크상의 기능에 초점에 맞춘 노선 우선순위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우선순위가 높은 노선은 일반철도든 광역철도든 예비타당성 면제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한국철도시설공단을 통한 재정노선으로 건설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현재와 같이 연도별 예산편성 방식의 집행구조가 아니라 총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사전지출하고 시행처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연도별 편성 방식은 국토교통부의 예산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 외에 계획 노선을 시행하는 과정에서의 장점은 별로 없다. 그리고 기존 확정 총사업비의 증액이나 변경에 대해서는 해당 보조사업자인 지방자치단체 등이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야 초기의 비용 추정에 대하여 오류를 줄일 수 있다. 더 많은 노선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는 것은 적은 노선이라도 반드시 집행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장기적으로는 현재 정부가 자의적으로 배분비율을 정하고 있는 현행 교통시설특별회계 구조의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현행 최상위 교통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국가통합교통체계효율화법에 '국가교통인프라기금' 방식으로 흡수하고 재정 권한이 전무한 현행 국가교통위원회에 교통수단별 재원배분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상의 연도별 투자 계획을 명시적으로 국가통합교통체계효율화법 상의 부칙에 반영하도록 해서 지방자치단체 등이 좀 더 예측가능한 철도SOC 재정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지역화법 상에 중기적인 재정투자 계획을 명시함으로써 지역의 장기적인 교통재원 수요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철도SOC의 유지, 관리, 운영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재정전략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 우선 운영 과정에서 한국철도공사와 지방자치단체(지역 도시철도) 간의 새로운 운영 파트너쉽이 가능한 협력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고 운영비용의 분담과 관련해서도 위탁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유관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일상 철도의 개선을 핵심전략으로 하는 철도개혁을 추진 중인데 이를 위해 고속도로 통행료 수익의 일부를 철도 및 대중교통 투자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역세권 개발과 교통인프라의 유상화를 통해 해당 수익을 공공교통에 재투자하는 등의 전략을 다양한 파트너쉽에 의해 시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수백조 원의 계획 노선을 무작정 반영하는 행위는 좋게 봐도 선심성 계획에 불과하고 나쁘게 보면 지역 주민을 희망 고문의 나락에 처박는 무책임한 행위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반영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것인가'이다. 재정 전략은 이를 보장하는 약속의 구체적인 형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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